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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Oct 09. 2023

명절 독박 탈출기(1)

- '방 탈출 게임'과 '데블스 플랜'까지~

우리 부부에게 11년간 명절 모임이란 게 없었다. 다만 명절 독박 간병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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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중증 환자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하하, 호호 웃으며 지냈던 명절은 그저 기억 속에 아련하다. 아들이 사고를 당한 후부터 우리 부부는 명절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다. 우리는 빠지고 다른 형제들끼리 모여 명절을 보냈다. 그게 벌써 11년 째다.


시댁 단톡방에 명절을 보내는 모습의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다고 다른 형제들까지 침울하게 살 필요가 없는 게 맞다. 그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추석은 유난히 연휴가 길었다.

울산에 살고 있는 셋째 시동생이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시동생은 올해는 서울에 사는 작은 아버님 댁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늘 처가에 가다가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특별한 여정이 생기자 작은 아버님을 뵙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큰 형인 나의 남편과 동행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게 잘 될랑가 모르겠다. 명절에 우리는 간병 독박이라. 시간 낼 수 있을지..."

남편이 시동생에게 말했다.


시동생은 작은 아버님 댁에 들른 후에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회포를 풀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시'자 들어가는 분이 손님으로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회용 베갯잇을 사고 이불 등 침구를 꼼꼼하게 챙겨뒀다. 그분들이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시동생은 작은 아버님 댁에 들르는 일정을 취소해야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단다. 시원 섭섭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는 일도 관두기로 했다나? 오랜만에 동기간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맘이 들었다. 그러나 손님을 맞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맘이 있었다. 


시동생의 추석 연휴 일정은 거의 살인적(시동생의 표현을 빌리자면)이었다. 그래서 작은 아버님 댁에 들르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집에 오는 일도 취소한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다시 우리 집에서 1박을 한단다. 아침 일찍 시동생의 입대한 아들(조카)과 면회하기로 약속이 잡혔다고 했다.


시동생은 남편과 기질이 사뭇 다르다. 한 뱃속에 나온 형제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남편은 극 내향형이라 집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목소리도 작다. 걸음도 조용히 걷는다. 그런데 시동생은 남편과는 정반대다. 소리통도 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어요. 제가 저녁 살게요. 레스토랑이나 미리 예약해 두세요."라고 시동생이 말했다.


시동생의 처가는 전남 완도다. 그런데 올해는 수지에 사는 시동생의 처제가 입주를 하게 되어 그곳에서 추석 명절을 쇠기로 했단다. 겸사겸사 수도권으로 올라온 김에 서울, 인천 나들이도 할 계획을 잡은 모양이다.




아들은 본가에서 지내고 우리는 세컨 하우스에서 주로 생활한다. 시동생은 오랜만에 '장 조카'인 내 아들을 보려고 본가에 들렀다. 한동안 외부인 출입이 금지였는데 코로나가 한풀 꺾여 시동생네 가족은 나의 아들을 병문안할 수 있었다. 


"꽤 많이 좋아졌네요."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11년 전과 비교하면 나의 아들은 이렇다 할 만하게 나아진 것이 없다. 아들은 그냥 세미 코마 상태로 목숨만 붙어 있다. 오랜 기간 차도 없는 아들에 대해 우리는 짧게 말을 주고받았다. 


시동생이 방문한 그날은 아들의 침상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들을 침상 목욕시키고 있다. 그럴 때 우리 내외는 땀범벅이 된다. (이런 것이 명절 독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간병하고 있는지 시동생이 직접 봤다. 11년이란 세월 동안 중증 환자 아들을 건사하는 일은 부모라 가능한 일이었다. 자식이라면 부모를 그렇게 간병할 수 있으려나? 아마도 '형제의 난'이 몇 번쯤 일어났을 것이다.


"형님 내외분, 진짜 고생이 많으시네요."

"부모니까 할 수 있더라."


남편이 답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우리의 노고를 누가 알아주랴? 설령 알아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에게 지워진 십자가려니 여기며 묵묵히 겪어내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우리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다 그럴 것 같다.




