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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Oct 04. 2023

전직 공무원 제1일 차, 얄짤없군요

- 대출이 불가한 현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태양이 솟았다. 그날도 늘 같은 루틴이었다.


2023년 9월 1일!


바람이 다소 선선해졌다. 기분 탓이었을까? 찜통더위가 누그러진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마다 봤던 아파트 정문 앞 거미도 여전한 모습으로 거미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하여간 그런 아침이었다.


그러나 나의 신분은 그 전날과 아주 달라졌다. 퇴임 다음 날인 9월 1일에도 평소처럼 출근다. 내가 떠날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근무하 됐다. 기간제 교사 계약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던 일을 그냥 그대로 이어서 하게 됐다.




코로나 시국에 확진되는 교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임시법이 생겼다. 정년 퇴임한 교사를 곧바로 기간제 교사로 채용할 수 있도록하는 법이다. 


"오늘 공문이 왔어요. 퇴임 교사가 곧바로 기간제로 근무할 수 있는 법을 올해까지 적용한대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2학기에 이어서 근무하실 수 있겠어요?"

"예? 아, 네에."


교감 선생님의 제안에 안이 벙벙해졌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퇴임을 앞두고 틈틈이 학교에 있는 짐을 집으로 챙겨갔다. 퇴임하는 날 간단히 집으로 가져갈 정도만 남겨두었다. 그런데 연장해서 근무할지 말지 결단할 일이 생겼다.


'이걸 어쩌지?'


기간제 교사로 연장하여 근무하는 일은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어려울 일은 더욱 아니었다.


비교적 결정을 빨리 하는 타입이지만 온종일 그 일에 대해 고민했다. 어골도를 그려보니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될 때의 장, 단점이 비슷했다.


장점: 맡은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르치던 학생들의 학업도 잘 마무리할 수 있다.
단점: 6개월간 더 직장 생활에 얽매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결국 기간제 교사로 6개월 더 근무한 후 교직을 떠나는 쪽으로 결정했다. 연착륙하는 비행기처럼...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쳤다.

 

그렇게 맞이한 9월 1일은 전날과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내 신분의 변화에 대해 알 턱이 없다. 동료들도 여전한 모습으로 대했다. 내 자리그대로 앉아 내가 하던 업무를 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 똑같은 오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저녁에 여동생의 전화를 받은 9월 1일은 결코 여전하지 않았다.


"언니야, 있잖아... 아마 10월 말쯤에 돈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말하자면 복잡한데..."

'헉, 올 것이 왔구나.'


동생의 전화를 받는 순간 직감했다.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세를 내 준 아파트 세입자가 집을 장만하여 입주한다네. 그때 전세금을 되돌려 줘야 할 것 같아. 알다시피 얼마 전에 공장 하나 더 마련한다고 여유 자금이 다 들어가 버렸어. 게다가 그 아파트는 재개발 때문에 신탁에 맡겨져 있어서 담보 대출도 할 수 없어."

"아, 그렇구나."

"그래서 10월 말쯤에 돈이 필요할 것 같아... 언니야..."




동생은 언제라도 쉽게 큰 돈을 융통할 수 있는 나의 개인 창구였다.


"네가 필요하다고 하면 빌린 돈을 여축없 돌려줄게."


라는 멘트를 동생에게 날렸다. 빌린 돈을 동생이 달라고 한다면 언제라도 되돌려줄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 돈이야 대출할 능력이 있는 나였다. 동생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으니 선뜻 큰돈을 빌려주곤 했을 것이다.

그동안 몇 번, 동생의 덕을 봤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미처 팔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생에게 돈을 빌려 내 맘에 드는 집을 골라 계약할 수 있었다. 동생한테 일단 자금을 융통한 후에 일이 처리되는 대로 동생의 돈을 갚다.  

