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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Sep 28. 2023

'라이징 스타' 요람기

- '세계 각국의 전통 의상 및 음식 조사'하기

한 학기에  두 번 정도는 조별 활동으로 수행평가를 본다. 수행평가는 과정 중심 평가다. 그래서 여러 단계를 관찰하여 과목별 세부 특기 사항에 입력한다.

수행평가의 맹점은 무임승차다. 그 폐단을 막기 위해 활동지 뒷면에 자신이 했던 활동을 일일이 기록하도록 했다.


조별 활동을 할 때 조를 잘 짜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의 조 안에는 리더 격의 학생이 는가 하면 학습이 부진한 학생도 함께 활동을 하게 된다. 자기들끼리 맘에 드는 사람끼리 모이기 해서도 안되고 잘하는 사람만 가득 모여 있어도 안 된다. 각 조의 두뇌 총량의 평균을 고려해야 한다. 남녀 구성의 조합은 물론 우등생과 열등생 등을 적절히 배정해야 한다. 눈으로 학생들의 앉은자리를 훑어보며 조를 편성하고 있는 교사를 학생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다. 교사는 머리를 짜내 모두가 불만이 없도록 조를 편성한다. 그렇게 하여 박수를 세 번 치고 "여기, 여기"라고 하며 조를 짜 주면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불만의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의 협조는 교사를 신뢰한다는 표현 같다. 교사의 속마음을 학생들이 읽은 듯하다.


"Bin과 Bum 너네 조에 포함시켰어. 그래도 너네 둘이는 Bin과 Bum을 잘 이끌어줄 수 있을 거야."


1조의 구성은 극과 극인 조원들이 모였다. 그래도 Hyub과 Seo는 불평이 없다. 그 점이 바로 Hyub과 Seo의 품격이고 인성이다. 영어 학습에 부진아인 Bin과 Bum을 기꺼이 자신들의 조원으로 받아들였다. Hyub과 Seo가 Bin과 Bum를 잘 이끌어 줄 것 같아 안심이 됐다.


한편, Lu는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준비하지 않아도 거울은 꼭 책상 위에 올려둔다. 마스크를 꼈고 앞머리는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건만 Lu는 습관처럼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에 애착이 심하다.


"Lu, 책상 위에 있는 거울 치우세요."


내 말에 Lu가 샐쭉표정을 지으며 거울을 책상 속에 집어넣었다. 근데 잠시 후에 쨍그랑하는 소리가 다. 그 사이를 못 참고 Lu가 거울을 다시 꺼냈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 Lu의 뒤에 앉아있던 무뚝뚝한 Sang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교실 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뭘 하려나?'


Sang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가서 깨거울 조각을 쓸어 담았다. 내가 Sang이라면 Lu와 같은 애는 딱 질색일 것 같은데 Sang은 아니었다. Sang은 다음에 여자 친구한테도 다정할 것 같았다. 말없이 깨진 거울을 다 치운 Sang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Sang의 멋짐이 뿜어져 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학급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Eun이라는 학생이 있다. 그녀는 말을 참 잘한다. 핑계를 댈 일이 있으면 손짓, 몸짓을 다해 가며, '선은 이고 후는 렇다'라며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너, 참 말 잘하네."

"네에, 그렇죠? 제가 말을 쪼끔 잘해요."

라고 Eun이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Eun처럼 자신감이 넘친다.


 Young은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태도도 모범적이다. 그러나 영어 기초가 탄탄하지 않다.  Young은 반장인 Chae와 같은 조가 됐다. 과연 Young은 프로젝트 활동에어떤 파트를 맡을지 궁금했다.




지난해부터 중1 학생들에게 노트북이 한 대씩 지급되었다. 올해는 노트북을 교실에 놔두고 다니도록 노트북 충전 및 보관함을 각 교실에 비치했다. 교실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으니 조별 과제를 할 때 매우 편리했다. 이번 수행평가 준비과정에 노트북이 한 몫했다. 지난 해만 해도 캐리어에 태블릿을 30대씩 싣고 각 교실에 가서 나눠 주고 그것을 활용했었다. 올해는 교실에서 곧바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어서 참 편리했다. 노트북을 이용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그 자료를 설명하는 지문을 만드는 과정 중에 영어 학습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반장 Chae는 Young에게 영어 해설 지문을 읽는 역할을 맡긴 모양이었다. 사실 각국 전통 의상 및 음식 등을 소개하려면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영어 어휘보다 어려운 것이 많다. Chae는 Young에게 이어폰을 끼어 주고 노트북을 통해 발음이 어려운 단어를 반복해서 듣도록 돕고 있었다. Young은 Chae가 알려주는 대로 묵묵히 영어 학습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둘 다 대견스러워 보였다. 때로는 또래가 최고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Young을 잘 이끌어주는 Chae를 보며 느꼈다.


Ha는 한없이 맑기만 한 학생이다. 욕심도 없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없었다. 영어의 기초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단어 시험을 보면 뒷면에 그림이나 그렸다.


Ha에 비하면 Dam은 완벽주의에 가깝다. Dam은 새 학기 첫 시간부터 눈에 띈 학생이다. 한 시간 내내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자석으로 잡아 끄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수업 과정에서 하는 단순한 활동도 대단한 프로젝트처럼 해내는 학생이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번 수행평가에서도 Dam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어우러진 활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Do. 1과  Do. 2는 브로맨스가 쩌는 사이다.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니 영어 프로젝트 준비를 한다며 둘이 서서 영어로 촌극을 하고 있었다.