저녁에 시동생 가족과 경양식 집에서 식사를 했다. 한사코 시동생이 식사비를 결제하려는데,


"멀리까지 왔는데 형이 내야지."


라며 남편이 계산했다. 집에서 명절 상을 차려주지 못하는 형의 마음이었다. 


그날 저녁, 딸 내외와 한 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토론의 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 10시도 못 되어 남편은 병든 닭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은 일치감치 침소에 들었다. 


먼저, 시댁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힘들어하는 딸 내외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했다. 그동안 갈등으로 얽힌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시동생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니가 잘못했네, C 서방, 니가 실드를 쳐야지."


소리통이 큰 시동생은 사위에게 지적질을 했다. 그러자 딸은 사위의 가슴을 토닥여주며 "자기야, 어때? 괜찮아?"라며 다독거렸다.


장인과 전혀 다른 모습인 처 삼촌(시동생)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사위는, "맞아요!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라고 자기의 실수를 시인했다.


"야 임마, 니가 잘못했네. 니가 잘해. 앞으로 모든 일을 H(딸)와 의논하면서 해." 

동서도 시동생과 맞장구를 쳤다.

"그런 실수로 H만 힘들잖아." 


시동생은 몇 번 더 사위에게 고함을 질렀다. 우리 내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여기던 사위인데, 시동생은 마구 대하는 듯하여 맘이 아팠다. 그러나 시동생이 딸 내외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기질상 큰 소리를 질러댈 뿐이었다.


'소리 좀 낮추면 좋겠어요. 밤이 늦었어요. 아래, 윗집에게 방해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또 다르게 생각해 보니 이웃에게 방해가 좀 되더라도 명절이라 이해할 것 같았다.




옛말에 '처 삼촌 벌초하듯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은 처 삼촌은 별 것 아닌 관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다. 시동생은 숫기 없는 장인 대신에 사위에게 큰 소리를 치는 중이었다. 그만큼 딸 내외를 사랑하고 챙겨주는 맘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 것 같았다. 우리 내외는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말할 수 없는 말펀치를 시동생이 대신 날리고 있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여 나누는 토론이라 참 유익했다. 딸 내외와 우리 부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시동생이나 동서가 캐치해 냈다. 동서도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욕심을 부렸구만, 욕심이 늘 화근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위는, "맞아요. 맞아요. 그게 맞아요.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옆에서 듣고 있자니 장모인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 처 삼촌 내외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는 내 사위는 똑똑한 포닥(박사 후 연구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 면에서는 처 삼촌에게 '지지리도 못난 놈'이라고 핀잔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묻어 두었던 갈등의 근원을 알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깊은 핵심 감정이나 원초적인 원인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은 아파도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새벽 2시까지 토론은 이어졌고 좋은 결론으로 딸 내외의 고민에 대한 솔루션을 찾았다. 딸 내외도 맘이 많이 평안해지는 모양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후에 시동생이 슬슬 자기 처가에서 있었던 갈등에 대해 토로했다. 그 순간 동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맏동서와 조카 내외 앞에서 자신의 친정 일을 화젯거리로 꺼내는 시동생에게 섭섭한 눈치였다. 그러자 똑똑한 사위는 거실에서 일어섰다. 마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처럼, "작은 아버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라고 하면서 감정의 갈래를 잘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냐? 그렇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기고 만장하던 시동생은 소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조카사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시동생 내외가 갈등을 느끼며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딸 내외가 아주 명료하게 핵심을 찾아 주었다. 신기했다. 그 장면이...


'아하,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기 힘든 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위도 자신이 처한 고민거리 앞에서는 전전긍긍하더니 삼촌의 일에 대해서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우리의 이 기막힌 토론의 현장을 남편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깊은 잠은 자지 못했을 것이다. 거실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오고 갔으니 말이다. 결국 나도 새벽 3시경에 더 이상은 집중할 능력이 떨어져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4시 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좋은 솔루션도 찾았단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다음 날이었다. 남편은 시계추처럼 어김없이 아들을 간병하러 본가에 갔다. 시동생 내외도 아침 댓바람부터 출발하여 용인으로 갔다. 나는 시어머니가 생전에 우리에게 챙겨 주셨듯이 여러 가지를 챙겨서 시동생 차에 실었다. 시동생에게 엄마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맏며느리인가?