 



지난해 주택법이 개정되었을 때다. 그 틈을 타 나는 제대로 된 세컨 하우스를 마련했다. 그 이전에는 '규제 지역'이라 법이 허락하는 수준인 빌라를 세컨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택법 개정에 발맞추어 세컨 하우스로 '아파트'를 구입할 때 동생돈을 융통 주어 맘에 드는 집을 구입했다. 비록 풍 맞은 주택시장이었지만... 


https://brunch.co.kr/@mrschas/217


그런데 세컨 하우스로 아파트를 구입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동생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새 아파트를 사는 데 보태려고 했던 빌라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택 담보 대출을 하고도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돈을 융통했다. 매매되지 않은 그 집 월세로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주택시장 마비가 풀리면 곧장 팔 예정이다. 그것이 팔리면 동생에게 빌렸던 돈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돈이 곧 필요할 것 같다고 하니 당장 걱정됐다.


왜냐하면,

동생이 전화한 그날, 공교롭게도 딸내미가 새로운 집을 계약하던 날이었다. 대출 융자금을 갚을 예정이었던 여윳돈딸에게 빌려주었다. 딸내미는 12월 초에 입주한단다. 그 후에 내 손에 돈이 들어온다. 동생이 10월 말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돌려줘야한다.(과부 딸라 빚을 내서라도) 그래서 당장에 두 달 정도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해졌다.


찐 강남에 사는 딸이 평수를 좀 넓혀서 강북으로 집을 옮길 거랬다. 그래서 내가 돈을 빌려주면서 맘에 드는 집을 골라 계약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계약금을 빌려주면서 미리 집을 찾아보라고 했다.



동생에게 빌린 돈을 제 때 돌려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봤다. 


동생이 내 돈을 보태지 않아도 자금이 충족된다.

딸내미가 살고 있던 집이 만료일 전에 새로운 세입자가 집을 계약을 한다. (그러면 그 계약금을 미리 챙겨 받을 수 있다.

내가 내놓은 집이 팔린다.




동생에게 돈을 제 때 돌려 주려고 하니 슬슬 걱정이 됐다. 그래서 먼저 카뱅을 통하여 융통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봤다. 대출 종류 중에서 한두 개를 클릭하여 대출이 가능한지 타진해 봤다.

[대출 종류]

엊그제까지만 해도 대출을 해준다는 루트가 그렇게도 많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막상 그게 절실히 필요한 때인데 대출이란 대출은 모두 안 됐다.


나는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다. 게다가 6개월 계약직이고 겨우 제1일 차 근무일이니 당연히 대출불가였을 것이다.


직장 하나만 보고도 빵빵하게 빌려준다고 했던 '비상금 대출'마저  손절이었다.


모든 대출은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적용된다. 대출한 이자를 갚을 능력을, 재산으로 보는 게 아니라 소득액으로 계산한다는 말이다. 직장 근무 여부를 보고 대출해준다.


물론 정히 급하면 카드론이나 캐피털을 통한 대출을 해도 되겠지만 그런 것은 해본 적이 없다. 이자가 비쌀 것 같아 겁부터 난다. 그래서 아예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내게 관대했던 대출의 길이 막혔다. 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내게 돈을 빌려주지 않게 됐다. 하루아침에...

그게 현실이었다. 전직 공무원 제1일 차에 그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당장에 코가 쑤욱 빠졌다.


돈줄이 탄다, 라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다.


"이렇더라. 이게 현실이더라."라고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융통해 봐야지. 너무 걱정 마시오"라고 동생이 말했다.


동생에게 제 때 돌려주지 못하면 못난 언니가 된다. 그래서 맘이 무거웠다.


"앞으로는 여유 자금을 잘 챙겨놔야겠네. 이렇게 갑자기 필요할 때 융통할 길이 막막할 테니."

"이번 일로 그걸 알게 됐네요." 우리 부부는 남은 노후 생활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전직 공무원이지만 이제 대출은 글렀다. DSR이 대출의 기준이 되는 시대라...


"여유 자금을 챙겨 고 분수껏 사는 수밖에."

"그래야겠어요."

우리 부부는 허허로운 웃음을 주고받았다.


전직 공무원의 제1일 차에 힘이 쭈욱 빠졌다. 얄짤없는 대출 때문에...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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