담임 업무가 열일이었다

- 알바몬이 아니라 '연수몬'이었다

by Cha향기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2주간은 항상 원어민 활용 연수가 있었다.

그래서 영어 교사에게는 방학은 방학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영어과 관련 연수가 쏟아졌다.

영어교사를 원어민 수준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정부의 야심 찬 밑그림이었다.


영어 연수 풍년에, 연수란 연수를 죄다 받았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알바하는 사람을 '알바몬'라고 하듯이

그 많은 연수를 다 받은 나를, '연수몬'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영어 교사를 대상으로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공개 수업을 통해 게임 중심의 활동 교수법 등
다양한 영어 수업 방법을 개선토록 했다.
인천교육연수원 내 영어 교사 심화 연수와 주제별 체험 공간 및 영어 수업 콘텐츠 제공을 위한
영어 교사 교육센터를 개관했다.
영어 교육연수원은 12명의 원어민 교사를 배치해 매년 초․중등 영어 교사 8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영어 심화 연수를 실시함으로써 향후 학교 현장에 배치된 원어민 보조교사 없이도
영어 완전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출처: 인천시 교육청 블로그]


원어민과 스카이프 통신으로 하는 화상 채팅 연수를 받은 적 있다.

그런 연수는 신청한다고 선정되는 게 아니었다.

때로는 조건도 까다롭고 경쟁도 치열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운 좋게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곤 했다.


매주 한 시간씩 화상으로 대화하는 이 연수는 6개월간 진행됐다.

물론, 화상 채팅 장비도 다 지원되는 연수였다.

나의 멘토는 미국인 퇴임 교사였다.

퇴임 이후에 홈스쿨링 강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친절한 그녀는 수업 현장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이메일로 전송해 주었다.

항상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아들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려는 천사처럼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 외에도, 2012년엔 1개월간 뉴욕 델라웨어 대학 인턴십 연수를 받았다.

그것도 제출할 서류가 복잡했지만 결국 연수 대상자가 되었다.

2017년에는 6개월간 원어민과 수업하는 심화 연수를 받았다.

파견교사가 되는 셈이라 내가 맡았던 학교 업무와 수업은 기간제 교사에게 이관되었다.

이 연수는 꼭 받고 싶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서 넘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게 유리한 법이 생겨 그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연수 기간에 캐나다 토론토에 1개월간 머물면서 현지 초등학교에서 프랙티컴을 했다.


이런 연수를 쉼 없이 받으면서 영어 의사소통 능력과 영어 교수․학습 지도 능력을 키웠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담임업무였다.


담임 업무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교사는 일단 담임을 맡아야 한다.

그다음이 교과 지도, 생활 지도 및 맡은 분장 업무를 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업무 부서 부장을 맡으면 담임을 하지 않기도 한다.


처음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북한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그 중2 말이다.

한 반에 한두 명이 말썽이었다. 그들이 일당백이었다.

B는 단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매일 지각이요, 복장은 불량했다. 생활 지도를 하면 또박또박 대들었다.


그 애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인근에 있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한데 어울려 큰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B는 학교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을 저지르곤 했다.

학교 교복을 입고 사고를 치니 학교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들의 소행은 이랬다.

한 가게에서 피자 두 판을 시킨다.

하나는 앞동 주소, 다른 하나는 뒷동 주소로 배달시킨다.

쪽같이 숨어 있다가 피자 배달원이 앞동에 배달을 갈 동안에,

뒷동에 배달할 피자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피자를 훔친다.

이를 의심한 배달원이 작심하고 범인을 잡으려고 엿봤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덜미가 잡혔다.





L은 항상 박치(박은 치마)를 입었다.

다른 여자 애들도 한사코 박치를 좋아했다.

알다가도 모를 애들이었다.

그 치마를 입으면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치마 길이는 한 뼘도 안 된다.

교문 지도를 하던 학년 부장 선생님이 L의 치마를 압수했다.

그것 때문에 L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 선생님, 차 긁힌 거 보셨어요?


어느 날 반장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L은, 담탱(담임) 차를 긁었다며 애들한테 무용담처럼 말했다고 했다.

영어과 부장이라 급한 공문 처리할 일이 많아서 초과 근무를 부쩍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 교무실 캐비닛에서 잠시 눈 붙였다가 출근하셨어요?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나를 보고 동료교사가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퇴근할 때는 어둑어둑하여 차를 쳐다볼 겨를이 없었고

날이 채 밝기 전에 출근하니 내 차를 살펴볼 틈이 없었다.


반장의 말을 듣고 내 차를 살펴봤더니

대문짝만 하게, ‘죽어 버려~’라고 큰 글씨로 차를 긁어놓은 게 아닌가?

치마를 뺏은 학년 부장의 차가 어느 것인지 모르니

대신에 담임의 차를 긁어 버린 것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K는 대학에 들어갈 나이였는데 의무 교육인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여

해마다 학교에 소집되어 오곤 했다.

학교에서도 최대한 K에게 편의를 봐주어 어찌하든지 중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단 하루도 출석부에 그의 근태 사항을 기록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차라리 무단결석일 때가 더 편했다. 첨부할 서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지각했다가 잠시 후에 줄행랑쳐버리곤 했다.

지각과 무단 조퇴, 두 개의 근태 상황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는 굳이 의사 처방을 챙겨 오게 하여 무단 근태 횟수를 줄이도록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근태계의 부피가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학급의 다른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다.

그 학생의 행방을 늘 감시하고 있어야 했다.

K 때문에 근태계가 여러 권이 되었다.


- 이 정도로 근태계가 두꺼운 담임은 특근 수당을 받아야 해.


나는 근태계를 정리할 때마다 뼈저린 농담을 했다.

그랬지만 K는 결국 그 해에도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했다.

범죄에 연루되어 소년원에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중학교 졸업하는 일이
K에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임용되자마자 연수란 연수를 다 받았다.

곧바로 담임을 맡으면서 별의별 학생을 다 만났다.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간간이 꿈속에 연수를 받고 있거나
여전히 담임을 하고 있다.

#담임

#근태계

#소년원

#박치(박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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