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Feb 14. 2024

미용실 풍경화

- 별의별 사연이 다 있어요

일 년에 고작 두어 번 미용실에 간다. 나는 주로 세팅파마를 한다. 20년이 넘도록 그렇게 헤어스타일을 관리해오고 있다. 그게 바쁜 내게는 딱이었다. 파마를 한 후에 다시 미용실에 들를 때까지 웨이브가 자연스럽게 살아있다. 그래서 급하게 미용실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좋았다. 나의 헤어스타일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기분에 따라 머리 기장을 정리하러 중간에 미용실에 들를 때가 있긴 하다.




방학 끝무렵에 미용실에 들러 세팅파마를 하는 것이 개학을 준비하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사뭇 달랐다. 미루고 미루었다가 개학 전 날에 미용실에 갔다.


"이번에는 세팅파마 말고 일반 파마로 해주세요."

"아, 그러세요?"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싶어요. 발랄하게."

"변화를 주고 싶으시군요."

"정수리도 풍성하게, 뒤통수도 웨이브가 많게, 기장은 단정하게, 그렇게 좀 해주세요."


단골 미용실이라 평소에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원장님이 알아서 세팅파마를 해 주곤 했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원장님은 휴대폰에서 내가 말한 헤어 스타일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런 스타일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아줌마 파마는 말고요."


아줌마는커녕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아줌마 파마는 하지 말라고 하는 나의 이율배반적 심보가 내심 웃겼다.


"당연하죠, 관리하기 쉽게, 그리고 보브스타일로 강남 사모님처럼 해드릴게요."


역시 단골 미용실 원장님 다운 멘트다.


개학 후 딱  5일만 학생들을 마주하면 끝이었다. 교직생활에 마지막으로 학생들 앞에 서는 유의미한 시간이다. 그래서 색다른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고 싶었다.




원장님은 전과 달리 내 머리 기장을 짧게 커트했다. 머리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어 하는 내 맘을 읽은 듯했다. 원장님이 내 머리에 영양을 준 후에 파마롯드를 주섬주섬 챙겨 와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미용실 안에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잠시 후에, 할머니 A가 들어왔다.


"어매, 죽는 줄 알았네."

"왜 그러셔? 엄니."


원장님은 참 진솔하다. 할머니의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듣는다.


"내가 며칠 전에 화장실에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지 뭐야."

"큰일 날 뻔했네요."

"깨어 보니 화장실에 내가 벌러덩 누워있더랑께."

"조심하셔야 해요. 미끄러지셨나요?"

"아니, 급체했던 개비여. 혼났네.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어서 왔어. 그때 넘어진 후로 사방 데가 아파서 침 맞으러 가는 중이여."

"에이, 마치 이뿌신데. 제가 예쁘게 다듬어 드릴게."


원장님은 할머니의 얘기를 자분자분 들으며 할머니의 뒷머리만 간단하게 커트했다.


"계산혀."

"아니요. 살짝 손질만 했어요. 건강 잘 챙기세요."




얼마 후에 할머니 B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나 입원하러 가는 중이여."

"왜요?"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어."

"그런 거 쉽게 생각하고 관두면  안 돼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치료를 잘 받으셔야 해요."

"빠마 좀 해줘."

"에이, 할머니, 웨이브 그대로 있는데? 이럴 때 파마하면 머리카락만 상해요."


원장님은 할머니 B의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손질했다. 방금 파마한 것처럼 웨이브가 탱글탱글했다.


"치료 잘 받으세요."

"마음이 뒤숭숭해서 빠마할라고 했더니만 아직 안 해도 된다고?"




또 이어서 중년 여자분이 들어왔다.


"저의 긴 머리를 어쩌면 좋을까요?"

"이뿌신데?"

"내가 손목이 안 좋아서 샴푸 후에 머리 말리는 일이 고역이네요."

"머리는 항상 잘 말리셔야죠."

"머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어요."

"그러지 말고 샤기커트로 하세요. 그러면 머리가 훨씬 가볍고 손질하기도 좋고..."

"아, 거지커트요?"

"맞아요. 그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좀 해주세요."

"머리를 감은 후에 몇 분 정도 말리시나요?"

"한 15분?"

"에이, 저는 짧은 머리인데도 20분 정도 말린답니다. 머릴 잘 말리는 것이 엄청 중요해요."




파마 롯드를 감고 앉아 있는 동안에 꽤 많은 손님이 왔다. 손님과 원장님의 대화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원장님은 모든 손님들에게 신실하게 대했다. 손님들은 진심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듯했다. 그 점에서 나는 원장님을 존경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내내 원장님이 멋지게 느껴졌다. 그런 원장님을 안아주고 싶은 맘이 생길 정도였다.


일전에 그 미용실에 대한 글을 브런치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43




마침내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파마 과정이 끝났다.


만족스러웠다.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보니 맘에 들고 예뻤다. 늘 자연스러운 컬이었던 내 헤어스타일에 웨이브가 있으니 똘망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고 입술만 발라도 생기가 있어 보일 것 같았다.


***

긴 겨울 방학을 끝내고 다시 학생들을 만났다.


"선생님 파마 하셨네요."

"예쁘네요."

"샘, 귀여워요, 머리 스타일이 잘 어울리세요."


학생들은 나를 보고 한 마디씩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괜찮았다.


구름다리 앞에서 Kang을 만났다.


"샘, 넘 귀여워요."


Kang 달려와서 안겼다.


"이거 드세요."


롱패딩 호주머니에서 녹아 납작해진 새콤달콤 젤리 사탕 하나를 건넨다.


"어, 이거? 고마워."

'사실 나는 그런 거 안 먹는데.'


Kang은 나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껴두었던 젤리 사탕을 내미는 걸 보니...




"엄마, 머리 파마 하셨네."

"응, 이뿌지? 학생들은 좋아하더라."

"음, 원래 머리가 좋은 데... 나는..."


딸은 나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나 보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네.


내가 좋으면 됐다. 생기 발랄해 보여서 나는 좋다.


[사진:픽사베이]

#미용실  #파마  #헤어스타일  

이전 02화 눈길 닿는 곳마다 애잔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