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적인 동거
지난해, 12월 마지막 일요일 새벽에 119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
중증 환자 아들의 감기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한 주간 앓더니 급기야는 가래에서 피가 보였다.
쓰레기봉투를 든 채 버스를 탄다고?(병원에 입원하여 무척 고생했던 사연)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일반병동에 입원했다. 간호사실 바로 앞에 있는 병실이었다. 723호. 그곳에는 병상이 여섯 개 있었다. 우리가 입실할 때 환자 세 명이 입원해 있었다.
맞은편 환자는 밤새 잠을 자지 않았다. '웩웩' 하며 헛구역질을 했다. 음식이 들어가면 곧바로 구토했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데도 당장 퇴원하겠다고 졸라댔다. 강남 S브란스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우리가 늘 다녔던 그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그곳에 전원 의뢰를 했는데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도 일단 퇴원을 시켜주세요."
"그러시다면 자진 퇴원서에 서명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아웅다웅하며 우기더니 그 환자는 그날 퇴원했다.
우리 옆쪽 병상의 환자는 보호자가 없었다. 보청기를 낀 환자였다.
"아버님~"
"뭐라고?"
"약 드셔야 해요."
"뭐라고? 난 병이 없어. 기침이 멈추지 않아서 온 겨."
"그래도 검사를 하셔야 해요."
"뭐라고? 그런 거 하지 말고 기침만 멈추게 해 줘."
옆 병상의 환자는 숨이 끊어질 정도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그날 저녁, 그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 어떤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앞 침상에서 퇴원한 환자가 강남 S브란스 병원으로 간 모양이다. 입원수속 중에 '항생제 내성균'이란 것이 검출되었다는 연락이 왔단다. 그래서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도 검사 대상자가 되었다. 그 병원은 보호자 한 명만 상주하는 코호트 중인데 우리 병실은 '코호트 중의 코호트'가 되었다. 그날부터 비상 구급 위생품이 병실에 배치되었고 우리 병실에 들어오는 의료진은 'AP 가운'을 챙겨 입었다. 우리 병실은 '요 격리실'이 되고 말았다.
그다음 날, 옆의 환자는 마른기침이 여전한 듯한데 퇴원 오더가 떨어졌다. 다행히 항생제 내성균 바이러스 1차 검사 결과는 음성이 나왔단다. 그래도 2차 검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우리 병실에는 달랑 두 명의 환자만 입실해 있었다. 다 이상의 환자가 입실하지 않았다.
대각선 위치에 있던 근자감이 가득한 남자 환자와 우리만 723호에 있었다. 근가남씨와 운명적인 동거가 시작됐다.
근가남씨 부인이 독박 간병 중이었다.
"자, 딱 두 숟가락만 드셔."
"안 먹어, 너나 먹어."
아, 요즘 세상에 저렇게 큰소리치는 남편이 있다고?
"저리 가. 꼴 보기 싫어."
"아, 그런다고 발로 차면 어떡해요~"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내도 있다고? 저런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는다고?
"이런 건 왜 달아 놔?"
"안 돼요. 이건."
"에라이~"
"어머나, 소변줄을 뽑으시면 어떡해요."
확 쥐어박고 싶다.(참자, 참자, 저런 소리 다 들으며 말없이 간병하는 부인도 있는데, 내가 뭘?)
"병원밥은 맛이 없어요?"
"병원 식당이 음식 솜씨가 없어."
어? 이 상황에서 반찬 투정을 한다고? 간 큰 남자네.
"열무김치가 먹고 싶네."
"알았어요. 애들한테 가져오라 할게요."
보살인가? 아니지, 권사님이랬지. 그 투정을 다 받아 주네.
"제가 버스 타고 가서 가져올까요?"
"응."
엥? 대소변을 받아내는 환자인데 면도를 꼭 하겠다고?
"왜 돈을 쓰고 난리여?"
"자, 면도합시다."
"이 보호자는 한 번 내려가시면 올라오시질 않네."라고 간호사 샘이 말한다.
"주은아~ 주은아~"그런데 문제는, 부인이 옆에 없으면 근가남씨는 병원이 떠나가도록 부인을 불러 젖힌다. 급한 일이 있어 보이지는 않건만 부인이 자기 옆에 앉아 있기만을 바란다.
근가남씨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다. 같은 병실에 다른 환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 텐데 개념치 않고 막 소리친다. 근가남씨는 나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다. 이렇게 남자한테 깡그리 무시당해 본 적은 첨이다. 나쁜 남자, 근가남씨는 도대체 어떤 분 일지? 관심이 생겼다. 나는 역시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여자다.
언제 한 번 보리라.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아내분을 쥐 잡듯 하고 나란 여자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야?
병실 입구에 가 봤다. 입원자 명단이 붙어 있다. 근가남씨의 연세는 80세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면도기를 가져오라, 열무김치 내놔라 하며 기세등등하다고?
젖은 낙엽도 그런 낙엽이 없겠구먼.
도대체 어떻게 생기셨는지 한 번 봐야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아니면 전직이 대단한 고위직이었을까? 저 근자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드디어 부인이 병실로 들어온다.
"밥 잘 드시고 약 잘 먹어야 얼른 퇴원을 하죠."
"에에, ×발, 지들이 뭘 알아?"
"그러시면 안 돼요."
"시끄러워. 등이나 긁어."
"어디요? 여기요?"
"좀 박박 긁어."
"알았어요."
"발바닥도 좀 긁어."
"발바닥 긁어주면 잘 거야?"
"어디 좀 나가지 말어. 여기 가만있어."
"알았어요."
드디어 은지네 식당의 된장국이 온 모양이다.
"하하하하."
어? 아내분이 막 웃는다. 저게 웃을 일일까? 두 분 다 이해되지 않는다.
난 뻘뻘 땀을 흘리며 아들의 응가를 치우다 픽 웃고 말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공연 같은 것이다. 돌직구로 막 쏘아대는 근가남씨의 말에 빵 터졌다. 순간, 피곤이 훅 사라진다. 웃음은 그런 효과가 있다.
엥? 응가를 받아내는 아내한테 저렇게 큰 소리를 친다고?
그런 근가남씨가 부인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을 때가 있다. 바로 딸, 아들이나 손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시끄러워." 또 성질을 낸다.
드디어 커튼 사이로 근가남씨 모습을 살짝 봤다. 앙상한 다리에 호호 할아버지다. 얼굴에도 주름살이 가득하다. 저럼 몸인데 어디서 그렇게 소리가 나올까? 뭘 믿고 그렇게 고함을 질러대실까?
"존경스러워요. 화도 내지 않으시고 남편분의 투정을 다 받아 주시다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예요. 젊었을 때는 더했어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게 남편분에게 대하세요?"
"불쌍하잖아요? 인생이..."
아하, 남편분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시는구나.
'작가 나부랭이 그까짓' 브런치 작가님의 '힘내요 그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이 먹을수록 그조차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구분이 잘 맞지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에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발췌
혹시 근가남씨의 부인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읽으셨을까?
아, 그거구나.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그 어떤 투정도 다 품을 수 있는 거구나.
허리가 구부정하고 힘든 인생을 살아왔을 그 부인이 큰 바위 얼굴처럼 위대해 보였다. 보아하니 근가남씨는 가정에 큰 보탬이 되게 살아온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근가남씨는 열녀를 만났고 효성스러운 자녀를 뒀다. 그것이 근가남씨를 우쭐하게 하는 모양이다. 마침내 우리는 근가남씨네만 그 병실에 남겨두고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불쌍히 여기자.
긍휼히 여기자.
모든 사람을,
그리고 옆에 있는
남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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