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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l 25. 2024

과연 경주에 갈 수 있으려나?

- R로 시작하는 Reunion (리유니온: 해후)

여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40년여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친구들을 생각만 해도 설렜다. 그야말로 '해후'다. 해후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나다’라는 말이란다.

우리는 각자 사느라 바빠서 서로 연락하지 못한 채 살았다. 아니, 돌아보니 어느덧 40년이 지난 후였다. 친구 H가 뜻밖에 단톡방을 만들었다. 몇 명은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겨우 찾았다.

단톡방은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해졌다. 오랜만에 소통된 김에 일단 얼굴을 보자며 J가 일사천리로 일을 추진했다.


그 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는 아홉 명이었다.

<9 공주>라나?

그러나 우선, 시간이 가능한 다섯 명만 일단 만나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다.


어쩌다가 만남의 장소는 경주로 정해졌다. J가 호수 뷰가 멋진 리조트를 예약했다. 나는 서둘러 KTX 열차 승차권을 예매했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 모임 5일 전, 일요일 저녁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남편은 20년이 넘도록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최근 달포 가량 혈압약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고혈압으로 뇌졸중 증세가 온 듯하여 걱정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진정하자. 맘을 차분히 가지자.'


손이 부르르 떨렸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속옷과 세면도구 등을 챙겼다. 그런 후에 119에 연락했다. 119라는 번호를 눌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구급차는 드라마에서처럼 총알같이 달려오지는 않았다. 남편의 얼굴은 새하얘지고 있었다. 남편은 소파에 머리를 박고 꼼짝 못 했다. 이윽고 구급대원이 우리 거실까지 들어와 남편을 이동식 침대에 앉혀 병원으로 이송했다.


구급대원은 앰뷸런스 안에서 계속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정신을 놓을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남편이 그동안 복용했던 혈압약을 끊은 데는 이유가 있다.

5개월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남편에게 이명 증상이 왔다. 이비인후과에 갔지만 담당 의사는 문제 될 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귀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다만 뇌 자체가 이명을 느끼는 것이라 본인 스스로 견디고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한 방으로 이명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한약을 먹으며 침 치료를 받기로 했다. 한방 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이 생겨 이명 증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생처음으로 한방 병원을 노크했다. 진맥, 진단을 정밀하게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의 혈압 수치가 정상으로 됐다. 그런 상태에서 혈압약을 먹으니 남편은 목이 뻐근하다고 했다. 그래서 혈압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혈압약은 먹지 않았던 것이다.


큰 파도가 훅~ 쓸려 나가매 (남편과 내가 이명과 이석증을 앓게 된 사연)

 



앰뷸런스 안에서 남편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보는데 마음 한 구석에 걱정이 일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금요일에 경주에 가야 하는데? 이걸 캔슬내면 말이 안 되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혈압 강하제가 링거로 투여됐다. 그제사 남편이 눈을 떴다. 혈액 검사, 심전도 검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2시간 후에 나온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그냥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입원 오더가 떨어지지 않았고 훈방 조치받듯이 허망하게 귀가했다. 챙겨갔던 짐은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다.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었다. 남편이 몸져눕는다면 그건 큰 일이다. 그야말로 집안이 쑤시범벅이 되고 말 것이다.


아들이 12년째 세미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남편마저 정신을 잃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생지옥일 것이다. 여느 집과 달리, 주부인 나는 집안 살림 돌아가는 형편을 잘 모른다. 남편이 집안의 재정을 다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통장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통장 비번도 모른다. 스스로 은행 일을 처리해 본 적이 없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일지라도 남편을 따라가서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그래서 남편이 정신이 온전할 때, 통장 개수와 보관 장소, 그리고 비번 등을 알려 달라고 했다. 만약 어느 순간에 남편이 정신을 잃게 된다면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돌아와 그 밤을 무사히 잘 보냈다. 이튿날 아침에 남편은 여느 날의 루틴처럼 아들이 있는 본가로 출근? 했다. 매일 아침, 남편은 아들에게로 간다. 거기서 활보샘과 함께 아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전동 자전거를 한 시간씩 태운다. 그렇게 하면 장기 와상 환자인 아들의 근육 손실을 줄일 뿐만 아니라 아들이 잠시 침상을 벗어날 수 있다. 그 시간에 침대 커버도 교체하고 침상도 정돈한다.  


