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매월 마지막 화요일 오후에는 인천대공원에서 지인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로 약속했다. 그 모임은 12년 전에 내 아들이 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속절없이 중단되었다. 나의 퇴임에 맞추어 다시 평일 오후에 시간을 내어 나눔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 모임은 그렇다 치고, 우리 부부는 틈나는 대로 간단한 나들이를 하고 있다. 운동 삼아, 힐링 삼아, 일상을 떠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 구글 피드에 '서울식물원'에 대한 기사가 떴다. 서울식물원은 마곡나루역과 연계되어 있다. 그곳은 내가 사는 데서 그리 멀지 않다. 내가 사는 곳은 바로, 이번 총선 때 명룡대전으로핫했던 인천 계양구(을)다.
"우리 여기 한 번 가봐요. 집에서 20~30분이면 갈 수 있겠어요."
"그러지 뭐, 그게 가까운 곳에 있었네."
남편은 서울식물원 홈피를 한 번 둘러보더니 흔쾌히 가자고 동의했다.
계양은 교통의 요충지다. 국제공항, 김포공항, 서울역, 강남 등으로 가기에 매우 편리한 곳이다. 게다가 3기 신도시 개발의 첫 삽을 뜨기까지 하여 교통이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서울시 계양구'라고 말하기도 한다.인천대공원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수월하게 서울식물원에 갈 수 있다. 그걸 여태껏 몰랐다.
서울식물원은 입장료가 있다. 그리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도 홈피를 보고 미리 확인했다. 오전에 아들 간병을 도운 후에 점심을 먹고 출발해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듯했다.
한낱 식물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람이나 쐴 작정이었다. 계양역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하니 두 정거장 만에 마곡나루역에 도착했다.
집에서 서울식물원까지는 '도어 투 도어',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식물원에서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튤립이었다. 떠들썩하게 피었던 벚꽃이 질 무렵에 그 서운함을 달래 주려는 듯 활짝 핀 튤립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각양각색으로 피어 있는 튤립을 보니 두어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먼저는, 중증환자로 투병 중인 아들에 대한 기억이다.
아들은 남달리 TULIP(튤립)*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지녔었다. 아들은 칼빈의 5대 교리를 유독 좋아했다. 칼빈의 개혁주의 원리를 이니셜만 따면 TULIP(튤립)이 된단다. 그래서 아들은 결혼하여 딸을 낳으면 이름을 튤립이라 짓겠다고 했었다. 12년째, 인지 없이, 전신 마비상태로 누워있는 아들이 어느 세월에 일어나 결혼하고, 딸을 낳아 그 이름을 '튤립'이라 지을는지...
아련하게 예쁜 튤립을 보니 활보샘에게 맡겨두고 온 아들 생각이 울컥 솟았다. 아들은 몸져누워 있는데 우리만 나들이를 나온 것 같아 맘이 아렸다.
두 번째로는, 2017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즐겼던 튤립 축제가 생각났다. 그 튤립 축제는 튤립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튤립 반, 사람 반이었다.
오타와 튤립 축제에 참가하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서울식물원도 때가 되면 그런 튤립 축제를 개최하면 좋겠다.
서울식물원에 잘 가꿔놓은 수많은 튤립을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타와에서 보았던 튤립보다 종류가 더 많아 보였다. 어느 날 서울식물원에서 튤립축제가 열릴 것 같다. 내 촉이 맞겠지? 그러면 얼른 한 걸음에 달려가봐야지... 서울식물원이 지척에 있으니 말이다.
그날은 다행히 평일이어서 한산했다. 서울 근교에 사는 분들은, 벚꽃이 쉬이 져서 아쉬웠다면 서울식물원에 가면 될 것 같다. 상상 외로 튤립이 많았다. 잔뜩 찍었던 사진 몇 편을 모아보았다.
[서울식물원에 만발한 튤립]
서울식물원에 튤립이 지고 없을 때 방문하더라도 다른 즐길 거리가 있었다.
보타닉 가든인 온실도 볼만했고 호수도 꽤 컸다. 온실을 둘러보고 호수 주위를 걷기만 해도 나들이로 손색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하철 역과 연계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짱이었다.
[호수에서 봤던 물고기 / 호수를 한 바퀴만 돌아도 걷기 운동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호수는 깊지 않았다. 수초도 많고 물고기도 많았다. 자맥질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는 청둥오리도 있었다.
[온실의 크기와 수준이 대단했다. 한 번쯤 볼 만한 곳이었다. 열대 식물, 지중해 식물 등이 가득했다.]
요즘은 지자체별로 다양한 수목원이나 식물원 같은 것을 잘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추세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 나절에 다녀올 만한 곳이 꽤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어딜 갈까요?"
"찬찬히 한 번 찾아봐요."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다음 나들이 장소를 물색했다. 아마도 다음에는 '원적산 공원'에 갈 듯하다. 거긴 경치도 좋지만 맛집이 많다. 맛집 탐방, 먹방 투어도 나들이의 묘미라면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