시동생은 용인에서 아들(나에게는 조카)을 면회한 후 상갓집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떠나는 시동생 가족을 보내는 맘이 아렸다. 푹 쉬었다 갔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일정은 경남 합천에 있는 시누이 집을 방문하는 것이란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이다. 당일에 울산에 당도할는지?



딸 내외와 늦은 아침을 먹은 후에 오후에 할 일을 의논했다.

남편은 하필이면 오후에 아들의 병원 예약 진료를 하러 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와 동참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나 빼고 셋이서 재미있게 놀아."라고 했다.


남편은 매달 한 번 병원 진료 상담을 하러 간다. 인지 없는 아들을 대신하여 후견인 자격으로 의사와 면담한다. 한 달간 먹을 아들의 경구용 식사와 약을 처방받는다. 그래서 병원 예약 시간 때문에 우리와 놀 수 없게 됐다. 


남편을 빼놓고 우리 셋은 방탈출 게임을 하기로 했다. 


https://brunch.co.kr/@mrschas/62

[방탈출 게임장 입구]

몇 년 전 어버이날에 방탈출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 명석한 딸 내외에게 붙어서 나도 때때로 한 번씩 결정적인 클루를 제공했었다.


그때는 '디스맨'이라는 것을 했고 이번에는 '소울리스'였다. 디스맨이 더 난이도가 높은 게임이었단다. 


셋이 함께 하니 결국 방을 탈출할 수 있었다. 

20개의 관문이 있었는데 힌트를 본 것은 9개였고 정답도 한두 개 봤던 것 같다.


방탈출 게임을 했던 빌딩에 실내 게임장도 있었다. 그곳에 들러 여러 가지 게임은 물론 오토바이를 타고 하는 게임도 했다.


축구공 차기 게임도 있었다. 풋살 동호회 회원답게 딸내미는 커트라인 '70'(아마 시속을 나타내는 수치일 듯)을 통과하여 축구 '슈팅 마스터'가 됐다. 그래서 딸은 선물을 받았다. 나도 축구를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힘껏 차 봤지만 겨우 '44'가 나왔다. 맘은 뻔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사위는 '106'이라 '110'(남자 속도 커트라인)에 도달하지 못하여 아쉽게 슈팅 마스터가 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위와 나는 딸내미한테 된통 혼이 났다.


"너무해, 내가 첫 슛에 '77'이나 나왔는데 그다음 6번을 차는 동안에 영상을 하나도 안 찍다니..."

딸은 많이 서운했던 것 같다. 사위와 나는 나름 그 곤경을 빠져나가 보려고 변명을 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딸은 게임장에서 순간순간 우리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다 남겼다. 딸이 섭섭할 만도 하다. 에공, 담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실내 게임장에서 오토바이로 한 판 달려 봄, 명절 독박 탈출 중]




나들이에서 돌아와 딸 내외가 데블스 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출처: 나무 위키]
데블스 플랜은 총 12명의 참가 플레이어가 6박 7일 동안 진행하는 특별한 게임이다. 피스를 가장 많이 보유한 플레이어 2명이 최종 결승전에 진출하며, 결승전에서 승리한 플레이어가 최종 우승자가 된다 [출처:나무 위키]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유형이었는데, 서바이벌 게임드라마로 제작된 것이었다.


첫 회부터 남편과 나는 어려워서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곧장 자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몇 년 전, 수련회에서 마피아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인 D가 나에게 '부진아'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게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붙여준 닉네임이다. D가 아무리 설명해도 나는 그 게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데블스 플랜을 보려니 가당키나 하겠는가? 겨우  첫 회만 보고 포기했다. 




딸 내외는 데블스 플랜이 엄청 흥미진진하여 연달아 4편까지 봤다고 했다.

그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볼 수 없는 장르였다. 결론적으로 매니아들만 보는 게임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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