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다. "늙어갈수록 감성이 사그라드니 드라마를 봐야 한다"라고 지인이 말했다. 달달한 OST에 먼저 이끌리어, <신사와 아가씨>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라는 게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보게 되면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를 챙겨서 본방 사수를 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랑이라는 연결 끈이 잔가지처럼 많이 뻗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대한 정의도 제 각각이었다. 아이를 셋 가진 중년 남자 영국과 파릇한 20대 단단이와의 사랑이 원가지인 셈이다. 그 주변으로, 의대생과 고아 아가씨와의 사랑, 영국에게 빌붙어서 살아보겠다고 갖은 수단을 다 부리는 조사라, 박단단 아버지 박수철, 그리고 고아 아가씨의 외할머니 등등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사랑도 많다.
<신사와 아가씨>
영국: 형편과 나이 등이 비슷해야 한다.
단단: 사랑이 최우선이다. 다른 조건은 중요하지 않 다. 그냥 내 사랑을 믿는다.
의대생: 좋아하면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사라: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
박수철: 딸의 행복을 위해서는, 지금 살고 있는 아내 에게, "그 여자 옆에 있는 거 허락해줘."라고 말할 수 있다.
할머니: 그 누가 뭐라 해도 손주는 나한테 너무 귀중한 존재다.
조만간 그 드라마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면 드라마를 보던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자못 걱정도 된다. 내가 이러지는 않았는데.
6년간 아들의 병원생활에서 남들이 다 보고 있는 드라마를 나는 보지 않았다. 드라마의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거니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 감성이 꽝이었던 것이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면 병실마다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송되는 시간이면 욕실에는 사람도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함께 훌쩍이기도 하고 손뼉 치고 웃기도 한다. 흠씬 욕을 퍼붓기도 한다. 드라마는 세상에 있음 직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넋을 놓고 보는 것 같다.
내가 봤던 드라마
<옥이 이모>
내가 봤던 드라마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옥이 이모', '용의 눈물', '토지', '응답하라' 시리즈,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 '동백꽃 필 무렵' 그 정도다. 이 드라마들 중에서 '옥이 이모'를 가장 재미있게 봤었다.
1995년 SBS에서 69부작으로 방영한 가족 성장드라마였다. 20년 정도 지난 후에 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적이 있었다. 다시 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던 것 같다. 김운경 작가의 팬카페에 가입도 해봤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거기에 가입한 회원의 말에 의하면, 부모님이 '옥이 이모'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게 소원이라 알아봤더니 비디오를 구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전 편을 다 구입하려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요즘 같이 정보 검색으로 못할 것이 없는 시대에 그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 드라마를 꼭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 드라마가 실제 다큐 같은 현실감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 같았던 그 집
그런데 현실이 마치 드라마 같을 때가 있다. 대학에 다닐 때 자취를 했던 그 집은 여러 가구가 살았다. 도로변에 마트가 딸린 집인데 그 뒤편에는 본 채가 있었다. 본 채 앞에는 서너 개의 방이 있었다. 마트 위층에는 단칸방으로 된 살림집이 4개 더 있었다. 터울이 쏘물던 우리 남매들은 서너 명이 동시에 학생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집에다 방을 두 개나 얻어서 자취생활을 했다.
본채 앞에 딸려 있던 방에는 우리를 비롯하여 몇 가구가 살았다. 우리 옆방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았다. 항상 축 늘어져 보였다. 손은 하얗고 얼굴은 노랬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몹시 바빠지곤 했다. 그녀는 우물에 나와서 물오징어를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서 씻느라 분주했다. 하얀 손은 금방 화색이 돌아서 볼그족족해졌다.
"숙이 아버지가 물오징어를 좋아해서"
그녀는 오직 숙이 아버지만을 기다리며 사는 망부석 같은 여자였다.
"숙이가 누구예요?"
"숙이는 내 친구여."
"근데 왜?"
"숙이 집에 놀러 갔다가 밤에 그 집에서 잤는데 숙이 아버지가 나를 건드려서 이렇게 살고 있어."
2층에 있던 또 다른 우리 방(오빠가 지냄) 바로 옆에는 정이 엄마가 살았다. 늘 연탄아궁이에서 불집게로 연탄재를 들어내곤 했다. 최후까지 잘 태우고 버릴 정도로 돈을 아끼며 살았다.
"정아~"
"오셨습니까~"
중년의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정이 엄마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연탄 불 가는 것을 깜빡하여 아예 꺼트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저씨는 버스 기사였고 나는 안내양이었어."
묻지도 않았는데 정이 엄마가 설명했었다. 앞니가 두 개 나고 머리는 하늘 향해 솟은 풀포기처럼 묶은 정이는 옹알이를 하며 방글거렸다.
그 옆 방에는 남해가 고향이라던 김양이 살았다. 김양은 연탄아궁이 옆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살았다. 어쩌다 열리는 미닫이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방은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매일 오후가 되면, 김양은 긴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한 후에 향수를 온몸에 뿌렸다. 검정 투피스와 구두를 신고 어디론가 나가곤 했었다.
맨 끄트머리 방에는 큰 안경을 쓴 노처녀가 살고 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문에 피신하여 왔다고 단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집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어도 될 판이다. 드라마 속 같은 세상이었다. 주인 노파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아가든지 상관하지 않고 제 때 월세나 잘 내면 그만이라는 심보였다.
삶은 드라마 같고 드라마는 삶과 같다
근년에는 드라마 전문 TV에서 간간이 '옥이 이모'를 방영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이제 '옥이 이모'라는 드라마도 앱을 통하여 정주행 할 수 있다고 한다. 날을 잡아서 다시 그 드라마를 보며 감성에 젖어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 맘이 꽂힐 수 있는 드라마가 방영된다면 본방 사수할 테다. 왜냐하면 삶은 드라마 같고 드라마는 삶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를 통하여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 감성이 촉촉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