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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Oct 28. 2023

 다시는 내가 <TV소설>을 보나 봐라 (2)

'옥에 티' 몇 가지

[스포주의]


6.25. 사변이 일어나기 전, 개성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아들의 병이 위독해 병원비가 필요했던 차석구는 '개성 상사' 집 아들, 임덕수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사정하지만 덕수는 이를 매정하게 뿌리친다. 실랑이 끝에 덕수가 쓰러지고 석구는 덕수가 떨어뜨린 돈을 들고 달아난다. 잠시 후 개성 상사에서 충직한 집사로 일하던 김형만이 그 곳에 들르게 되어 피범벅이 된 덕수를 발견하고 안절부절못한다. 다음날, 겨우 아들을 살려 놓은 석구는 전날 밤에 쓰러졌던 덕수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게다가 범인이 석구의 절친한 친구인 김형만 주임이라고 하는데... 덕수의 모친 금순이 그 현장에 갔을 때 형만이 피투성이가 된 덕수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 형만은 빼박 살인자가 되고 만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석구는 자수하려고 결심한다. 형만은 사실상 무고하고 석구 자신과 실랑이 끝에 덕수가 쓰러졌다는 것에 대해 낱낱이 기록한 편지를 썼다. 석구는 자신의 아내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적었던 그 편지를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전쟁이 반발했고 형만은 살인 누명을 쓴 채 죽는다. 그 현장에 있었던 석구는 형만의 시신 위에 자기의 재킷을 덮어준다. 그 전쟁통에 형숙(로라 김)이 형만의 시신을 처리했고 그 재킷은 잘 챙겨두었다. 로라 김은 자신의 갓난쟁이 딸, 은희를 남동생인 형만에게 맡겨두었다. 한편, 은희는 정옥(은희를 길러준 형만의 처이자 은희의 외숙모)이 자신의 모친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진실을 묻어둔 채 피난길에 오른 금순은 어린 손주를 안고 강물에 들어간다. 이때 금순과 그의 손자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석구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금순은 석구를 양아들로 삼는다. 피난 후 금순은 인천에서 석구와 함께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굴지의 사업가가 된다. 한많은 피난살이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석구는 금순의 손자, 임성재의 아버지로 다복하게 살아간다. 


한편, 두부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정태, 정태를 믿고 지지해 주는 순덕네 식구들,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무서운 일이 터진다. 피난시절, 골목에서 함께 지냈던 정태 엄마(이미 죽음)를 만나기 위해 정옥과 그녀의 딸, 은희는 인천으로 간다. 그때 부터 갈등의 고리는 얽히고 설킨다.

그런데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임성재는 카메라 속에 들어온 은희를 만난다. 곧바로 그는 은희에게 빠져든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됐다. 왜냐하면 은희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딸(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았다.)이기 때문이다. 


한편, 석구의 딸 차영주는, 오누이지만 피를 나누지는 않은 '남매지간'인 임성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차영주의 질투로 은희는 두부공장(그곳에서 잠시 근무하게 됐으나 석구가 형만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많이 챙겨주는 듯한다.)에서 쫒겨나 '서울호텔' 비서가 된다. 그 호텔 사장인 은희의 친모와 기적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낸다.


금순은 차영주와 임성재의 결혼을 찬성한다. 차석구는 그 결혼을 반대했지만 딸이 죽네, 사네 하니 그들의 관계를 허락할 결심을 한다. 




은희를 향한 정태의 사랑은 남녀 간의 러브 라인 정도를 넘어 '플라토닉' 러브와 '신적인' 사랑이 믹스되어 있다. 정태의 찐 사랑을 지켜볼 때마다 감동이 됐다. 정태는 은희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은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기꺼이 버릴 정도다. 결국 정태는 은희를 지키려다 그녀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시쳇말로 은희는 남자 복이 터졌다. 정태는 물론 금순의 손자 임성재도 은희를 끔찍이 사랑한다. 임성재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딸이 바로 은희라는 것을 알고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울호텔' 후계자인 명호도 은희를 무척 좋아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지나치게 복선이 남발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곧 일어날 지 뻔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감칠 맛이 적은 드라마였다. 정주행으로 시청하니 그런 장면이 쉽게 눈에 띄어 식상했다. 게다가 매회 차마다 엿듣기를 하는 장면이 많았다.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누가 바깥에서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겠는가? 모든 비밀이 그런 방식으로 누설됐다. 


"이거 엿듣기 전문 드라마네."

라고 내가 말했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기만당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차석구가 거짓말하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현실에 있음 직한 일이어야 설득력이 있는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차석구가 하는 행보에는 픽션이 많았다. 거짓말 범벅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니 참 씁쓸했다.




이 드라마 작가의 의도는 인간의 '본성'과 '죄성'에 관한 것을 다루어 고자 한 것 같다.


세상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선하고 착한 사나이, 차석구는 점점 치졸하게 나쁜 사람으로 변해갔다. 정도가 지나쳤다.

자신이 지었던 죄는, 과실치사죄(과실로 인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않아 그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다 했다. 힘들게 이루어 낸 자신의 성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갖은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죄를 눈덩이처럼 키워 나간다. 그런 차석구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본성 속에 그런 맘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뭐든지 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게 너무 과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타인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차석구, 그는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증인(사건 당일 밤에 현장에서 도망치는 자를 봤다고 형사에게 말한 술주정뱅이)을 살해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범죄를 알게 된 '로라 김'을 차로 치어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런 차석구의 두 얼굴은 섬찟하기까지 했다. 

석구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그 특유의  '눈동자 굴리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금방 맘씨 착한 신사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 양면의 모습을 손바닥 뒤집듯이 연기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게 아니라 그 죄를 감추려고 더 큰 죄를 짓는 차석구에 대해 몸서리쳐졌다.

자기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막 나가는 그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하며 살아가는 차석구와 같은 사람이 현실에도 많을 것이다.




죄가 점점 부풀려지더니 급기야 제어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그런 차석구를 지켜보니 극도의 이기심은 죄가 될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차석구는 일말의 뉘우침이 없었다. 

피해자가 그를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결말이 맺어졌다. 영욕의 삶으로 한 평생을 지낸 차석구는 얼이 빠진 사람이 되어 정신 병원에 들어간다. 인과응보란 없었다. 원수갚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인 모양이다. 


드라마는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긴 시간 동안 맘 졸이며 극악한 죄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죄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뉘우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완전 꽝이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그런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TV 소설> '은희'을 다 보고 나니 울림이 작지는 않았다. 미니 시리즈 한 꼭지를 시청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긴 시간 동안 정주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독서 대신  또다시 < TV 소설>을 보려고 쭈뼛거릴 것 같다. 


'다시는 내가 < TV 소설>를 보나 봐라.'라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언젠가 또 다른 인생 드라마를 챙겨 볼 것 같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마음이 헛헛해지는 어느 날에는 슬슬 < TV 소설>을 챙겨 보리라.


[사진:애플티비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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