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찬양Lim Jul 06. 2022

긴 하루 같은 10년

- 곁에서 함께 투병하던 중증 환자들이 하나, 둘 떠나는데...

사고를 만나다     

    아들이 자전거 사고를 당하여 수술을 받은 이후에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생소한 재활 병동에 입원했을 때, 옆 침상의 젊은 환자는 입원한 지 1년이 되었다고 하여 내심 놀란 적이 있다.

'병원에서 1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 가족들에게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겠구나!'라며 기가 막힌 느낌을 받았다. 그 청년은 군대에서 훈련 도중 쓰러졌는데 골든 타임을 놓친 경우였다. 청년의 어머니는 밤낮으로 병원에 먹을 것을 챙겨 나르고, 아버지는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잠시 집에 갔을 동안에 아기처럼 칭얼대던 청년은, 전화기를 통하여서 그 어머니가 뭐라고 몇 마디 하며 달래주면 아기처럼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TV나 책에서 본 적은 있었겠으나 나와는 거리가 먼일이라고 여겼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재활 병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내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고 빨리 그 옷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같았다.     

 

   사고는 예고도 없이 우리 가정을 덮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병상에 올려놓고 지 온 지 벌써 10년이다. 자식을 병간호하며 지내는 삶은 기가 막혀서 어떻게 표현할 말이 없다. 23세의 건장한 아들이 하루아침에 의식이 없는 환자가 되어버렸으니 그 황망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공군 장교 테스트도 통과하고 네덜란드 교환학생으로도 정해진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아무 의식 없는 자가 되어 수만 가지의 일을 타인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현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든다.


긴 투병의 끝은 어디일까?          

 재활이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함께 투병하던 환우들이 결국은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 루게릭 환자, P씨(20년 투병)     

 포항에서 만난 환자다. 재산이 많아서 병원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했었다. 비급여로 병원비를 내면 퇴원하지 않고 계속 입원할 수도 있었다. 입원한 지 4주간이 지나면 퇴원해야만 하는 대학병원에서도 여전히 입원이 가능한 '백병동'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내내 지내다가 거의 20년 만에 고향인 포항으로 옮겨온 환자다. P씨는 임종할 때까지 인지는 온전했었다. 그러나 몸을 점점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결국 면역력이 떨어져서 세상을 떠났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고 돈이 그렇게 많아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뇌출혈 환자, 정희씨(가명)(15년 투병)     

  정희씨는 남편이 돌보고 있었다. 정희씨는 늘 눈을 감고 있었고 가래가 쉴 새 없이 끓고 있었다. 정희씨 남편은, 일상생활을 모두 내려놓고 아내만 돌보며 병원에서 생활했다. 병원이 그들의 집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병원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집으로 옮겨 갔었다. 종종 정희씨 남편은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었다. 그러나 두어 달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에, 정희씨 남편이 아내의 부고를 알려왔다. 집으로 온 지 2년여 만에 정희씨는 세상을 떠났다. 급성 폐렴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아내만을 돌보던 정희씨 남편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이 되었다.    

      

- 치과 의료사고 환자, 은숙씨(가명)(15년 투병)     

  은숙 씨는 치과 치료를 받다가 의료사고로 연하가 마비된 환자다. 인지도 있고 걸어 다닐 수도 있을 정도였다. 중증이 아니어도 은숙씨는 재활 병원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재활 병원에서 느끼는 것은, 중증 환자나 약간 불편한 자나 매 한 가지라는 것이었다. 본인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면 거기서 거기였다. 은숙씨네 자녀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앞다투어 말썽을 피우고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은숙씨 남편은, 경제적인 어려움에다가 사춘기 자녀들을 돌보고 직장생활까지 하려니 이중 삼중으로 고충이 심했다. 시간이 흐르니 간병인을 더는 쓸 수가 없는 형편이 되어서 은숙씨를 공동 간병인 실로 옮겼다. 의료비 혜택을 보려고 서류상 이혼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은숙씨는 세상을 떠났다. 소문에 의하면 은숙씨 남편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은숙씨가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소리도 들었다.   

       

- K목사(20년 투병)     

  교회 건축을 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K목사는 연체동물처럼 온몸이 늘어져 있었다. K목사 사모는, 간병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남편의 병간호를 해오고 있었다. 장성한 자녀들이 번갈아 가며 주말에 아버지를 돌보아 주어 그 사모는 한 번씩 댁에 다녀오곤 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병원 생활에 지친 K목사네는 병원을 떠나서 집으로 옮겨갔다. 몇 년간은 무사히 잘 지냈는데 일전에 K목사의 부고가 날아왔다.     

  

<스타 다큐/ 마이웨이>에서 본 가수, '방실이'     

  방실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내 바쁜 일상에 젖어서 그녀의 근황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스타 다큐/ 마이웨이>라는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방실이가 투병한 지 16년이나 되었단다. 세월이 참 빠르다.


 https://youtu.be/bsk91kpTB5M     


   방실이의 투병하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아서 방송을 집중하여 보았다. 방실이는 인지가 돌아왔고 소통을 잘하는 상태였다. 그 모습이 내게는 커다란 기적처럼 느껴졌다. 뇌를 다치면, 회복이 된다고 하여도 온전해지기 어렵고 설령 좋아진다고 하여도 속도가 무척 느리다. 16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긴 하지만 가수, 방실이의 회복 상태가 내게는 부러웠다.    

      

시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말씀    

 

"참 큰일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2018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이 늘 귀에 쟁쟁거린다. 집안 종손이 기막힌 상태가 되니 시아버님은 크게 상심하셨다. 그리고 한마디 하셨다. 참 큰일이라고, 보통 일이 아니라고. 손주도 손주지만 그 자식 돌보는 아들 내외를 지켜보시려니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된 것 같다. 사실,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없는 이 장기전에 이겨낼 장사가 누가 있을까? 그러나 단 한 번도 아들을 돌보는 일이 귀찮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병상의 아들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웠다. 우리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비싼 값을 치르고 알게 된 사실이다. 문득문득 내 속에 이렇게 샘솟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놀랄 때가 있었다.     


    이제는 지난 온 시간을 셈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듯하다. 앞으로 언제까지 가게 될지 계산하는 일은 더욱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다. 정상을 바라보고 등산을 하면 힘이 들고 지레 지치게 되니 차라리 앞만 보며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산꼭대기에 마침내 다다르듯이, 지금까지처럼 묵묵히 가면 될 것 같다. 어쩌면 다른 길이 없어서 이 길로만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우리가 고생하는 모습이 측은하여 차라리 아들이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이 가장 섭섭했었다. 그것은 부모의 맘을 전혀 모르는 말이다. 묵묵부답 소통할 수 없는 아들이지만 우리 곁에 있는 아들이 그냥 좋다. 이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다. 이 아들이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니면 방실이처럼 더 나아져서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자들이다. 지금 병상에 있지 않은 자들이지만 우리의 내일은 무탈하거나 기막힌 일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삶이고 내일은 또 내일의 몫이다.     

 기가 막힌 웅덩이에 있지만, 그 웅덩이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오늘 지인에게서 캘리그래피로 적은 잠언을 하나 전달받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잠언 16:9)

이전 12화 텔레파시가 통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