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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겉절이' 나와라, 뚝딱!

- 3분 만에 쪼물딱 만들 수 있는 요리

by Cha향기

그날은 마트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을 갔다. 먼저 감자, 고구마, 대파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묵은지 찌개를 끓일 요량으로 찌개용 돼지고기, 콩나물, 두부를 챙겨 담았다. 이어서 오이, 당근, 파프리카, 깻잎 등도 샀다.


오이와 파프리카를 식초물로 잘 씻었다. 듬성듬성 야채 스틱으로 잘라 락앤락 통에 담았다. 콩나물과 두부를 넣고 묵은지 돼지고기 찌개를 잔뜩 끓였다. 그날 점심은 얼큰하고 시원한 묵은지 찌개로 먹을 참이었다.


이어서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대파를 손질하려고 베란다로 막 나가려던 때였다.


"여보, 안 되겠다. 이러다가 탈수 현상이 오면 큰 일 나겠어. 엉덩이가 짓물러서 감염 위험도 있고..."


본가에 가서 중증환자 아들을 돌보고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상가상이었다. 13년째 와상 중증환자로 누워있는 아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설사를 한다는 것이 바로 엎친데 덮치는 격이다.


하던 주방일을 모두 제쳐두고 입원에 필요한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잔뜩 끓인 묵은지 찌개를 소분하여 뜨거운 채로 냉동실에 넣었다. 입원생활이 며칠이나 될지 모를 일이라 집안 이곳저곳을 단도리했다. 마치 장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안을 살피는 격이었다.

잔병치레 없이, 양호한 바이탈을 유지하며 투병을 해왔던 아들이 지난 세밑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점점 고열에 시달리며 피가래까지 나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응급실로 갔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버스를 탄다고?(그때 입원하여 고생한 일에 대한 기록)

폐렴기 때문에 염증 치료를 위해 아들에게 항생제가 투여됐는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설사를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일주일 만에 퇴원 오더가 떨어졌다.(호흡기 내과 상으로는 호전되었으므로) 퇴원 후, 처방약을 먹이며 두 주 이상이 지났지만 설사 증세가 잡히지 않았다.

또다시 응급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둘째 아이를 낳으러 가는 산모와 같은 심정이었다. 한 번 겪은 일이라 덜 두렵긴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더 떨리기도 했다. 양가감정이었다.


일전에 입원했을 때 불편을 겪었거나 미처 준비해 가지 못하여 아쉬웠던 것들을 꼼꼼하게 잘 기록해 두었다. 그 기록을 금방 살펴보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그 덕분에 입원할 때에 필요한 짐을 잘 챙겨갈 수는 있었다.


데자뷔처럼 입원 절차가 진행됐다. 설사를 해대는 아들에게서 무슨 검사를 그렇게도 많이 하는지? 틈만 나면 한 대롱씩 피를 뽑았다. 소중한 내 아들의 피가 속절없이 뽑혀나갔다.


한 주간 동안, 전쟁을 치르듯이, 또 한 차례 '독박' 간병을 하고 말았다. 증상이 뚜렷하게 나아진 것도 없건만 여러 가지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다며 퇴원해도 된다는 결정이 났다. 처방약으로 치료가 가능할 정도가 된 모양이었다.




사설 응급차를 이용하여 아들을 본가에 안착시키고 여러 가지 정리를 끝낸 후에 세컨 하우스로 돌아왔다. 뒷베란다에 놔뒀던 대파 2단과 감자, 당근, 고구마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은 그런 걸 살펴볼 경황이 없었던 모양이다. 겨울이었기에 망정이지 여차했더라면 버릴 뻔했다. 게다가 집에서 지낸 남편이 독박 간병을 했던 나보다 더 지쳐 보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것들을 그대로 뒀냐,라고 남편에게 불평했다.


"당신이 힘든 걸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애간장이 다 녹았네."라고 남편이 그동안의 심정을 토로했다.

"아무리 그래도, 힘든 사람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느라 힘든 사람이 정작 힘든 사람 보다 더 힘들까?"

라고 말장난하며 한바탕 웃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나는 입맛을 잃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색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식사를 신청했었다.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는 하나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호자 침대에 철퍼덕 앉아서 한 숟갈 뜨는 식사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판이었다. 밥을 먹다가 아들의 소변을 갈아 주기도 하거나 또 한 술 뜨다가 의료진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으니 맛을 알 턱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들의 설사는 여전했다. 세컨 하우스로 돌아갈 엄두도 못 내고 아들이 있는 본가에서 여전히 지내며 아들을 돌봤다. 한 달 이상 밤낮 주야로 간병에 매달리다 보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도 퇴원하니 잠시 잠깐이라도 숨 쉴 틈이 생겼다. 활보쌤들이 도와주니 살 것 같았다.




아들이 퇴원한 그다음 날 저녁에 잠시 시간을 내어 세컨 하우스에 갔다. 야채칸을 열었다. 입원하던 날 다듬어 두었던 야채들이 그대로 있었다. 씻은 후 야채 탈수기로 물기를 빼두었던 깻잎은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지를 담갔다.


"야채 겉절이 나와라, 뚝딱!"


에라, 모르겠다. 듣도 보도 못한 나만의 레시피를 그 순간에 떠올렸다. 그것들을 몽땅 몰아넣고 모둠 야채 겉절이를 하기로 했다. 아들이 여전히 쾌차하지 않은 상태라 한가하게 고기를 구워 야채스틱을 쌈장에 찍어 먹고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야채 스틱에 다진 마늘, 생강가루, 까나리 액젓, 고춧가루를 넣고 버물렸다. 마지막에 통깨를 솔솔 뿌렸다.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은 넣지 않았다.


야채 겉절이를 먹으니 힘든 간병 생활로 잃었던 입맛이 살아났다. 찐 감자나 고구마와 함께 야채겉절이를 먹거나 잔기지 떡을 데워 그 겉절이와 먹기도 했다. 그렇게 후딱 만든 야채 겉절이는 시간이 지나도 물이 생기지 않았다. 스틱 모양으로 듬성듬성 굵게 썰었기 때문이다.


그 야채 겉절이는 구황 반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찐 감자, 레드향, 야채 스틱 겉절이, 그리고 더치커피였다.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았다.


겨울의 정점에 이른 요즘,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기 원한다면
야채 스틱을 몰아넣어 버무린
'야채 겉절이'만 한 것도 없을 것 같다.

[야채 스틱 겉절이/ 소분해 두었던 묵은지 김치찌개를 냉동실에서 꺼내어 데워 먹고 있다. / 양념장으로 버무린 깻잎지]




# 야채 겉절이

# 구황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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