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고작 두어 번 미용실에 간다. 나는 주로 세팅파마를 한다. 20년이 넘도록 그렇게 헤어스타일을 관리해오고 있다. 그게 바쁜 내게는 딱이었다. 파마를 한 후에 다시 미용실에 들를 때까지 웨이브가 자연스럽게 살아있다. 그래서 급하게 미용실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좋았다. 나의 헤어스타일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기분에 따라 머리 기장을 정리하러 중간에 미용실에 들를 때가 있긴 하다.
방학 끝무렵에 미용실에 들러 세팅파마를 하는 것이 개학을 준비하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사뭇 달랐다. 미루고 미루었다가 개학 전 날에 미용실에 갔다.
"이번에는 세팅파마 말고 일반 파마로 해주세요."
"아, 그러세요?"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싶어요. 발랄하게."
"변화를 주고 싶으시군요."
"정수리도 풍성하게, 뒤통수도 웨이브가 많게, 기장은 단정하게, 그렇게 좀 해주세요."
단골 미용실이라 평소에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원장님이 알아서 세팅파마를 해 주곤 했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원장님은 휴대폰에서 내가 말한 헤어 스타일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런 스타일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아줌마 파마는 말고요."
아줌마는커녕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아줌마 파마는 하지 말라고 하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심보가 내심 웃겼다.
"당연하죠, 관리하기 쉽게, 그리고 보브스타일로 강남 사모님처럼 해드릴게요."
역시 단골 미용실 원장님 다운 멘트다.
개학 후 딱 5일만 학생들을 마주하면 끝이었다. 교직생활에 마지막으로 학생들 앞에 서는 유의미한 시간이다. 그래서 색다른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고 싶었다.
원장님은 전과 달리 내 머리 기장을 짧게 커트했다. 머리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어 하는 내 맘을 읽은 듯했다. 원장님이 내 머리에 영양을 준 후에 파마롯드를 주섬주섬 챙겨 와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미용실 안에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잠시 후에, 할머니 A가 들어왔다.
"어매, 죽는 줄 알았네."
"왜 그러셔? 엄니."
원장님은 참 진솔하다. 할머니의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듣는다.
"내가 며칠 전에 화장실에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지 뭐야."
"큰일 날 뻔했네요."
"깨어 보니 화장실에 내가 벌러덩 누워있더랑께."
"조심하셔야 해요. 미끄러지셨나요?"
"아니, 급체했던 개비여. 혼났네.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어서 왔어. 그때 넘어진 후로 사방 데가 아파서 침 맞으러 가는 중이여."
"에이, 마치 이뿌신데. 제가 예쁘게 다듬어 드릴게."
원장님은 할머니의 얘기를 자분자분 들으며 할머니의 뒷머리만 간단하게 커트했다.
"계산혀."
"아니요. 살짝 손질만 했어요. 건강 잘 챙기세요."
얼마 후에 할머니 B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나 입원하러 가는 중이여."
"왜요?"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어."
"그런 거 쉽게 생각하고 관두면 안 돼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치료를 잘 받으셔야 해요."
"빠마 좀 해줘."
"에이, 할머니, 웨이브 그대로 있는데? 이럴 때 파마하면 머리카락만 상해요."
원장님은 할머니 B의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손질했다. 방금 파마한 것처럼 웨이브가 탱글탱글했다.
"치료 잘 받으세요."
"마음이 뒤숭숭해서 빠마할라고 했더니만 아직 안 해도 된다고?"
또 이어서 중년 여자분이 들어왔다.
"저의 긴 머리를 어쩌면 좋을까요?"
"이뿌신데?"
"내가 손목이 안 좋아서 샴푸 후에 머리 말리는 일이 고역이네요."
"머리는 항상 잘 말리셔야죠."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어요."
"그러지 말고 샤기커트로 하세요. 그러면 머리가 훨씬 가볍고 손질하기도 좋고..."
"아, 거지커트요?"
"맞아요. 그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좀 해주세요."
"머리를 감은 후에 몇 분 정도 말리시나요?"
"한 15분?"
"에이, 저는 짧은 머리인데도 20분 정도 말린답니다. 머릴 잘 말리는 것이 엄청 중요해요."
파마 롯드를 감고 앉아 있는 동안에 꽤 많은 손님이 왔다. 손님과 원장님의 대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원장님은 모든 손님들에게 신실하게 대했다. 손님들은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듯했다. 그 점에서 나는 원장님을 존경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내내 원장님이 멋지게 느껴졌다. 그런 원장님을 안아주고 싶은 맘이 생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