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임찬양이 이 로고송을 참 좋아했었다. 가족끼리 차로 이동할 때면 여지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 마치 시동을 걸면 들리는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 같았다.
오후 5시가 되면 아들의 병상에는 정해진 일상이 있다. 유일한 간식, 구운 계란 노른자 한 개를 으깨어 주사기를 통하여 위루줄로 넣어 주는 일이다. 누워서 지내는 환자에게 다이어트는 매우 힘든 일이다. 허기를 느끼겠지만 기준대로 식사를 공급하면 살이 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곧장 성인병이 오기 때문에 최소한의 식사량만 공급한다.
옛말에,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논에 물들어 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라고 했다. 그런데 자식 입에 물 한 모금 넣어주지 못하며 지내는 부모의 나날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그 아픈 마음을 달래는 것이 구운 계란 노른자 한 개다. 이제는 오후 5시쯤이 되면 아들은 벌써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문쪽으로 돌려보곤 한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아는 듯하다. 계란을 투여한 후에 '한동대 로고송'을 몇 번 들려준다. 자기가 그토록 즐겨 불렀던 것이니 인지 회복에 좋을 것 같다. 연이어서 사고 이전에 지냈던 일들을 담은 영상물이나 병원 생활에서 촬영해 두었던 영상들을 켜 준다. 그렇게 매일 30~40분 동안 부모와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다.
이 로고송 가사를 들을 때마다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마치 아들이 직접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고 석양처럼 쓸쓸한 감정이 생길 때도 있다.
아들은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한동대학교에 진학했지만 3학년 2학기때, 교내에서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의 생은 "일단 멈춤"이 되어 10년의 세월을 목숨만 유지한 채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한동대학교 로고송 가사 전문>
이곳에 첫 발을 내딛을 때
가슴 깊은 그곳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내가 온 것을 알았지
비록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광야만이 나를 반겨주던
그래도 설레던
나와 같은 맘을 가지고 모인
귀한 친구들과 꿈을 나누던
아름다운 벽등 그 불빛은
아직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
여기 모였네, 두 손 들고
그분의 이끄심을 체험하는
한동대학교
한동대 학부모 기도회
다른 대학교에도 학부모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사고를 당하는 순간부터 가장 발 빠르게 우리에게 응원의 손길을 보내준 곳이 학부모 기도회였다. 사고 당시만 해도 SNS가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부모 기도회 홈페이지를 통하여서 전국에 있는 모든 학부모 기도회 회원들이 합심하여 아들, 임찬양의 쾌유를 위해서 기도했다. 지금도 2,0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된 밴드가 활성화 되어있다. 그 밴드에, 매달 1일이 되면 기도문이 업로드된다. 그 기도문에는, 아들 임찬양에 대한 기도는 10년간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다.
강남팀 학부모 기도회에서, 찬양이 아빠에게 찬양이에 대한 간증을 부탁하여 참석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모든 회원들이 애간장이 끓도록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응원과 기도는 최고의 후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현재 전국과 해외 78개 지역 기도팀이 있다. 그분들이 10년간, 한동의 한 지체인 임찬양을 위하여 부르짖었던 기도는 우리에게는 큰 용기가 되었다.
[한동대 학부모 기도회 안내 / 학부모 기도회 밴드에 올린 글의 일부]
기도는 물론이거니와 팀별로 마음을 모아서 후원을 해주셔서 참 잘 지내왔다. 그리고 그 전국 학부모 기도회밴드에 기도 제목으로 올렸던, '24시간 활동보조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는 제일 먼저 감격의 소식을 밴드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