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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Jul 27. 2023

본가와 세컨하우스를 오가며~

- 기사님, 감사합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피곤이 몰려온다. 그렇더라도 곧바로 집으로 갈 수 없다.

퇴근길에 중증환자로 누워 있는 아들이 지내는 집(본가)으로 가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이것저것 간병 단도리를 끝내고 우리 부부가 지내는 세컨하우스로 향할 때는 거의 녹초가 된다. 저녁을 차려준다 해도 먹기 싫을 정도다. 만사 귀찮아서 쉬고만 싶다. 


본가에서 세컨하우스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그 주간 금요일은 더욱더 피곤하고 몸도 맘도 지쳐 있었다.(7/14)


                               아마도 한 학기 마무리 주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4세대 지능형 나이스 때문에 학교는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탭이 난데없이 사라진 것도 있을뿐더러 제대로 되지 않는 기능도 상당수 있었다. 골탕은 학교 현장에서 다 짊어지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한 학기 동안 펼쳐져 있던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몹시 바빴다.


              아들이 입고 지내는 환자복을 벗기기로 하여 할 일이 더 많았다.


침상에만 누워있는 환자는 여름 나기가 고역이다. 아들은 환자복을 입고 지내왔는데 활동지원사 한 분이 그냥 티셔츠만 입혀보자는 의견을 냈다. 더운 날씨를 생각하면 좋은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중증 환자는 성한 사람과 다르다. 반팔티만 입힌다 생각하니 어미 된 마음으로 소매에 다른 천을 이어 붙여 7부 티셔츠로 만들어 입히고 싶었다. 반팔티만 입으면 팔 부분이 맨살이라 에어컨을 켜면 추울 것 같았다. 


씻고 벗고 갈아입히려면 소매를 이어 붙인 티셔츠가 서너 개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작업이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다.  세컨하우스에서 재단을 하여 가봉을 하고 본가에서 미싱질을 하고... 


고생은 고생 대로 다한 후였지만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순면 7부 남자용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참에 그것을 2개 구입했다. 그 7부 티셔츠는 팔소매를 이어 붙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흰떡에도 고물이 든다'는 말이 있듯이 그냥은 아니었다. 


아들은 위루관줄*을 시술받았다. 그냥 얇은 티셔츠만 입으면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켤 때 그 위루관줄을 건드릴 수도 있다. 환자복을 입으면 위루관줄을 건드릴 염려는 덜 해도 된다. 그 위루관줄은 아들에게 생명줄이다. 그 줄이 빠지면 바로 응급실 행이다. 중증환자가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 가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번잡하다. 그래서 소매를 덧대어 만든 티셔츠나 새로 구입한 7부 티셔츠의 앞부분에 수건이나 타월을 부착했다. 그것을 꿰매는 미싱질은 소매를 이어 붙이는 일 못지않게 고난도 작업이다. 전문 미싱사들에게는 어렵지 않으려나?


또한 위루관줄의 투입구 부분은 옷 밖으로 내놓아야 했다. 그래야 유동식 식사 투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웃옷의 가슴 부분에 적당한 구멍도 만들었다. 구멍을 뚫고 오버록 미싱질을 하고 겉으로 나온 투입구를 담은 미니 주머니를 고착해 두기 위해서 포켓도 만들어야 했다. 이런 사소하고 디테일한 일은 수선집에 맡길 수 없어서 내 입맛에 맞게 내가 만들다 보니 바느질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환자복을 벗기고 티셔츠를 입혀보려고 했더니 바느질하는 기간이 거의  한 달은 걸린 듯하다. 오죽하면 아들을 위한 바느질에 사용된 실의 길이가 지구 한 바퀴를 돌만하다고 내가 말했을까? (사실, 이렇게 바쁜  틈을 내어 고생을 했는데, 새로 샀던 7부 티셔츠는 천이 두꺼워서 여름에 입히기에는 부적격이었다. 또한 환자복을 입히지 않으니 좀 시원해 보이긴 했지만 위루관줄 드레싱 부분의 거즈를 부착한 테이프가 죄다 떨어졌다. 아들 녀석의 심한 하품 짓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헛고생=개고생을 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퇴근 후 아들을 챙기고 다시 집에 가서 저녁 챙길 생각을 하면 '1인 N역'이란 게 실감 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느껴진다. 해가 더할수록 피곤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목하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이토록 아들을 위해서 할 일도 많고, 힘이 들지만 아들은 11년째 플래토 현상처럼 정체 상태로 별 차도가 없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다. 옆에서 도와주는 활동지원사들이 느끼는 피로도와 부모인 우리가 느끼는 바는 다를 것이다. 




세컨하우스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광판에 곧 도착하는 버스가 3대나 있었다. 이왕이면 <87번 버스>를 타고 싶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버스 기사님이 87번 시내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차문이 열렸다. 삶에 떠밀려가듯 생각 없이 버스에 오르는 나에게,


"피곤하시죠?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박꽃 같은 웃음을 지으며 기사님이 인사한다. 피곤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 기사님은 나보다 더  피곤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상냥하게 승객을 맞이할 수 있을까?

뒤이어,


"어서 와, 너무 덥지?"

"안녕하세요?"

"조심하세요~"


그 기사님은 승객의 연령에 따라 맞춤형 멘트로 인사했다.


'앗, 그분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전에 그 기사님이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두어 달 전이었다. 이미 그 아름다운 미담을 브런치 글로 발행했었다. 그때 얼핏 봤던 차량 번호를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 버스 안을 두리번거렸다.

 

https://brunch.co.kr/@mrschas/257


버스 차량 넘버를 확인했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그 기사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었다. 정녕 즐겁고 행복한 주말이 될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던 한 여자분이 기사님께, 


"기사님도 행복하고 멋진 주말 보내세요~"


라고 맞인사했다.

한 주간 지쳐있던 몸이 힘을 내고 있었다. 살만한 세상이다.

위루관줄* 튜브( PEG 튜브 )를 복벽을 통해 환자의 위로 통과시키는 내시경 의료 절차로, 가장 일반적으로 경구 섭취가 충분하지 않을 때 (예: 삼킴 곤란 또는 진정제 ). 이것은 입을 우회함에도 불구하고 경장 영양( 위장관의 자연 소화 과정 활용 )을 제공합니다. (출처:위키백과)


[대문사진: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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