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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Oct 25. 2023

 다시는 내가 <TV소설>을 보나 봐라 (1)

- 독서 대신 택한 TV를 통한 '읽기'였는데

[스포 주의]


뭐든지 젊을 때 하는 게 좋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말이 실감 난다. 백세시대라 해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그 이유는 점점 책 읽기가 쉽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책을 오래 읽으면 눈이 시리다. 때로는 비문증( 飛蚊症) 증상도 생긴다. 그래서 장편 대하 소설 읽기는 아예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런데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일은 그런대로 할 만했다. 몇 편의 오디오북을 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내 독서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TV 소설>이란 걸 보기로 했다. 요즘도 <TV 소설>이 방영되는지 잘 모르겠다. 스마트 TV에서 찾아보니 <TV 소설> 중  '은희'가 눈에 띄었다. 'TV 다시 보기'로 '은희'를 2회 정도 봤는데 그 다음 회차부터 '유료 보기'로 전환됐다. 그래서 티빙과 넥플릭스에서 <TV소설>을 보려고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TV소설> 영상 클립이 몇 편 보였다. 그중에 '은희' 전편(무려 140편)을 수록한 것이 있었다. '얏호 심봤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클립은 영어 자막까지 입혀져 있었다. 그 영상을 시청하는 중에 '아하, 저걸 영어로는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라며 보는 묘미도 있었다.


나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대체적으로 끝을 보는 편이다. 그래서 꾸역꾸역 '은희'를 시청했다. 140회나 되는 것을 다 보려면 일상을 멈춰야 할 판이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TV를 켰다. 그리고 '은희'를 봤다. 서서히 '은희' 홀릭에 빠졌다.

TV나 영화 취향이 남편과 전혀 다른데 어쩌다 우리 부부는 함께 '은희'를 보게 됐다. 때때로 나오는 패싸움이나, 주먹 다툼 장면 때문에 남편이 '은희'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샌님 같지만 복싱이나 이소룡 시리즈 등을 보곤 했었다. 나는 그런 장르는 딱 질색이다.

하여간 어쩌다 우리는 둘이 나란히 TV를 보게 됐다. 별일이었다. 하필 장편 대하 소설처럼 긴 드라마인데...


한 회차가 36분 정도였다. 전편을 다 보려면 몇 개월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닦으면서 은희를 보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틈만 나면 '은희'를 시청했다.

나는 직장, 간병, 가정생활에다 브런치 글쓰기 등으로 꽤나 바쁘다. 틈새 없는 나날이다. 그래서 TV 앞에 앉아그걸 하염없이 보고 있을 수 없다. 그래도 한 번 보기 시작한 것이니 관둘 수가 없었다. 회차가 더해 갈수록 이어질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게 바로 재미다. 그래서 '은희'시청을 포기할 수 없었다.

봐도 봐도 최종회까지 가려면 아득하여,  "다시는 내가 TV소설을 보나 봐라."라며 '은희' 보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슬슬 드라마의 갈등이 고조됐다. 등장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고 있었다. 어느 날, '은희'를 보고 있는데 남편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어,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 머쓱해진 남편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남편은 드라마 속의 '행인 1'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남편의 'F' 기질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슬쩍 숟가락 하나 올려놓듯이 내 옆에서 앉아 함께 '은희'를 보기 시작한 남편이 드라마에 푹 빠졌다. 


Bing이 알려준 '은희'드라마의 줄거리다.  

'은희'는 2013년 6월 24일부터 2014년 1월 3일까지 방영된 KBS2 TV소설입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전쟁 직전, 세 가족의 엇갈린 운명과 화해, 그리고 젊은 남녀들의 굴곡진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태와 은희 사이의 로맨스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플롯 중 하나입니다. 정태는 은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희는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있었으며, 정태와 은희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드라마에서는 은희와 정태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명호가 함께 있는 은희와 정태 사이를 오해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은희와 정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말을 맺습니다.


'은희'를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던 때였다. 주인공 은희의 역을 맡은 탤런트의 눈이 이상했다. 카메라가 줌인하면 은희의 눈이 새빨갰다. 마치 토끼눈 같았다. 눈병이 걸린 모양이었다.


"어, 저거 봐요, 저분도 눈이 빨갛네요. 저때 눈병이 유행했나 보네요. 검색해 봐야겠다."

라고 하며, 나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시아 투데이'라는 곳에 그것에 관련된 기사가 있었다.

 ‘은희’ <TV소설> '눈병 걸린 여배우들' - 아시아투데이 - https://m.asiatoday.co.kr/kn/view.php?key=914334

주인공 은희역의 눈이 빨갛더니 이어 이백수의 아내인 행자의 눈도 빨갰다. 은희 모친 정옥(알고 보면 사실은 은희의 외숙모)까지 눈병이 걸린 채로 열연을 하고 있었다. 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을 생각하면 눈병 때문에 촬영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희한한 해프닝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희 역할인 탤런트가 감기에 걸려 코 맹맹이 소리를 했다. 그러자 다른 배역들도 감기에 걸린 채 연기하고 있었다. 연속극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방송이 나가야 하니 그런 상황에서도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우리 부부는 꾸준히 '은희'를 시청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의리를 저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배반했다. 이어질 내용은 궁금하고 서로 시간 맞추기가 뭣하여 각자의 폰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따로 시청했다. 아무래도 나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남편이 먼저 '은희' 시청을 끝냈다. 거실에서 내가 TV로 '은희'를 보고 있으면 남편은 스토리의 결말을 다 알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남편은 츤드레 다른 일을 하는 듯 하면서 흘깃흘깃 TV를 훔쳐보고 있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그런 방식으로 <TV소설> '은희'를 그예 다 봤다.


 책으로 읽었더라면 아직도 다 읽지 못할 분량이었다. 그러나 장편 시나리오로 된 '은희'를 TV로 읽어냈다. 물론 책으로 읽었다면 미세한 감정을 더 많이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읽었을 테니 감동은 배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이로 된 책 읽기가 힘든 나이라 아쉽지만 이런 방법으로 작품 하나를 읽어 냈다. 그래도 뿌듯했다. 


다시는 <TV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내심 다짐했건만 혹시 볼만한 <TV소설>이 있는지 슬슬 검색해 보고 있다. 첫째 아이를 낳은 후에 그 고통을 잊고 또 둘째를 출산하는 산모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 내게는 걸림돌이다. 그래도 상황이 되면 나는 또 다른 <TV소설>을 보게 될 것 같다.


[사진:kbs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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