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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Nov 10. 2023

【영화】그녀에게 <그녀에게>의 리뷰를 보내노라!

- 그 여름, 그 숙제를 이제야 ~

The winter vacation is just around the corner.(겨울 방학이 임박했네.)라는 영어 문장이 생각났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겨울 방학이 머지 않았다. 이번 방학은 내게 마지막이다. 퇴임을 하게 되니 그야말로 방학(放學)이 되는 셈이다.

좌우지간 겨울 방학이 되면 L과 P를 만날 참이다. 지난 여름 방학 때처럼...




합천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진주여고에 진학했다. 1977년 여고 2학년 때부터 J교회에 출석했다. L과 P를 그 교회에서 만났다. L은 후배, P는 선배다.


P 선배는 진주 태생이다. 교회 친구들은 틈만 나면 P 선배 집에 몰려갔다. 그 집은 마당이 넓었다. 낡은 나무 대문이 인상적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우리를 반겼다. 선배가 지내는 방의 창문을 열면 남강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젊은 날의 우리네 가슴을 헤집곤 했다. 또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도 닦아주었다. 때로는 아카시아 향이 창을 통해 들어와 코를 찔렀다. 그 방에서 켜켜이 쌓았던 추억은 진주, 그 도시를 잊지 않도록 건사해 주었다.


L 후배는 경남 함안이 고향이다. 학생이었던 그녀는 교회의 메인 성가대 피아노 반주자였다. 그런 것이 우리들과는 뭔가  달랐다. 그녀는 발랄했고 멋쟁이였다. 그런 L이 내심 부러웠다.

우리는 자취방에서 알루미늄 밥통이 들어있는 전기밥솥을 사용했다. 그런데 L은 아파트에 살았을 뿐 아니라 전기밥솥의 내솥이 코팅된 것이었다. 밥알이 밥통에 말라 붙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그녀가 내게는 브로조아처럼 보였다. L의 어머니는 보건소 소장이었다. 농사꾼의 딸인 내게는 그것도 부러웠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라곤 없을 것 같았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그녀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뭣도 몰랐지만 일단 조문을 갔다. 상복을 입은 그녀를 어떻게 위로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이후로 더 돈독해졌다.


L은 나를 잘 따랐다. 그래서 우리는 모카 비엔나 향 가득한 '돌체'라는 커피숍에 자주 들렀다. 커피숍을 지금은 카페라고 한다.

폼나는 이름을 지닌 커피를 마시러 틈나면 돌체에 들렀다. 우리는 '제비'라는 노래를 신청하여 듣곤 했다. 그 당시에 내가 좋아했던 트윈 폴리오의 하모니와 패티 페이지의 'I went to your wedding.'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굳이 우울에 젖기도 했다. 그 이후로 제비를 볼 때마다 L 생각이 났다.


[출처: 유튜버 everydaypeaceful--조영남의 제비]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을 좋아하여 커피를 마시며 수첩에 적어보기도 했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른 날이면 어김없이 L 생각을 했다.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십 대의 절망과 사랑을 쏟아둔 채 나는 진주를 떠났다. 진주에서의 삶은 8년 정도로 끝이 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서 우리는 그냥 헤어졌다. 기약 없이 헤어진다는 것이 영영 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20년 정도의 시간이 훅 지났다. 그 세월은 쏜 화살 같았다.


우연찮게 연락이 닿아 수원에서 L을 만났다. 그녀는 학교 음악 교사였고 나는 전업 주부였다. 숏커트 머리에 교복을 입었던 때와 변한 게 없었다. 세월이 그녀를 비켜간 듯했다.

우리는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나비 부인'을 봤다. 그날의 감격은, 오페라를 보지 못한 자와 오페라를 본 자로 나누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꽁냥꽁냥 만나며 줄곧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일상의 파도에 밀려 허우적대며 그냥 살기에 바빴다. 서로를 챙기는 것은 부질없었던 듯했다.


시간이 후루룩 또 10년이 지났다. 그즈음에 내 아들은 절체절명의 사고를 당했다. 건너 건너 그 기막힌 얘기를 듣은 L이 연락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들이 곧 깨어날 줄 알았다. 드라마에서 처럼... 아마 L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L의 남편이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어 동반 휴직한 L은 몇 년간 한국을 떠났다. 나는 아들 간병으로 곁눈 팔 시간이 없었다.  

아들의 사고는 내 삶의 대 지진이었다. 삶의 지반이 송두리째 뒤엎어졌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내 전화 목록에는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해졌고 L과의 연락은 요원해졌다. 그렇게 살았다. 한동안...


