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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Nov 18. 2023

11월 11일 11시 11분에

- 시 한 편을 읽고 있었답니다

2012.11.7. 지금으로부터 만 11년 전에 우리 가정에 몰아닥친 폭풍은 된통 센 것이라 지금도 여전히 그 여풍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 폭풍의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어처구니없다'로 하고 싶다.


대학 3학년이었던 아들이 자전거에서 넘어져 정신을 잃고 중환자가 되어 버린 날이다. 아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 있었다. 세데이션(일종의 수면 마취) 상태로 아들의 생명이 연장되는 중이었다.


그 사흘 후에도 여전히, 아들은 자가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를 낀 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만 면회가 가능하여 막간에 아들이 다니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아들의 부모인 우리가 동참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줄을 모르셨을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좌우, 앞뒤에 있던 성도들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목놓아 울어야 할 우리는 오히려 숨죽여 울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별히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은 내 아들이 당한 비보를 교회 앞에 알리는 일이 그토록 가슴 아프셨던 모양이었다. 뒷말을 잊지 못하고 계셨다. 그날 우리 대신 목놓아 울어주던 성도들의 눈물이 아들의 호흡을 돌려놓았을까? 아들은 자가 호흡이 돌아왔다.


그날 오후에, 나는 한 편 시를 썼다. 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기막힌 세상


세상 위에

하늘나라 있고

아들은 바로 그 아래 있다.


내 아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놓아 울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 속에 묻혀  

자신의 세상에 산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들만 지켜보는 세상에 와 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다 잊고

아들만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기막힌 세상에서

오늘 하루를 겨우 지웠다. (2012.11.11.)




긴 하루 같더니만 돌아보니 훌쩍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할 판이다. 그러나 아들에게 변한 것은 없다. 변해야 할 것이 그대로 있거나 나아져야 할 것이 여전할 때의 답답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플래토 현상*을 경험 해보지 않았으면 나락에 나동그라지는 절망감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한 순간을 캡처함 23.11.11.11:11]




아들의 투병 제12년 차가 되었다.  

2023.11.11.11:11분에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11년 전 그때, 시(詩)라도 끄적댔듯이...


그래서 홀로 한 편의 시(詩)를 소리 내어 읽었다.


이별 이후(문정희)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 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안 가득 밥알 떠 넣는 일이다


옛날 옛날적

그 사람 되어 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 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문정희, 「이별 이후」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왜 이별했을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을까? 그것은 알 길이 없고...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안 가득 밥알 떠 넣는 일이다


이 구절이 맘에 쏙쏙 와닿았다.

아들만 바라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여행도 다니며 잘 지내는 내가 슬프다. 시인이 그런 내 심정을 알기나 하듯이 내가 할 말을 대신 하고 있었다.





아, 내년 11월 11일에는 기막힌 시(詩), 기적의 시(詩) 한 편을 쓰고 싶다.

마침내 아들의 병상 플래토 일지가 확 바뀌었노라는 큰 기쁨의 시(詩)를 쓰고 싶다.



*플래토 현상: 학습곡선에서, 일시적으로 진보가 없이 평평한 모양을 보이는 현상. 그 모양이 고원 모양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다.


#세데이션 #사고 #아들 #예배 #인공호흡기 #자가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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