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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l 18. 2024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길'이 있나요?

- M으로 시작하는 Mountain(산)

요즘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두서너 번씩 계양산에 간다. 그곳에 가면, 숲 속에 포근히 안기는 기분이 든다. 산새가 짹짹거리며 노래하고 여러 가지 식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그곳에서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데 아들에 대한 생각은 더 또렷해지곤 했다.




아들은 달리기도 빨랐고 축구도 잘했다. 물론 등산도 잘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5~6학년 쯤, 함께 등산을 할 때면, 산을 빠르게 오르는 아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아들을 '계양산 날다람쥐'라고 불렀다. 우리는 아들의 뒤를 따르며 우리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 정상에 오르곤 했다. 우리의 발치에 청설모가 몇 번 나타났다. 정상에 오르려면 한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들은 15분 만에 거뜬히 올랐다.

아들과 함께 오르곤 했던 계양산은 우리의 지난 일상을 너끈히 다 알고 있으리라.


우리가 계양산 자락에 산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계양산 꼭대기에는 높은 첨탑이 있다. 어딘가로 출타했다가 돌아올 때면 그 첨탑은 변함없이 우리를 반겼다. 그 첨탑은 멀리서도 보였다. 첨탑이 눈앞에 들어오는 순간, '아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구나'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 첨탑을 볼 때마다 영국의 시인 존던( John Donne)이 떠올랐다. 그의 '고별사'라는 시에서 언급한 '컴퍼스'라는 어휘 때문이다.

"우리 영혼이 둘이라면, 우리 영혼은
견고한 한 쌍의 컴퍼스의 다리가 둘인 것처럼 둘이다.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이며
한쪽이 움직이면 다른 쪽도 움직인다."

If they be two, they are two so
As stiff twin compasses are two;
Thy soul, the fixed foot, makes no show
To move, but doth, if th' other do.


마치 계양산은 고정된 다리이며 우리는 컴퍼스의 다른 쪽 다리 같았다. 계양산과 우리는 컴퍼스의 다리와 같은 관계였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다른 곳을 빙빙 돌아다니다가도 그 첨탑이 있는 생활 근거지로 돌아오곤 했다. 그 산은 우리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다.




아들이 12년 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부터 우리는 계양산에 가지 못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릎 관절이 염려되어 산에 오르는 것을 꺼리게 됐다. 그 대신에 둘레길이나 바닷가 등을 찾아다녔다.


몇 해 전에 동료에게 이끌려 함께 계양산에 가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때 '무장애 데크길'이 조성된 것을 보고 무척 좋아했었다.

가파른 산길을 완만하게 코너링하여 데크길로 정비해 둔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날 남편에게 데크길 사진을 찍어 보내며 기뻐했었다. 틈나면 자주 오르자고 남편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5~6년을 그 산에 가질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고 이리저리 다른 곳으로 다니느라 계양산 무장애길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무장애 데크길]


올해, 퇴임한 이후부터 시간이 많이 자유로워졌다. 틈만 나면 힐링을 목적으로 당일치기, 반일치기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계양산 '무장애 데크길'이 생각났다. 등하불명이었다. 가까운 곳에 그 좋은 산책로가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살았다. 어리석게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다른 곳만 찾아다녔다.


지척에 그런 산책길이 있다는 것은 삶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짙은 숲길이라 여름 산책로로 제격이다. 간단한 운동 코스로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이거, 로또네. 사계절 모두 절경이겠고..."

"그렇네요. 건강 로또네."

"그렇지. 이렇게 지척에 백만 불짜리 산책길을 두고 우리가 먼 곳으로만 돌아다녔네."

"그래요. 틈만 나면 오기로 해요."


우리는 그 길을 걸을 때마다 행복에 겨웠다.

한 번은 서로 의견 차이로 속이 상한 채 그 데크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아량이 넓어지고 남편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던 우김질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평안해졌다. 숲이 주는 풍성함이 나의 맘을 부드럽게 해 준 덕분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맘이 차분해졌다. 울창한 숲과 잘 정돈된 데크길도 좋았지만 조금만 올라가도 도심이 다 내려다 보였다. 속이 후련한 도심뷰가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 날, 그 데크길을 걷다가 남편이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여차하면 OO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데리고 와도 되겠다."


맞다.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 보고 싶어졌다.


[신비와 걷고 싶은 길]

아들은 이제 더 이상 계양산의 날다람쥐가 아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그 길을 오르는 날이 온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데크길 주변 곳곳에 앙증맞은 조형물이 꽤 있다. 그중에, "신비와 걷고 싶은 길"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우리는 그 글귀를 "아들과 걷고 싶은 길"이라고 고쳐 읽었다.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우리 부부가 계양산 무장애 데크길에 오르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꿈은, '신비와 걷고 싶은 길'에 아들을 휠체어에 싣고 걷는 것이다.


아들은 거의 모든 일이 불가능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숨 쉬고 잠을 자거나 대소변을 보는 일 정도뿐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0.01% 정도로 그를 향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아들이 살아 있으니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다.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축복이다.


[커버사진:  Bing의 AI 이미지]

#계양산   #무장애길   #데크길   #날다람쥐 # 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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