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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Oct 11. 2023

명절 독박 탈출기(2)

- AI 시대에 누리는 'AI  묘미'

올해는 추석 명절 연휴 끝자락에 딸 내외와 스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긴 연휴 덕분이었다. 명절 독박에서 호기롭게 탈출을 시도했다. 영종도에 가기로 했다. 우리 내외는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나 딸내외와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종도에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 바로 앞에 <교직원 수련원>이 있다. 수련원 이용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당첨될 확률이 희박하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당첨 여부는 심지 뽑기, 복불복이라 내가 원하는 때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취소된 기차표를 구매하듯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보면 당첨이 되곤 했다. 나는 수련원 이용 당첨권을 구하는 금손을 가졌나 보다. 그 덕에 1년에 몇 번씩 그곳에 간다. 그야말로 우리에겐 '별장'같은 곳이다. 늘 같은 풍경이지만 일상을 떠났다가 돌아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중증 환자인 아들을 눕혀 놓은 상태라 먼 곳으로 가는 여행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인천 국제공항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집에서 1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교통 정체를 무척 싫어하는 남편이 영종도로 가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명절 기간 동안 내내 기름진 음식을 먹었던 터라 그날 점심은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H 칼국수'에 도착했다. 사위가 그 칼국수를 먹어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언감생심이었다. 평소에는 번호표를 뽑으면 20~30분 정도 대기했다가 먹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칼국수 가게 주차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H 칼국수'를 지나쳐 다른 곳에 주차했다. 우리보다 살짝 늦게 당도한 딸 내외와 한적한 곳에서 만났다.


"우리 여기서 먹을까?"

널찍한 주차장이라 우선 기분이 좋았다.


"엄마, 그건 아니죠. 이곳은 해물찜이 메인 요리고 후식으로 칼국수가 나오는 거예요."

"엥? '칼국수'라고 적혀 있으면 칼국수를 주는 거 아녀?" 의아해진 내가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갈비 먹은 후에 나오는 냉면과 비슷한 거죠?"

라고 사위가 딸의 말을 거들었다. 어쩌면 딸 내외는 저렇게 생각이 같은지?


"이런 집은 칼국수 전문집과는 달라요."

"아하, 그래서 주차장이 널널했구나. 칼국수 전문점이 아니구나."

딸 내외 앞에만 있으면 나는 왜 이렇게 쪼그라드는지...


"여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네? 그거 말 되네."

그래서 다시 궁리했다. H 칼국수 집에 들어가기는 애당초 글렀다. 검색하여 칼국수 전문점이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 보니 'H 칼국수' 바로 옆에 'M 칼국수'가 있었다. 그곳에는 두 대 정도의 주차 공간이 있었다. 'H 칼국수'에 비해 한산했다. 그곳도 칼국수 전문점이니 '꿩대신 닭'인 셈이었다. 


H 칼국수 집은 곧바로 먹을 수 있도록 칼국수를 완전히 끓인 후에 커다란 대접에 담아 내놓는다. 반면, 'M 칼국수'는 큰 냄비를 불판에 올려 손님이 직접 국수를 끓이며 먹는 방식이었다. 

나는 'H 칼국수'에서 내놓듯이 곧바로 먹을 수 있는 편이 더 좋았다. 그런데 나를 뺀 나머지 식구들은 직접 끓여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풍성한 바지락과 해물에, 낙지까지 넣어 불판에 올려진 칼국수 냄비를 보고 사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마한 양이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대단하네요." 

영종도에서 칼국수를 처음 먹어 보는 사위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국수 면발 맛은 좀 아닌 것 같았다. 국수가 맛있기로 친다면 예단포항에 있는 B 칼국수 집이 짱이었다. 'B 칼국수'는 해물의 양보다는 칼국수 면발로 쇼부를 보는 집이었다.


"거기는 칼국수가 수타면이었어."

"그래요? 그러면 다음에 거기서 한 번 먹어봐요."

남편과 딸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칼국수를 먹은 후에 마시안 해변 절벽에 있는 C 카페에 들렀다. 한국 3대 절벽 카페라고 불리는 그곳은 뷰가 그림 같았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틈틈이 좋은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뚝딱뚝딱 찍었다. 

그런 후에 딸 내외에게 보여줬다. 


"이걸 보시라! 'AI 지우개'에 대해 들어봤어? 아이폰 유저라 그 기능이 없으려나?"

"그게 뭔데요?"

"내 폰을 업데이트하다가 발견한 기능이야."

