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어머니를 간병하며 사는 여동생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요양 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나머지 20시간은 여동생의 몫이었다. 대, 소변을 뉘어 드리고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시키는 일로, 하루에도 수 차례씩 여동생은 어머니 집을 오가야 했다. 어머니가 전화기의 단축 번호 키 1번을 누르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동생은 어머니께로 달려가곤 했다.
동생이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대, 소변을 뉘는 일이었다.어머니는 거동이 안되는 분인데도 기저귀에는 소변이 나오지 않는 분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차례씩 여동생이 어머니를 힘겹게 이동식 변기에 돌려 앉힌 후에 소변을 보게 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매우 위험해보였다. 자칫하다가는 환자나 간병하는 자가 동시에 넘어져서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요양원을 찾아서 입원시키자고 의논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확진되어자가격리 명령을 받아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환자를 봐줄 수 있다는 요양원을 찾았지만 확진자와 접촉한 자라 '음성' 확인서를 받은 후에 입원할 수 있단다. 복지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건강 검진과 신속항원 검사를 끝내고 이튿날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여동생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어머니는 예상보다 더 빨리 요양원으로 가시게 된 것이다.
(#비극. 2) 남편이 확진되다
2022년 7월 30일, 토요일 저녁
"아무래도 이상해, 목이 따끔거리고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남편이 말했다.자가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선명하게 두 줄이 나왔다. '양성'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함께 검사를 했던 나는, 한 줄이라 그때까지만 해도 '음성'이었다. 컨디션도 괜찮았다. 그 시간부터 불편하게 동거가 시작됐다.
2022년 7월 31일, 일요일 아침
다음날 아침, 남편은 코로나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검색하여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신속 항원 검사를 받은 결과는 예상대로 확진이었다. 남편은 3일 분의 약을 처방받고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비극. 3) 나도 확진자가 되다
2022년 8월 1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확진자의 동거인이기 때문에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검사를 받았다. 증세도 없으니 확진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는데 여지없이 '양성'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동안에, 남편은 '원스톱 진료 시스템'을 통하여서 비대면 진료를 의뢰해놓았던 모양이었다. 의사와 내가 상담하는 곳에, 남편은 전화로 동참하여 대면/ 비대면 상담을 동시에 받았다. 남편은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아서 추가 상담을 신청했던 것이다.
"그러면 드시던 약은 끊으시고, 현재 병세에 맞게 처방을 다시 했으니 이 약을 드십시오. 그리고 '코로나 치료제'는 지정된 병원에서만 탈 수 있으니 도보나 자차를 이용하여 그곳에 가서 약을 타십시오."
의사 선생님은, 상담할 때도 그랬고 약에 대한 설명을 하실 때도 매우 친절하셨다. 코로나 시대 동안에 지칠 만도 했을 텐데, 확진자 개개인에 대하여 다정하게 대해 주시니 맘이 한결 가벼웠다.
그런데 전날 밤에, 아들이 열이 높았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들은 10년간 중증환자로 투병 중이다. 우리가 아픈 것은 뒷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접어들면서 가래가 심해진다고 하더니 활동 보조사가 보내온 자가 키트 검사 결과 사진을 보니 '양성'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남편이 아프느니 어쩌느니 하던 말이 잠시 쏙 들어갔다. 1339에 연락을 하고 보건소와 전담 병원 등에 빗발치게 전화를 했다. 모두 친절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점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다행히 아들의 경우는 보건소에서 출장을 와서 검사를 해준다는 것이다. 결과는 다음 날 오전 9시경에 나온다고 했다. 결과를 전해 듣지 않아도 확진인 것이 뻔한 일이었다.
