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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r 22. 2024

'쎈 언니들', 납십니다

- 분수쇼, 레이저쇼 in 그랜드 월드 푸꾸옥

수영장을 다녀왔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점심이 다소 늦은 감도 있었지만 워낙 잘 먹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룸 서비스'로 몇 가지 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라면과 햇반을 곁들여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챙겨 온 볶은 김치와 밑반찬도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런데 햇반은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먹지 못했다. 그냥 싱크대 밑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 저녁 일정의 메모 캡처]

킹콩 마트 옆에서 샀던 망고도 먹었다. 그 망고 맛은 천국에 있다는 열두 과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트리플' 일정표를 보면 첫날의 마지막 스케줄이 하나 더 있었다.


그냥 숙소에서 즐기든지 아니면, 그랜드 월드에서 '강' 보트를 타는 것과 분수쇼 관람이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나니, 사위는 마사지받은 뒷목이 아프네, 사랑니가 나고 있네,라며 컨디션의 난색을 표했다.

남편은 피곤해서 과부하가 걸렸네, 더 이상은 못하겠네, 라며 두 손을 들었다. 

남정네들은 일단 쉬고 싶어 했다.


옵션으로 짜둔 일정이긴 했다. 그렇지만 '베트남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그랜드 월드에 가는 일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여러 군데 다녔지만 아직 유럽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니어처 유럽 같은 그곳을 보고 싶었다. 결국 딸과 이서 가기로 했다. 쎈 언니들이었다. 우리는...



[사진 출처: 트리플 / 베트남의 베니스라고 하는 '그랜드 월드푸꾸옥'에서 강 보트를 타지 못했다. 내내 아쉽다.]

내가 로비에 연락하여 툭툭을 신청했다. 툭툭은 금방 달려왔다. 친절한 툭툭 기사가 숙소의 문을 두드리며 도착을 알렸다.

모녀는 함께 툭툭에 올라탔다. 툭툭을 타고 달리니 야자수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이 상큼했다. 청량한 밤바람에 마음이 설렜다.


로비에서 그랜드 월드까지는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그랜드 월드에서 딸이 우리가 내렸던 버스의 앞쪽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극 'J', 상 모녀다. 그 장소에서, 그 버스를 타야 로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딸은 예습을 철저히 한 것 같았다. 마치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그곳의 모든 것을 알고 었다. 그러니 나는 딸만 의지하고 따라다녔다.


"블로그에서 보니 '커피 하우스'라는 곳에서 분수쇼를 보면 젤 잘 보인다고 했어요."

[셔틀버스]

우리 모녀는 '강 보트' 타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분수쇼를 볼 참이었다.

아뿔싸, 그런데 여행 경비 전대를 맡은 사위가 함께 나오지 않았으니 우리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리고 카드도 남정네들이 지니고 있었다. 우리 모녀는 그냥 알거지였다.


"아, 철판 아이스크림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무일푼인 우리는 그냥 시간에 맞추어 분수쇼, 레이저쇼를 즐겼다. 인근 여러 리조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그 쇼를 보려고 그랜드 월드로 다 나온 듯했다. 쇼는 볼만했다. 장관이었다. 분수가 차오르고 레이저 빛줄기가 밤하늘을 수놓을 때 구경꾼들은 탄성을 질러댔다.


[분수쇼]
[레이저쇼]

쇼 관람이 끝나고 리조트 로비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승강장에 앉아 있었다. 다른 버스는 오고 가는데 우리가 탈 그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러자 사설 툭툭 기사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툭툭을 타고 로비로 가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돈 없는 사람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게 딱 질색인 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스 대열 앞쪽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가 탈 버스가 우리 앞에서 막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버스와 병렬로 서 있었던 것이다. 버스 승강장 쪽에 앉아서는 볼 수 없는 각이었다. 자칫했더라면 우리 모녀는 거기서 오도 가도 못하고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을 뻔했다. 돈도 없고 카드도 없었는데...


"우리, 헛똑똑이네."라고 내가 말했다.

"어, 저도 헛똑똑인데요." 딸이 말했다. 셔틀버스는 만원이었다. 툭툭 기사와 실랑이할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는데 그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몰랐네."

"그럼, 우리 오늘부터 헛똑똑이 협회 결성해요."

"그래라. 니가 그 협회 회장해라. 나는 총무 할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셔틀버스를 타고 로비까지 돌아왔다.

그 시간에 리조트 도어맨이 정신없이 바빴다. 우리가 도어맨에게 숙소 넘버를 말하면 같은 방향끼리 동승시켜 툭툭을 출발시켰다.

교양 없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딸내미가 도어맨이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려 주자고 했다. 때로는 배려가 능사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보다 늦게 로비에 도착한 사람들도 다 각각 자기 숙소로 돌아갔건만 우리 모녀는 그 인파들 중 맨 나중에 툭툭을 탔다.


"우린 헛똑똑이니까 이러고 살아야죠."

"그렇다. 헛똑똑이로 사니 차라리 맘 편하다."


숙소로 돌아와 해프닝을 얘기했더니 남정네들이 자기들도 역시 헛똑똑이라며 우리 협회에 가입 신청을 다. 갑자기 '헛똑똑이' 협회 회원이 4명이나 됐다.


쎈 언니 같지만 저희는 '헛똑똑이'입니다.

#툭툭  #분수쇼  #레이조쇼  #헛똑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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