"엄마는 나이에 비해 얼리 어댑터라니까." 딸이 나를 추켜세웠다.

"그러게."

"이것 봐, 이 전봇대가 거슬리잖아? 이렇게 지우면 깜쪽 같지? AI가 얼마나 똘똘한지... 사물을 지우면 그 뒷 배경이 무엇인지 알아. 전봇대 뒤에 나무가 있어야 하는지 하늘이나 바다가 있어야 하는 것까지 다 알더라니까. 지금은 AI시대야."

"그런 게 있어요?"

사위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이 기능이 참 좋더라. 좋은 장면을 찍었지만 전봇대가 옥에 티가 되었지? 그러면 그 티를 AI 지우개로 이렇게 지우면 돼." 

나는 AI 지우개로 전봇대를 지웠다. 


"우와, 신기, 신기... 정말 신기한데요." 

"이런 것도 있어. 창밖을 찍으니 사진에 빛 반사가 생겼지? 이 부분도 '빛반사 지우기'를 누르면 되고. 

"와, 대박, 대박! 너무 좋아요." 


그때 딸이 한 마디 했다.

"이거는 AI 지우개가 학습한 거예요. 그래서 이 사물을 지우면 그 뒤에 하늘이나 바다가 있어야 하는 줄 아는 거예요." 


그러더니 딸이 'AI 프로필'이라는 말을 꺼냈다.


"우리 한 번 해볼까요?"

즉석에서 딸 내외가 'AI 프로필 앱'을 깔고 'AI 프로필 사진'을 생성하고 있었다. 

요즘 MZ 세대는 정보를 빨리 습득하고 그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나는 'AI 프로필'이란 것에 대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냥 새로운 것을 또 해야 한다는 게 귀찮았다. 프로필 사진 하나를 생성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그럴 바에는 안 하고 말지... 

그런데 딸은 그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도 해보세요."라고 몇 번이나 권했다. 

그들이 하자고 하니 못 이기는 듯이 앱을 깔았다. 


드디어 교직원 수련원에 체크인했다. 곧바로 우리는 포켓볼을 쳤다. 부부 대항으로 저녁 '내기'포켓볼 시합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난 그때야 딸의 AI 프로필 사진이 완성되었다. 딸 내외는 자신들의 아바타 혹은 미니미 같은 AI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낄낄거리며 난리가 났다.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을까? 


그런 후에 나의 AI 프로필을 생성해 보려고 딸이 내 폰의 '갤러리'와 '밴드' 등에서 나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찾고 있었다. 


나는 독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 몇 초간 어색한 연기를 하는 게 쑥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 속에 있는 나를 보면 항상 실망스러웠다.


카메라는 거울을 쳐다볼 때보다 더 적나라하게 얼굴을 찍어내는 것 같다. 평소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주름을 깨알같이 찾아내고 기미, 주근깨도 인정사정없이 찾아내는 것이 사진이다. 

그래서 제쳐두고 보지 않던 사진을 몇 해가 지나서 보면 오히려 볼만했다. 그때가 그나마 젊었을 때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곤 했다. 누가 말했던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딸이 내 휴대폰에서 나의 얼굴 사진을 찾으며 말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독사진이 없어?"


나의 독사진은 열 장도 안될 정도다. 


"응, 난 독사진 찍는 거 싫어해."

"안 되겠네. 내가 필터로 찾아야겠다."

이럴 때 딸은 개발자 모드다. 딸은 자기 폰에서 필터를 '엄마'라고 걸어 내 사진만 골라내는 신기한 기술을 썼다. 


AI 프로필을 생성하려면 내 얼굴 사진 8장이 필요했다. 사진이 부족하여 궁여지책으로 현장에서 얼굴 사진 몇 장을 급하게 찍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필 사진 생성 단계까지 갔다. <4,500명 대기 중입니다.>라는 멘트가 떴다.


포켓폴 시합이 시작되었는데도 딸은 온통 정신이 AI 프로필 사진에 쏠린 듯했다. 


그런데 사위가,

"이거 어떻게 하지?"

라고 큐대를 들고 딸에게 물었다. 그러면 딸은 잠시 폰을 내려놓고 포켓볼 테이블로 다가와서 이리저리 훈수를 했다.


딸이 물리적인 이론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딸은 각도와 강도를 전문적으로 잘 분석했다. 사위는 딸이 하라는 대로 큐대를 당겼다. 여축없었다. 딸이 말하는 이론은 정확했고 그런다고 사위는 로봇처럼 딸이 알려주는 대로 공을 쳤다. 백발백중 명중이었다. 환상의 콤비였다. 