오전 10시경이었다. 본가에서 아들을 돌보던 활보샘에게서 전화가 왔다.


"OO이 아버님이 이상해요. 얼굴이 노랗고 견디기 힘들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제가 대신 전화드려요."

"아, 그래요? 얼른 짐을 챙겨서 그곳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랴부랴 가방에다 병원에 가져갈 짐을 챙겨 본가로 갔다.

119에 전화하여 '어제저녁에 응급실 갈 때 구급차를 이용했던 사람이다'라고 하면, '장난하시나?'라고 화를 낼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전날은 세컨 하우스에서, 그날은 본가에서 긴급 전화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병원 검사 상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경주는 갈 수 있으려나?'


본가에 도착하니 남편은 정신이 말짱했다. 다만 한 순간 어지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혈압도 거의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안색도 볼 만했다. 119에 연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또 한 번 혼비백산이 되었지만 해프닝으로 끝났다. 남편의 컨디션이 쾌활하지는 않았으나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세컨 하우스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다. 그 후에 차분히 남편의 증상을 검색해 보니 '메니에르 병'과 흡사했다. 전날 밤에 병원 진료 결과도 괜찮았으니 앞으로는 어지러움증이 와도 뇌졸중일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하지 않기로 했다. 뇌졸중 증상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남편은 스스로 놀라 혈압이 치솟았던 것 같았다.


혈압의 문제가 아닌 것이 확실해졌으니 본격적으로 귀 진료 및 이명치료 전문 병원을 알아봤다. 지인을 통하여 이명 치료를 잘한다는 병원 한 곳을 추천받았다. 그런데 그곳보다 괜찮은 병원을 찾았다. 31명의 이비인후과 담당의가 있고 귀 관련 전문 기계가 10대나 있다는 병원이 있었다. 50년 이상 이명 치료를 했다는 명의가 있는 병원이었다. 예약은 이미 몇 개월 치가 다 꽉 차 있었다. 그러나 당일 접수는 가능하다고 홈피에 나와 있었다.




화요일 아침, 남편은 곧바로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남편은 귀 전문 센터에서 여러 가지 기계로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통한 결과지를 보며 남편은 전문의와 진료상담을 했다. 남편의 이명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미한 수치였고 예상치 않았던 '이석증'을 진단받았다. 남편이 어지러웠던 것은 급성 이석증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 병원에서 이석증 치료를 받고 향후 진료 과정까지 잘 안내받고 돌아왔다.


"당신, 경주 갈 수 있겠네."


남편도, 내가 40년 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는 일정이 취소될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안전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엥? 열차가 제대로 운행될까?'

'나, 경주에 무사히 갈 수 있으려나?'


그날부터 하루에 몇 번씩 비 예보 관련된 안전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인천시, 행안부, 서구, 계양구. 경찰청. 산림청 등에서 무려 24통의 안전 안내 문자가 왔다.



TV에서는 물난리에 대한 속보가 뜨고 전철이 중단됐다는 뉴스도 있었다.

'나, 경주에 갈 수 있을까?'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할 수 없어서 우회하여 김포공항에 착륙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어린 왕자>에, "네가 4시에 만난다면 3시부터 설렌다."라는 명대사가 있다.

나는 옛 친구들을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설렜다. 그런데 남편의 급성 어지러움증 때문에 사나흘을 불안에 떨었다.


D-day! 날이 밝았다.

여고 친구들 단톡방이 슬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설렌다고 했다. 나는, Bing AI에게 부탁하여 만든 이미지를 단톡방에 올리며 그리움과 설렘을 달랬다. 이미 경주에 입고 갈 옷도 다 코디해 두고 부푼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다. 핑크 빛 인견 블라우스와 하얀  바지...


여름에는 흰 바지를 입으면 시원스러워 보여 그저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주에 입고 가려고 'O. L.'  브랜드 제품인 흰색 바지도 하나 장만해 두었다. 그런데 웃비가 줄줄 내리면 그 패션은 안 된다. 비 오는 날 흰 바지를 입으면 빗물이 틔어 꼴불견이다. 4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우중의 여인처럼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채로 만나기는 정말 싫었다.


다행히 장마 전선은 당일에 전남 쪽으로 내려갔고 오랜만에 웃비가 그쳤다.


나는 과연 경주에 무사히 갈 수 있으려나?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일이
왜 이리 아득한지...




* 쑤시범벅 - '지저분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커버: Bing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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