우선 열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처음에 처방받았던 코로나 약을 일단 먹여 보아야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아들의 처방약은 빨라야 다음날 오후나 되어야 수령할 수 있었다. 당시로는 아직 공식적인 확진자가 아니어서 전담 병원으로 입원할 수 도 없는 일이었고 환자는 고열로 위험하니 그 순간을 잘 이기고 버티는 일뿐이었다.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낀 후에 남편이 복용하다 남겨둔 약을 1회 분씩 약 분쇄기로곱게 갈아서 포장했다. 그리고 현관문에 걸어두니 활동 보조사님이 챙겨가서 먹였다. 다행히 그 약이 효과가 있었다. 약을 먹은 후에 아들은 팥죽 같은 땀을 흘리고 침대 시트와 옷 등을 다 적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열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왔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가래는 몹시 심했다고 한다. 아들은 목관 삽입이 되어있지만 한 달에 석션을 한 두 번만 하면 되는 환자였다. 그런데 아들에게 온 코로나는 고열과 가래를 몰고 온 것이었다.
(#비극. 4) 절대로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는 중증 환자, 아들이 확진되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예상했던 대로 아들이 확진되었다는 문자가 아들의 후견인인 남편에게로 알려져 왔다. 원스톱 시스템을 이용하여 상담을 받고 아들의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아들도 중증 환자여서 코로나 치료제도 투여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경구약인데 분쇄하면 안 되고 그대로 먹여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약을 입으로 먹을 수 없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전담 병원에 입원을 하여 주사로 맞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담 병원에 연락해보니 입원하면 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는 했다. 그리고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입원해야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복잡했다. 중증환자이기 때문에 챙겨갈 것들도 많고 보호자는 확진이 되어 격리되어 있는 상태이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전담 병원은 매우 친절했다. 119를 타고 오면 우리가 염려하는 석션실이나 식사등도 다 해결될 수 있다고는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픈 기억이 하나 있었다.
아들이 언젠가 입원을 했다가 그 병실에서, '알 수 없는, 지독한 바이러스'라는 것이 감염되어 그 바이러스가 박멸되는 한 달 간을 추가로 입원했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코로나 병동에 입원할 터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아, 그러면 치료제를 포기하고 자택에서 격리하여 치료제 없이 약물 치료로 하여 호전되기를 기다릴까?'
이렇게 남편과 갈등하고 있었다. 시간은 초조하게 흘렀다.
활동 보조사님과 그 문제를 상의했더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겠어요?저희가 봐야죠."라고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치료제를 포기하고 나머지 약만을 타겠다고 담당 의사님께 말씀드렸다.
병원은, 약국과 연계되어 있어서 처방전을 팩스로 약국으로 보내고 약국에서 조제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오면 우리가 찾아서 아들이 있는 곳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순간, 순간보건소에 상담하면서 진행했다. 약을 타러가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했다. 약사님께 특별히 부탁드릴 게 있었다. 위루줄로 약을 먹어야 하니 모든 약을 곱게 갈아달라고 했다. 약사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고 얼마 후에 조제가 완료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약국에 가기 전에 결제할 카드를 소독하고 위생 장갑 속에 보관했다. 약국에 한 점의 바이러스라도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 좀 보세요, 우리가 너무 힘들었어요."
약사님이 보여준 것은, 모든 캡슐 약의 껍질이 마치 조개껍질처럼 모아져 있는 통이었다. 분말로 갈아야 하니 약 껍질을 분리해낸 것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약국에서도 모든 환자의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비극. 5) 활동 보조사 A님이 확진되다
2022년 8월 3일, 수요일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간병을 하던 A님이 몸살 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신속항원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어서 B님과 C님도 증세는 없으나 선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아들은 '24시간 활동보조지원대상자'다. 현재 5분의 활동 보조사들이 로테이션으로 간병을 하고 있다. 접촉이 미미했던 D님과 E님은 음성 확인을 받았고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 일단 근무를 멈추기로 했다.
