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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May 26. 2022

24시간 활동 보호 대상자에 선정되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일이, 하루아침에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 인생의 깃발처럼 여겼던 아들이 사고를 '만났다.' 마치 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남편은 그 충격으로 세 차례나 정신을 잃었다. 집안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해졌다.

   가족 중 한 명이 입원해 있다는 것은 가정의 리듬이 다 깨지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오가다 보면 또 다른 날이 되어 있곤 했었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하려고 급한 맘에 택시를 타고 다녔더니 한 달 택시비가 60만 원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마음을 동여매고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간병 케어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원비나 간병비는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희망이었던 것은, <본인 부담금 환급금 제도>였다. 연간 일정액의 병원비보다 초과되면 더 이상은 병원비 청구가 되지 않거나 과도하게 납부했던 병원비는 환급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6년 간의 병원 생활 후에 우리 앞에 닥친 또 하나의 문제는, 재활 운동 치료(전동 자전거 타기, 경사 침대, 연하 치료, 도수 치료 등등)가 비급여로 해결해야 하는 의료보험 법이었다. 환자를 침대에만 눕혀두고 병원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에, <활동 보조 지원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제도의 조건은, 환자가 일단 재택인 상황일 때만 지원되는 것이었다. 인공 호흡기만 끼지 않았을 뿐이지 그 외의 모든 것은 간병을 해야 하는 상태의 환자였지만 그 길 밖에 길이 없어서 일단 병원을 떠났다.


  아파트가 병원으로 변했다. 온 집안은 의료 도구로 꽉 찼다. 휠체어, 의료용 침대, 경사 침대, 전동 자전거, 리프터 등등... 간병에 필요한 물건은 다 셀 수도 없었다. 어느 날, 그 용품들을 일일이 적어 본 적이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품목이 많았다.


  처음 보름간은, 공단 심사 중이라 아무런 활동 보조 지원을 받지 못했다. 남편 혼자서 리프터를 이용하여 아들을 휠체어에 실어서 전동 자전거를 태우고 경사 침대에 세팅하는 일을 했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절대 못할 일이었다.  보름간 남편이 야간 간병 담당도 했다. 주, 야간으로 간병에 매달리다 보니, 남편은 졸음이 쏟아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환자를 아침에 보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6개월 간,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침상 목욕을 혼자서 해놓고 출근을 하곤 했다. 이 일 또한 다시 하라고 한다면 뒤로 나자빠질 것 같다.


  보름 후에 하루에 8시간 정도의 활동 보조 지원이 되어서 우리는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2년 동안 그렇게 지냈고, 3년째 되던 해에, 마침내 아들은 <24시간 활동 보조 지원 대상자>가 되었다. 희망의 빛이라고는 없었던 터널 속 같았던 우리에게, 이 혜택은 후원 그 이상이었다.


 지금은 다섯 명의 활동 보조사들이 아들을 잘 돌보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해내며 간병을 겸하고 있다. 대한 민국이 이 정도로 복지 국가인 줄 미처 몰랐다. 정치나 사상 같은 것은 제쳐두고, 우리 가정은 국가에 무척 감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후원 없다고 본다. 어떤 형태로라도 국가를 위하여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나라가 더욱 잘 살게 되고 소외된 자들을 잘 돌아보는 복지 선진국이 될 줄 믿게 되었다.


 대한민국 만세~



# 후원 비하인드 11개의 에피소드마무리하는 날이다.


[일부 사진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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