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3학년도 종업식과 졸업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임식도 있었다. 나는 퇴임교사라 작별 인사를 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 일곱 분의 교사가 정·퇴 혹은 명·퇴를 했다. 사람마다 내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다른 법이다. 퇴임식에 서 있는 그분들의 내일은 여느 사람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오늘, 바로 이 날이 내 교직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마땅한 말이 없었다.
긴장하며 잠시 들렀던 화장실에서 늘 봤던 시(詩)가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두 편의 시(詩)를 남겨두고 교정을 떠나야만 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애잔했다. 남몰래 시(詩)에게 안녕을 고했다.
이 화장실을 4년째 사용했었다. 화장실, 그곳에 가면 그 시(詩)를 읽곤 했다. 여기서 7년간 재직했지만 다른 교무실을 사용했을 때는 이 시(詩)를 몰랐다. 누군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동안에 감상하라는 의도로 부착해 둔 시(詩)가 내게 이렇듯 감성 돋게 했다. 바로 <우화의 강>과 <자전거>라는 시였다.
이 시(詩)를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달랐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처음 두 행은 그냥 좋았다.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는 말이 살아갈수록 쏙쏙 이해가 됐다.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이 행에서 전해오는 감정은 독특했다. 행간에 수많은 의미가 숨어있는 듯했다. 저 구절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두게 됐다. 나도 점점 큰 강이 되어가고 있었다. 얕고 짧은 식견에 조금씩 깊이가 더해졌다.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곁에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시 구절이다. 나도 그들에게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사람이고 싶었다.
<우화의 강>
[화장실에 부착되어 있는 시]
옆칸 화장실에는 '자전거'라는 시(詩)가 걸려 있다. 나는 '자전거'라는 단어만 들어도 트라우마가 생긴다. 자전거에 얽힌 기억이 몇 조각 있다. '자전거'라고 하는 순간, 아들 생각이 먼저 난다. 왜냐하면 아들은 자전거에서 넘어져 12년째 식물처럼 병상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 구절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 사는 일에 턱없이 뒤뚱거린다는 표현에 공감 백배가 됐다.
그러나 이 시를 읽을 때면 시의 내용은 차치하고 아들에게 이 시를 읽어 주고 싶은 맘이었다. 아들의 상태가 어제보다 오늘은 좀 더 좋아지고, 점점 더 나아져서 우리와 소통이 된다면 아주 나지막이 이 시를 그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아마 아들은 '자전거'라는 소리만 들어도 경악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맞부딪혀 보자는 의도로 이 시를 읽어줄 테다.
퇴임식에서 대표로 송별 인사 멘트를 했던 선생님의 고별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분은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며 차분이 희망적인 이별을 고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학생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제자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시 구절마따나 놀란 가슴으로 새로운 슬픔이 터질 것이다.
종업식 이후에 1층 로비에서 나와 맞닥뜨린 학생들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내가 어디 가는데?'
"선생님 안 가면 안 돼요?"
'나 다른 데 가는 게 아니야. 난 집으로 가는 거야.'
학생들은 퇴임이라는 의미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내가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줄로 알고있는 눈치였다. 한 학생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올해 내가 너네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이럴 땐 츤데레가 최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안 통했다. 감정대로라면 나도 그들을 부여안고 엉엉 울고 싶었다.
"지난해 정말 좋았잖아요. 우리."
캬, '우리'란다. 그래 '우리'가 맞는 말이다.
등을 두들겨 달래주며 학생들을 떠나보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고별사의 핵심은 저것이었다. 저 구절을 낭독할 때 나의 눈물샘은 터지고 말았다. 그 고별사를 하는 그 선생님이 참 멋져 보였다.
오늘은 교단에서 물러나는 날이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읽었던 두 편의 시와 고별사에서 들었던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교문을 잘 넘어왔다. 교정의 나무에 앉은 새들에게도 손을 흔들며 나왔다. 다시는 오지 않을 학교 속을 들여다보는 내내 마음에는 여러 갈래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