10년의 세월이 또 흘렀다. 아들은 11년이 넘도록 병상에 누워있다. 여전히 세미 코마 상태다. 간병으로 지쳐있었지만 L을 챙겨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L을 찾을 수가 없었다. L이 꼭꼭 숨어 있진 않았을 텐데 나는 그녀를 닿을 수 없었다.




지난해 진주에 갈 일이 있었다. 그때  진주에서 P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어, 마침 제가 지금 진주에 왔어요. 언니, 우리 만나요."

"지금? 진주라고? 난 지난해부터 인천으로 이사 왔는데?"


진주에 있을 줄 알았던 P 선배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단다. 인생은 이렇듯 묘하다. 20대 이후에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P 선배다. 선배와 같은 도시에 산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군 하나를 얻은 장군의 심정이었다.

날을 잡아 곧 만나자고는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카톡으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P 선배를 통해 L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L의 연락처를 P 선배를 통해 건네받았다. 그래서 우리 셋은 단톡방에서 안부를 챙기며 지냈다.




지난해 초에 우리는 코로나를 뚫고 나의 세컨 하우스에서 만났다. P 선배가 찰밥과 곰국을 끓여 왔다. 그리고 칼칼한 김치와 장조림까지 만들어 싸들고 왔다. 외식이 쉽지 않은 때였다. P선배가 한상을 차려왔다. L은 간식거리와 커피세트를 준비해 왔다.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셨다. 무심하게 흘러간 세월을 헤치고 우리는 비로소 해후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도무지 몰라 우리는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마치 볼링 핀처럼 곳곳으로 흩어져 살다가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우리는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린 그대로였다. 세월만 흘렀을 뿐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느라 바빴던 것이고...


올해 여름방학이었다. L이 종로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서 모이자고 했다. 마음이 들떠 일치감치 나선 나는 교보문고에 들러 책향기를 흠뻑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종로 한 복판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정답던 얘기 가득한 우리였지만 그래도 함께 밤을 새우며 놀지는 못했다.

겨울 방학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각자 저마다의 일상 때문에 총총히 되돌아갔다. 


그날 집에 돌아간 L이 단톡방에 <그녀에게>라는 영화 포스터를 올렸다. 당장 검색하여 온라인에서 영화를 구매했다. 나는 영화를 본 후에 리뷰를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그 여름, 그 숙제를 이제야 하고 있다.

L이 그 영화를 소개한 이유는 여러 가지 깊은 속내가 있을 것 같았다.



[스포 있음]


줄거리: 혼수상태에 빠진 사랑하는 사람을 둔 두 남자의 엇갈린 사랑과 그들에게 놓인 딜레마를 흑백 무성영화 등 다양한 시청각적 소재를 활용하여 보여주는 영화였다. 남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베니뇨는 코마 상태에 있는 알리샤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다. 그는 알리샤 곁에서 그녀에게 끊임없이 자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에게>는 베니뇨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의 심리분석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녀에게>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은 베니뇨가 알리샤를 강간했다는 것이다. 그 강간으로 알리샤는 임신이 되고 베니뇨는 감옥에 간다. 아이는 사산했지만 출산으로 인하여 알리샤는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발레 강습소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다. 그렇지만 변호사는 알리샤는 여전히 혼수상태이고 아이는 사산했다고 베니뇨에게 알린다. 베니뇨는 모든 것에 절망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살아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요.'라고 했던 베니뇨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혼수상태로  11년을 보내고 있지만 내 아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헌신적인 사랑밖에 해 보지 못한 베니뇨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기에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혹시 우리도 아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고집하며 사랑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 의구심이 생겼다.


L은 영화 포스터와 함께 OST도 함께 업로드했었다. 떠난 사랑을 그리워하다 죽어 비둘기가 되어서도 기다린다는 사랑의 노래였다. 음악교사인 그녀에게는 영화보다 OST가 더 맘에 닿았을 것 같았다. '쿠쿠루쿠쿠 팔로마'라는 곡이 그녀의 속마음에 파고들었을 것이다.


L은 그 영화를 볼 때, 내 아들의 혼수상태를 염두에 두어 더욱 감명 깊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꼭 언젠가 이 영화를 나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https://youtu.be/bkAZJxDNj4Q




L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일만 마디 말보다 힐링이 되는 영화 한 편을 보라는 의미였으리라.


베니뇨의 사랑은 집착적인 사랑 혹은 스토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메카폰을 잡은 감독은 그 이상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 같다. 소통할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이다라는...


나는 아들과 11년간 아무런 소통을 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




방학이 되면 우린 다시 어느 카페에서 마저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겨울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만난 그날, 우린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마냥 즐거울 것 이다.


[사진: 다음영화]

#그녀에게 #영화 #후배 # 영화리뷰 #중증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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