"너네, 뭐 하냐?"

"쟤네 둘이 '도도새'예요."

"그거 말 되네."

"선생님, 인생에서 재미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잖아요?"


Do. 1이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저희는 아주 재미있게 발표하려고요. 영어로 개그를 할 작정입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물론 샘도 기뻐하실 거예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수행평가 당일에 완성된 활동지에 적힌 설명 부분을 보고 읽거나 따로 준비한 큐시트를 보고 읽는다. 그런데 Do.1과 Do. 2는 아예 그 큐시트를 대본처럼 외워 촌극으로 발표할 계획이란 것이었다.


"근데, 선생님, 그거 진짜 '구찌'예요?" 내가 무늬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갔더니 뜬금없이 Do. 2가 기습 질문을 했다.

"아니, 그냥 선물 받은 건데, 짝퉁이야."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Do. 2는 내 말을 믿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요즘 명품을 카피한 제품이 많아."


Do. 2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Do. 2는 명품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일전에도 내가 걸고 있는 마스크 목걸이 줄을 보고, '"그거 구찌네요."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입은 여름옷의 큐빅 디자인을 보고 "어, 선생님 샤넬 옷 있으셨다."라고 하기도 했다. 정작 나는 샤넬의 로고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잘 모르는데...


'단 돈 몇 만 원짜리야.'

이렇게 말하려다 참았다. 명품과 단돈 몇 만 원짜리 그 중간에 있고 싶은 야릇한 이기심이 솟았다.


Do. 2는 멀티 브레인인가 보다. Do. 1과 영어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그 와중에 내가 입은 티셔츠가 명품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어보는 걸 보니...




두둥, 드디어 수행평가 발표일이 되었다.


Hyub과 Seo는 자신들은 활동지를 완성하는 일을 하고 발표일에는 100% Bin과 Bum이 할 수 있도록 콘티를 짰다. 얼마나 가르치고 연습을 시켰는지 부진아 Bin과 Bum이 발표를 무사히 잘 해냈다. Bin과 Bum의 인생에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한 나라의 전통의상과 음식에 대해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했던 중1 영어 수행평가 시간이 그들에게 큰 용기가 됐을 것이다. 친구를 세워주고 빛나게 했던 Hyub과 Seo를 업어주고 싶었다. 짜식들 참 멋져.


Lu와 Eun이 같은 조였다. 평소 수업에 관심이 없었던 Lu가 조별 활동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 조는 Lu가 영어로 설명하고 Eun은 활동 내용을 우리말로 요약 정리했다. 환상의 콤비였다. Lu에게 이런 열정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Lu는 자기 역할이 주어지면 제대로 하는 유형이었던 것이다. 그룹으로 하는 형태의 학습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Young은 마치 로봇처럼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자기 수준에 버거웠을 프로젝트였지만  Chae의 도움으로 그 어려운 과정을 해냈다. 학급 친구들도 숨죽이며 Young을 응원하는 맘으로 경청했다. 또래를 잘 가르쳐 마침내 수행평가 발표 당일에 학급 앞에 당당히 세운 Chae가 멋졌다.


Dam은 결국 손댈 것 없을 정도의 완벽한 작품을 완성했다. 대문 사진에 있는 것이 Dam의 작품이다. 그림을 실사 사진처럼 그렸다.


Ha의 조가 발표할 때였다. 서너 문장으로만 설명해도 되는데 Ha가 큐시트로 준비한 A4 출력물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어 하나 온전하게 쓰지 못하는 Ha에게 프로젝트형 수행평가는 그녀에게는 영어 학습의 터닝 포인트였을 것이다. 


그런데 발표하는 Ha의 실력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그렇게 유창하게 발표할 턱이 없는데? 그냥 의아할 따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탁 바로 앞에 앉은 Ha의 큐시트를 우연히 봤다. 영어 지문 밑에 독음을 빠짐없이 적어 둔 것이 아닌가? 완벽한 발표를 위하여 Ha가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독음을 읽고 있었으니 유창하게 영어로 설명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방법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최선을 다한 Ha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거 하느라 밤샘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수행평가잖아요?"


수행평가라는 교육 과정을 위하여 Ha가 고민하고 노력했을 일을 생각하니 기특했다. 이 일이 Ha의 학업에 진 일보를 가져다줄 것 같았다. 대단하다. Ha~


도도새, Do.1과  Do. 2가 발표하는 순간은 그냥  말 그대로 재미있었다. 내용의 질을 논할 것이 못 됐다. 두 사람이 액션을 해 보이며 영어로 발표하는 작품 소개 멘트는 영어 개콘을 보는 느낌이었다. 누가 그랬다. 영어로 웃기는 것이 실력이고 영어 코믹을 이해하는 것이 수준 높은 영어 실력이라고...'도도새' Do.1과  Do. 2는 이미 수준 높은 영어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도도새의 행진에 박수를 보낸다.




2학기 1차 수행평가는 영어 실력 그 이상의 값진 열매를 거둔 교육과정이었다.

[1-10반 한 가운데 있는 작품이 Dam이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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