"와, 이 정도인 줄 몰랐네, 우리 딸 대단하다."

남편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우리 부부는 우선 눈앞에 있는 볼을 쳐 구멍에 넣기에만 전전긍긍했다. 딸은 볼을 치고 난 다음의 흰 공 위치까지 정확하게 염두에 두었다. 


"딸을 이번에 다시 보게 됐네. 어떻게 저 정도로 명석하게 분석하지?" 남편이  적이 놀라며 내게 속삭였다. 

그런데 딸은 자신이 포켓볼을 칠 때는 번번이 실수를 했다. 마음이 딴 데 있는 게 분명했다. 그 AI 프로필이 딸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은 모양이다.


우리 부부도 바짝 긴장하고 포켓볼을 쳤다. 그랬더니 어금버금하여  5판 3승 내기에서 결승까지 갔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사위가 첫 볼을 힘껏 치더니 검정공과 흰 공을 동시에 구멍에 넣어버렸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패하는 것이다. 그 라운드는 허망하게 딸 내외가 졌다. 그래서 그들이 저녁을 사게 됐다. 브레인 팀을 이기니 기분이 참 좋았다. (설마 사위가 고도의 기술로 일부러 져준 것은 아닐 것이다.)



"서해 바다에서는 석양을 봐야지 ㅎㅎ"

[카페에서 본 선셋]

"그러네. 그러면 적당한 카페를 검색하여 노을도 보고 저녁도 해결하세."


우리는 석양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카페를 검색했다. 얼마 전에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온 딸 내외는  명장면의 선셋을 직관한 자들이다. 그래도 눈앞에서 해넘이를 지켜보는 것은 지구상 어디에서 보아도 감동적이다. 


우리는 불타는 노을 장면을 함께 만끽했다. 그리고 석양의 상서러움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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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의 AI 프로필 사진이 나왔다. 상상외였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예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분명히 나였다. 심지어 정겹기도 했다. AI가 사기를 쳤다고 표현해야 하나? 

 

"와, 나이 든 사람일수록 AI 프로필 사진의 덕을 더 보겠네."


내가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을까? 볼수록 빠져들어 나는 나르시시즘이 되고 있었다.

남편도 자신의 AI 프로필 사진을 보고 입이 귀에 걸렸다. 가늘어진 머리카락과 대머리 직전인 자신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멋진 라이더 차림의 청년이 눈앞에 있으니... 남편은 자신의 AI 프로필 사진을 시댁의 단톡방에 올렸다. 그리고 AI 프로필 앱 링크도 단톡방에 함께 올렸다.


몇 시간 후에 단톡방에 젊어진 얼굴로 변신한 AI 프로필 사진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셋째 시동생의 AI 프로필 사진이 띄엄띄엄 두 차례 올라왔다.  


첫 번째 프로필 사진은 여자 조카의 얼굴이었다. 

.

.

.

두 번째 프로필 사진은 남자 조카의 얼굴이었다. 


AI가 무슨 조화를 부린 거지?  DNA가 대단한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AI가 숨어있던 것을 다 알고 찾아낸 모양이다. 자녀는 부모의 DNA를 오롯이 내려받는 모양이었다. 


둘째 시동생도 AI 프로필을 올렸다. 젊었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세월을 거꾸로 뚫고 가는 일을 AI가 하고 있었다.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그 사람 같은데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이 앱에서 하루에 한 번씩 '무료' AI 프로필 사진을 생성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매일 하나씩 프로필 사진을 생성하여 다운받았다. 다섯 번째 것은 아주 마음에 들어 아예 카톡 프로필로 사용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알고 보면 이런 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불어넣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예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세월의 풍파가 아니었다면 AI프로필 사진 절반만큼이라도 미모를 유지했을 텐데...


우울하고 칙칙한 맘으로 지내는 사람들은 AI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 보면 힐링이 될 것 같다. 

또한 좋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분들은 'AI 지우개'의 묘미도 느껴보면 좋겠다.


덧글:

아무래도 의심이 간다. 셋째 시동생은 자신의 사진 8장을 업로드할 때 딸과 아들의 사진을 섞어 넣은 게 아닌지 몹시 궁금하다. 어쩌면 그랬을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부모의 얼굴에서 현재의 자식 얼굴이 그대로 나올 수가 있을까? 아무리 AI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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