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해 주세요! 라던 소원
10년 전 그녀는, 지금도 행복할까?
소일거리 중 하나로, [인간극장 레전드]를 정주행하고 있다. 다큐가 주는 풋풋한 감동과 탄탄한 구성에 내레이션을 가미한 편집이 'TV로 읽는 독서'같은 느낌이다. 갈수록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금방 눈에 피곤함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런 애로점의 해소 방편으로 택한 일종의 독서 비법이다. 책 대신에 스크린이나 폰으로 읽는 것이 서서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인간극장 레전드]의 영상들은 대체적으로 10년 이상 된 내용들이다. 레전드라는 말 맞다나 내용들이 범상치 않다. 최근에 한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몇 번이나 삼켰다. 제목은 '한 지붕 세 남편'이었다.
줄거리는, 결혼은 한 사람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명의 남편이 더 생겼다. 남편의 형과 쌍둥이 동생이 한 집에서 함께 산다.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을 거느린 젊은 새댁의 억척 인생 도전기 같은 이야기다. 세미 씨는, 그런 시댁 식구들을 남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빨래를 할 때면 세탁기를 하루에 3번 정도 돌려야 하고(그런 집에는 '건조기'가 필수 일듯) 밥도 매일 해야 한다. 남편과 쌍둥이 시동생은 같은 매장에서 근무하는데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남자 장정 셋의 먹거리를 해대자니 격일로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 온다.
"소처럼 먹는다." 세미 씨는 그 형제들의 먹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방송에서 돋보이는 것은, 당연히 세미 씨의 넓은 아량과 희생이지만 그녀 남편의 인성이다. 이런 상황이면, '싫다.'라며 형과 동생을 내보낼 수 도 있겠으나 묵묵히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의 동거를 용납한다. 그 부부는 그때까지 서로 투덜거리며 다툰 적이 없다고 했다. 세미 씨는 아기를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보험설계사 일도 하고 틈틈이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시아버지를 챙겨보기도 한다. 그 영상은 10년 전에 방영된 것이어서 최근 근황이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그녀는 방송 당시에 오픈했던 분식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 않는 듯했다. 지금은 부동산 중개인이 된 모양이다. 부동산 이름의 채널로 개인 브이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영 당시 6개월이던 딸내미 아래로 아들도 하나 더 낳았고 그 애들이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하나도 키우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을 방송에서 봤는데 둘째까지 어떻게 길렀는지 궁금하다. 보나 마나 아이의 큰 아빠와 삼촌이 친 자식처럼 애들의 육아를 분담했을 것 같다. 대단한 가족이다.
[인간극장 레전드 #110-1] 우리 집엔 남편이 하나도 둘도 아닌 셋!�♀️ | 한 지붕 세 남편 (1/5) [KBS 20130121 방송] - YouTube <인간극장 레전드 링크>
지금이 제일 예쁘고, 제일 행복하다.
언젠가 함께 연수를 받던 동료가, "어릴 때 참 귀엽고 예뻤겠어요. 언제 제일 예뻤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지금이요, 전 지금이 제일 예뻐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동료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빈 말이 아니었다. 서정주의 유명한 시,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가 있다. 거울을 봐도 지금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온 내가 참 이쁘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눌 때이다. 아들은 대학 3학년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10년이 넘도록 의식이 없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들의 눈동자에 무엇이 비치는지? 귀에는 어떤 내용이 들리는지? 알 수 없지만 모자간에 끈끈하게 흐르는 정 때문에 우린 행복하다. 그렇게 아들과 단 둘이 있을 때 참 좋다. 인생 여정 중에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아들이 우리 곁에 있어서 좋다. 아들의 따스한 손을 잡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다
어제, 요양병원의 한 병실에서 지냈던 지인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남편을 간병했었다. 그분의 남편은, 갑자기 쓰러진 후에 20년간 의식 없이 누워서 투병했었다. 아들이 자택에서 재활을 하게 되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고 몇 년을 보냈다. 그동안에 간간이 안부가 궁금했으나 문안을 하기가 뭣해서 묵묵히 지내오고 있던 터였다. 지난해 연말에 그분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분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광야 같은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평안하지요, 함께 지내는 동안에 행복했어요." 그분은 20년의 투병과 간병 생활을 단 한 문장으로 수습했다. 그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다.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분은 진실로 행복했을 것이다. 환경은 남보기에 남루하고 힘들어 보였을지 몰라도 그분은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을 것이다.
지금 행복한 사람들
- 인간극장 레전드에 출연한 그 세미 씨
- 아들을 10년간 병상에 눕혀놓고 있는 에미
- 남편을 20년간 간병하다가 먼저 보낸 그분
지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10년 전에,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그녀, 세미 씨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환경을 초월하여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