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기말 자투리 시간에도 배움이 충분히 일어난다
"후회할 텐데..."
단어시험을 본다는 말에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차시에 걸쳐 매 수업 시간마다 단어 시험을 봤다. 1학기에 배운 범위에 있던 단어였다.
단어 시험이 끝난 후 서로 시험지를 맞바꾸어 동료 채점을 했다.
사실: (fact)라고 적어야 맞다. 그런데 한 반에 몇 명 정도는 사실: (true)라고 썼다. 난감했다.
"맞다고 해줘요. '사실'이 '진실'이잖아요."
"그러게..."
"그건 아니죠. 어떻게 '사실'이 '진실'과 같아요."
팽팽하다. 정답으로 인정해 달라는 학생, 그건 안 된다는 학생... 학생들은 이럴 때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사실'이 '진실'이 아니지만 단어 시험에서 그걸 굳이 오답 처리 할 것까지 없을 것 같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true라는 말은 거짓됨이 있는지 없는지의 관점으로, 사실(fact)을 바라보는 말이다.
때때로 학생들은 교사가 생각하지 못한 답을 쓸 때가 있다. 말랑말랑한 그들의 브레인은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면 동그라미 대신에 세모해 줘." 나는 회색분자처럼 중간 입장으로 말했다.
"사실이 바로 진실이죠."
"사실은 사실이고 진실은 진실이죠."
'사실'과 '진실' 때문에 팽팽하게 두 패로 갈렸다. 에구, 간단한 단어 쪽지 시험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Jun은 '양해를 구하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Jun은 영어 달인 수준이다.
그런데 그는 'saved two sun'이라고 적었다. 그가 쓴 답을 보고 빵 터졌다. 그는 '양해를 구하다'는 '두 개의 태양을 구했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양해를 구하다'라는 말은 중학교 1학년에게는 생소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기인하다가 뭐예요?"라고 묻는 학생도 있었다.
"그건 원인이 된다는 의미야."라고 답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한자 공부를 탄탄히 해두면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한자를 알면 훨씬 이해하기 편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한자 공부를 틈틈이 하면서 영어 실력도 쌓으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때때로 말하곤 한다.
공부가 싫고 시험은 더욱 싫은 Ha는 '구성원'을 'Gusungwon'이라고 썼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시험지 뒷면에 예쁜 여자 그림(영어교사인 나의 모습)을 그려놓고 "선생님 사랑해요. 영어 너무 어려워요. 그렇지만 다음에는 잘할게요."라고 애교작전을 펼쳤다. 뭔가 열심히 적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Ha는 단어 시험지를 받아 보니 막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편지를 쓰며 시간을 때웠던 것이다.
단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에게는 칭찬 도장 2개씩을 쐈다. 단어 시험에서 3개 정도까지 틀린 학생에게는 도장 하나씩 날렸다. 학생들은 칭찬을 참 좋아한다.
"와아, 나 이제 도장 일곱 개다."
"난 아직 하나도 없는데..."
Ha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Ha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맘이 아팠다. 정기 고사를 보지 않고 대신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자유학기 프로그램으로 Ha는 기가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학기제는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단어 시험 점수가 50% 이하인 학생은 거칠 관문이 있다.
그런 학생이 학급당 서너 명 정도 된다. 그들에게 멘토를 매칭시킨다. 일단 멘티는 멘토의 단어 목록을 보고 정답을 다 쓴다. 그런 후에 5~6장 정도의 여분의 단어 시험지를 멘토에게 맡겨둔다. 멘티는 멘토에게 여러 번의 단어 시험을 수시로 본다. 그리하여 단어 시험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