그분들이 근무를 쉬게 됨으로 간병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확진자인 부모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함께 간병에 가담하기로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재택 치료 중인 중증 환자가 확진되었을 경우를 위한 매뉴얼이 첨부된 공문을 찾을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 / 장애인 서비스과/ 코로나 19 대응 장애인 활동 지원 추가 안내 매뉴얼 공문 표지]
(#비극. 6~7) 활동 보조사 B님, C님도 확진되다
2022년 8월 4일, 목요일
예상했던 대로 B님과 C님이 확진이 되었다. 그분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이미 벌어진 것이니 아들의 거처에서 공동 격리생활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한 결정을 내려주신 것이다. 아들이 고비를 넘긴 상태에서 확진자들이 모인 병동으로 입원한다면 여태까지의 수고가 허사로 돌아갈 판이었다. 보건소와 센터와 수없이 상담을 했다. 결국 확진된 활동 보조사님들이 아들이 있는 곳에서 공동으로 격리하기로 했다. 문제는 아들의 격리 해지 일과 그분들의 해지일이 차이가 있다. 그것이 또 한 번 넘어야 할 산이다. 그분들은 아들이 격리 해제되어도 자가격리기간 동안 그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특히 C님은 노모가 입원해있는 상태인데 C님이 확진이 되는 바람에 어머니의 입원기간을 일주일 더 연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의 여파는 일파만파였다.
일단 공동 격리 생활이 시작하게 되었다. 배달 앱을 통하여 그곳에들깨 삼계탕을 배달시켰다. 일단 잘 먹어야 그 독한 약을 먹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싱싱한 수박을 두 통 배달시켰다. 수분 보충은 필수다.
(# 비극. 열외 1) 서울에 사는 딸도 컨디션이 수상하다
2022년 8월 5일, 금요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딸이 목이 칼칼하고 열이 나는 것 같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혹시 바이러스가 SNS를 통하여 전파되기도 하려나? 하는 희한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대면으로 이 일련의 사태를 대화를 주고받고 하던 딸내미가 코로나 증세가 있다니.. 참 야릇했다. 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서 찾아온단 말인가? 코로나가 나의 주변 사방팔방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딸의 신속항원검사 결과는 '음성'이고 컨디션이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고 독감도 병원에서 키트로 검사할 수 있다고 한다. 딸은 코로나보다는 독감인 듯하다.
[딸이 보내온 카톡]
(#비극. 열외 다수) 주변 일상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싶었다. 급박하게 소용돌이치는 코로나 전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달한 소향의 목소리로 '한숨'이라는 노래를 듣는데 코끝이 시큰거린다. 참 힘들다. 사는 게..
소향의 달콤한 목소리로, 안아 준다는 노랫말 가사가 천사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https://youtu.be/aCpRwbc_G-E
[소향의 '한숨']
['한숨'의 가사 일부]
1339 의료정보 의료센터, 보건소, 전담 병원, 병원 응급실,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센터, 원스탑 진료기관 병원 및 약국 등은 각자가 맡은 곳에서 국민 각자에게 맞춤형으로 섬기고 봉사하고 있어서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모두가 챔피언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은, 언젠가 해봤던 '방탈출 게임'이다. 수많은 난제가 닥쳤을 때, 지혜를 모아서 해답을 찾고 각각의 방을 탈출했듯이 한 주간 동안에 몰려왔던 어려움들을 헤쳐 나왔다.
그 누구보다도,아들의 간병을 최일선에서 감당한 활동 보조사님들의 희생은 감동 그 자체였다. 사람에게 감동을 받아보니 암담한 현실이지만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의헌신과 섬김을 하나님이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알아주고 의로운 코로나 용사 상을 주면 좋겠다. 당연히 그분들의 활동 지원 이용자인 우리는 심심한 감사를 표할 작정이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 전쟁터에 함께 버틴 전우였다. 힘들 때 더욱 빛났던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다. 그 사랑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었다.
PS: 딸이 보내온 독감검진 결과 사진-> 독감의 통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죽을 맛인게 독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