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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사각오(一死覺悟)

- 죽으면 죽으리라

by Cha향기

▮ 인간에게는 창이 필요하다.

병동 특실 격리실에 오니 아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어쩌면, 건강한 사람보다 중증 환자가 본능적으로 환경에 더 민감할지도 모른다. 아들도 나도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눈앞에 야트마한 산이 펼쳐져 있었다. 병실 아래쪽에 작은 정원도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으로 바쁜 모양이다. 옷자락을 여미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혼자 있지만 (아참, 아들과 함께) 바깥을 내다볼 수 있으니 덜 삭막했다. 이왕 할 감옥살이라면 창이 있는 게 더 낫다.


호텔용 소파가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고급진 소파는 환자나 간병인이 앉는 용도다. 혹은 거기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커피나 마시라고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여러 개의 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냥 내 편리한 대로 사용했다. 잠시 머물 곳이니 뭔들 어떠랴?


세면대가 침대 바로 곁에 있으니 언제라도 손을 씻을 수 있었다. 실내 화장실은 기본 필수 옵션이었다. 그만하면 됐다. 아니, 과분했다. 아들만 속히 호전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 엉덩이 터진 환자복 바지가 한몫했다.

아들에게 맞춤형으로 제작한 간병 용품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엉덩이 터진 환자복 바지다. 와상 환자에게 대체로 그냥 이불만 덮어 준다. 그러면 보온성이 떨어진다. 바지 엉덩이 부분을 도려내어( 허리춤의 고무줄 부분을 남겨두고) 뒷부분만 틔도록 한다. 그 바지는 사시사철 다 좋다.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의 냉기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보온 기능을 한다.


지난번 입원 때, 엉덩이 터진 바지를 미처 챙겨가지 못했다. 그 바지가 없으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중증환자는 침대에 누워있을 때 바지를 입혀 둘 수가 없다. 이번에는 엉덩이 터진 바지를 미리 잘 챙겨갔다. 그것이 한몫 톡톡이 했다. 사소한 일 같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큰 수고를 덜 수 있다.


▮특실 격리실 문은 항상 닫아 두어야 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보균자라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백 프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일요일에 줌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1인실인 데다 문까지 꽉꽉 닫아 두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화면으로라도 그들을 보니 반가웠다. 현장에 있는 분들께 병실을 보여주며 환자의 모습도 비추어줄 수 있었다. 기억에 남을 예배를 드렸다.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쌍방 대면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다준 특이한 문화다. 아무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무소부재하시리라.


문 닫힌 격리 병실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설교 말씀도 들렸다. 아들의 눈빛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들은 나아지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곳이 오히려 은혜가 풍성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진심으로 독대할 수 있었다.


그날의 말씀은 '원수를 향한 성도의 자세'라는 제목이었다. 사랑, 사랑, 사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랑이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랑스럽고 예쁜 자를 사랑하는 것은 쉽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도 할 만하다. 본능이니까. 그런데 치를 떨게 한 원수일지라도 사랑하란다. 그래야 하는 근거를 말해주는 것이 바로 그날의 설교 요지였다.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걸리는 관계를 떠올렸다. 그들은 껄끄러운 사이일 뿐이지 원수는 아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데... 그 정도 사람들이야, 용서하고 용납하자. 그러자 평안이 몰려왔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문이 닫힌 병실에서 인생의 한 고개를 넘는 중이었다.


▮ 격리 병실 앞에 수납장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 병실로 들어오는 모든 자는 일단 멈춤이다. 수납장에서 위생장갑, 가운, 마스크 등을 장착하고 들어와야 한다. 하다 하다 식사를 끝낸 식판마저 그냥 내놓으면 안 된다. 문 앞에 있는 수납장에 비치된 비닐봉지를 씌워서 내놔야 했다.


"똑, 똑, 똑"

"네에~"

"식사 두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얼굴 한 번 대면하지도 않고 식사를 배달받았다. 바깥세상과 마주하면 안 되는 우리의 처지라니... 흑, 흑, 흑. 전염 병자 신세가 됐다. 어쩌다 우린 그렇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그 아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병실 안에서
숨을 쉬었고 식사도 했다.
엄마니까 그게 가능했다.
죽으면 죽으리라!!!!


너를 향한 찐 사랑 (1).png [스무 글자로 엄마의 찐사랑을 표현했던 엔절넘버 시]




입원 제3일에 드디어 아들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심했던 나쁜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단다. 휴우,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했다.


우리 병실 앞에,

'격。 리。 해。제'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붙었다.



얏호, 곧 일반 병실로 가게 된다고 했다.
마음이 설렜다.
출옥하는 심정이었다~




[대문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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