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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ug 01. 2024

외나무다리에서 제자를 만나면

- C로 시작하는 Car(자동차)

자동차를 없애기로 했다.

정들었던 자동차였지만 그 차를 처분하고 다시 구입하기로 했다.


만 5년 동안, 우리 차의 리모컨키는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럴 만한 정이 있었다.  


일단 자동차를 없앴습니다

(줄거리: 아들의 사고 때문에 트라우마를 몇 가지 겪었다.

그중의 하나가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매일 남편이 출근시켜 주거나 택시를 이용했었다.

그런데 아들을 케어해 주는 활보샘 K가 나를 출퇴근 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됐다.

5년 간 K샘과 서로 윈윈의 관계로 차를 공유했다.


우리는 출퇴근하는 일 외에는 거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렌트를 하거나 택시를 이용했다.


K샘 부부가 지난 2월에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래서 자동차키를 건네받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 차에 정이 가지 않았다.

그 차는 우리보다 오히려 K샘과 인연이었던 것 같았다.)




남편이 몇 군데의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차를 내놨다.

중고차는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가령, 천만 원 정도 주고 사야 할 중고차 일지라도 팔려고 할 때는 절반 가격인 500만 원도 받기 힘들다.  


여러 명의 중고차 딜러가 DM으로 우리 차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한 군데서 전화로 연락이 왔다.


"제가 그 차를 'O백만 원'으로 쳐 드릴게요.

그 차를 사겠다는 다른 딜러들은 다 거짓말쟁이들이에요.

막상 거래에 들어가면 차를 흠잡으면서 가격을 마구 깎아내릴 거예요.

선생님이 내놓으신 가격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니 아예 저랑 거래하세요."


남편은 그 딜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중고차 거래하다가 무서운 일을 당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적당한 가격이면 그냥 팔아  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약 전 날, 그 딜러가 다짜고짜 계약금을 먼저 입금하겠다며 계좌를 알려 달라고 했다.


"아직 계약금 받지 말아요. 뭔가 찜찜해요."라고 내가 말렸다.


그런데  후다닥 계약금이 남편의 계좌로 입금되어 버렸다.

덜렁 계약이 이루어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중고차 사기에 관한 여러 가지 사례를 검색하여 살펴봤다.

불안했다.

별의별 사례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남편에게 공유했다.


"아무래도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아요.

그 사례 한 번 읽어 보세요.

그리고 내가 내일 거래 현장에 당신과 함께 갈게요."


"아니, 이 사람아, 그 사례는 계약금만 주고 차를 바로 가져가 버리는 경우잖아.

우린 그런 케이스와는 다르지."


남편은 큰 소리를 쳤다.




우리는 차를 대체적으로 본가에 주차해 두기 때문에 거기서 딜러와 만나기로 했다.

내가 동행하겠다고 하니 남편이 마다했다.


"괜찮아, 당신은 바쁜데, 뭘..."


'남편이 저렇게 일처리를 잘했던 사람이었던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은 촉이 발동됐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날 보다 약간 일찍 본가 갔다.

아파트 옆문으로 들어니 남편과 딜러가 막 일을 처리하고 서로 헤어지는 중이었다.


"이제 막 끝났어."


남편의 얼굴이 죽상이었다.


그런데 나를 본 딜러가 아는 체를 했다.

딜러의 표정은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어? 많이 봤던 분인데?"

"그래요?"

"혹시 OO중학교?"

"그랬죠? 거기서 근무한 지 벌써 10년도 더 지났네요."

"그러면, 지훈이 아세요?"

"알죠."

"민석이는요?"

"잘 알죠. 그런데?"

"저 민석이 친구 대한이에요."


딜러가 민석이를 들먹이는 순간, 민석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그래? 생각난다. 주번일 때 빨리 등교하여 복도 청소 엄청 잘했던 대한이~"


다시 보니 딜러의 얼굴에 중학교 1학년 때 대한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대한이는 말이 없었다.

항상 민석이와 함께 다녔고 주번이 되면 복도를 밀대 걸레로 잘 닦았다.

우리 반 복도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 복도까지 훤하게 닦아 놓던 학생이었다.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용의 단정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애들이랑 요즘도 만나니?"

"아뇨, 다들 바빠서요. 못 만나요. 안녕히 계세요."


딜러가 황급히 차 시동을 걸었다.

그는 우리 차를 끌고 아파트 정문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 차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미끈해 보였다.

남편이 차를 팔겠다고 광이 나도록 차를 잘 닦았던 모양이다.

차의 뒤꽁무니가 뭔가 나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정들었던 우리의 패밀리카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서운했다. 정이란 게 뭔지...


그때, 남편이 말했다.


"말도 마."

"왜요?"

"저 사람이 당신을 보는 순간 딴 사람이 되네? 당신 제자야?"

"네에, 그래요."

"정말 눈 뻔히 뜨고 당했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러면 신고해야죠."


"할 수 없어. 빼도 박도 못하게 걸려들었어.

뭐라 뭐라 하면서 계약서에 사인하라 하더라.

한국말 아닌 것처럼, 알아듣지도 못하게 말했어."


"그래서요?"


"터무니없는 가격을 말하더라.

겨우 O백만 원 받았어.

내가 그럴 거면 계약 취소한다 했더니 이미 다 녹음되어 어쩔 수 없대.

법대로 해도 증거가 있으니 안 된대."


"그럴 것 같아서 제가 따라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 정도로 끝난 것도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근데 진짜 당신 제자야?"

"죄송합니다. 제가 제자의 인성 교육을 잘못 시켜서..."


폐차값도 안 되는 액수 차를 판 것에 대해 남편은 며칠간 끙끙거렸다.

남편은 돈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대낮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 속이 몹시 상한 듯했다.


"잊어버려요,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람을 누가 당하겠어요.

멋진 차가 주인을 잘못 만나 우리 곁을 떠났네요.

그게 맘 아프네요."


오죽하면,

사기를 당하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이 있겠는가?



* 글에 언급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커버: Bing 이미지]

#제자  #중고차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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