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사고로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병문안 온 학우가 로즈허브라는 귀여운 미니 화분을 들고 왔었다. 그때 처음 맡아보았던 장미허브의 향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즈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아들 때문에 온통 칙칙했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다독여 주는 향이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그 향이 피곤을 씻어주는 듯했다. 어쩌다 잎을 하나 똑 따보면 그 향은 온 병실에 진동했다. 그래서 그때 적은 시가 있다.
몇 해 전 어느 날, 활동지원사 P샘이 화분 하나를 들고 오셨다.
장미허브였다. 황홀한 향기 때문에 내가 참 좋아하는 화초다. 탐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모양새가 추해졌다. 아무래도 장미허브에게 환경이 맞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일단 화분의 자리를 그늘이 있는 쪽으로 옮기고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리고 누렇게 된 잎을 따주곤 했는데 살며시 건드려져도 꼬투리가 툭 떨어졌다.
[처음 우리 집에 온 허브장미/ 점점 모양새가 추해지고 있는 장미허브]
장미허브는 조금씩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런데 누런 잎을 떼어 주다가 몇 번인가 꼬투리가 떨어졌다. 꼬투리는 일부러 따려고 해도 그렇게는 딸 수 없을 정도로 똑딱 끊어지듯 떨어졌다.
이런 어쩌지?
그래 뿌리를 내려보자!
나는 꼬투리를 버릴 수 없었다. 꼭 살리고 싶었다. 그 장미허브 꼬투리를 꽂을 만큼 작은 병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있는 병 중에 가장 작은 것에다 꽂았다. 그래도 꼬투리가 물에 퐁당 빠질 것 같았다. 잎이 물에 닿으면 썩게 되고 뿌리내리기를 할 수 없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병에다 고무줄 2개를 이용하여 크로스 묶기를 했다. 그 사이에 꼬투리를 올려두니 물에 빠지지 않았다. 그 대신 매일 물을 보충해 주었다.
나는
무심한 듯~
세심하게~
화초를 거둔다.
한동안 관심 없는 것처럼 감만두면 화초가 자기의 생태대로 잘 자란다. 그래도 세심하게 또 잘 챙겨주지 않으면 어느 날 시들어 버린다. 그 두 가지 심리를 절묘하게 잘 아울러야 한다.
장미허브 꼬투리를 무심한 듯 며칠 두었더니 하얀 실뿌리가 생겼다.
"어휴, 예쁘게 뿌리가 나왔구나~"
실뿌리를 내린 기특한 장미허브 꼬투리에게 칭찬을 흠뻑 해주었다.
그랬더니 장미허브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뿌리가 어느 정도 튼실해졌을 때 세심하게 좀 더 큰 병으로 옮겨주었다. 좀 컸다고 고무줄 밴딩을 하지 않아도 병에 잘 꽂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화분으로 옮겨 심는다.
팥빙수 용기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양파망을 잘라서 바닥에 깐다. 그리고 준비된 흙을 담고 뿌리내린 장미허브를 조심스럽게 옮겨 심는다. 팥빙수 아이스크림 통으로 만든 미니 화분 물받침으로는 햇반 그릇이 그저 그만이다. 이렇게 작은 화분에 심는 이유는 TV장이나 진열장 위에 올려놓고 사랑스럽게 보기 위해서다.
[뿌리내리기를 한 장미허브를 팥빙수 아이스크림 통에 심는다. 물받침으로는 햇반그릇이 제격이다.]
거기서 땅내음을 맡았다 싶으면 좀 더 큰 화분으로 옮긴다.
뿌리내리기 하여 키운 장미 허브가 이제는 어엿한 화초가 되었다. 곧장 원래 우리 집으로 왔던 장미허브만큼 우람해질 판이다.
화원에 가면 이런 장미허브쯤이야 쉽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화분을 덜렁 사두고 보는 것과는 달리 내가 직접 뿌리를 내리고 잎이 자라는 것을 보며 정성을 쏟을 때 묘미가 있다. 그 정성에 화답하듯이 화초는 자란다. 그 과정 속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게 바로 힐링이다. 오죽하면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일전에 반려식물 병원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식물이 아프면 오세요. 반려식물 병원 개원"이라는 기사였다. 입원실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식물이 아프면 오세요... 서울시, 치료실‧입원실 갖춘 ‘반려식물병원’ 개원 - 여성신문 -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927
장미 허브 외에도 호야꽃, 고구마 순, 스킨 답서스, 꽃기린, 게발선인장, 사랑초 등도 꺾꽂이를 하거나 뿌리내리기를 하면 잘 자란다.
나의 일상은 숨 가쁘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식물에게 정을 줄 때 '일시 정지', '일단 멈춤'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내 삶의 노하우다.
[뿌리내리기로 자라나는 화초들]
장미 허브는 시든 잎을 따 주다가 세 번이나 꼬투리가 떨어졌다. 그래도 모두 뿌리내리기를 하여 살렸다. 마치 식물 의사처럼...
내가 장미허브 꼬투리 하나에도 집착하는 데도 남다른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11년 동안 병상에서 식물처럼 누워 있는 아들이 있다.
내가 장미허브 꼬투리를 뿌리내리기 하여 키우는 것은 그것에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미허브나 다른 화초들을 건사할 때 늘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 손은 꽃을 만지고 있으나 마음은 아들을 향하고 있다. 꽃 같은 아들을... 꽃은 그 마음을 알까? 아들은 내 마음을 알까?
생명은 고귀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한 생명이 전 우주 보다도 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