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카이 블루(Sky Blue: 맑고 차분한 하늘색)
때때로 정이 엄마는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부부 싸움을 했다. 그럴 때면 정이는 엄마보다 더 크게 울었다. 정이에게는 우주가 흔들리는 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으리라. 정이는 하필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무서움에 떨어야 하는가? 정이가 울면 나도 울고 싶었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한 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 간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어린 정이는 그걸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맘이 아팠지만 의지가지없는 나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정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정이를 버리지 않고 지켜줄 것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부모가 전쟁 같은 싸움을 하니 정이는 툭하면 울었다. 정이는 불안에 떨었다. 그날도 정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정이를 안고 슈퍼로 내려왔다.
"넌, 오지랖도 넓다. 남의 애를 데리고 와서 어쩌겠다는 게냐?"
어머니는 내가 정이를 안고 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내 속마음을 모른다. 정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은 내 마음을 알 리 없다.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달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이 엄마는 어떤 여자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그날도 얼른 정이부터 챙겨 안았다. 정이는 그런 상황이 되면 으레 나한테 있어야 하는 줄을 눈치챈 것 같았다. 정이는 내게 파고들었다. 나도 정이를 꽉 껴안았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맞닿으면 서로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년, 드디어 잡았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너 죽으려고 환장한 년이냐? 남자를 꼬셔 얼라를 낳고 살림까지 차려? 이런 추잡한 짓하는 잡년 좀 보소. 동네 사람들아, 구경하소. 이 화냥년 상판대기를 좀 보소. 내가 이 연놈을 가만두나 봐라. 간통죄로 집어넣어 평생 콩밥을 먹여줄 테다.”
여자가 정이엄마에게 심한 말을 거침없이 마구 퍼부어대자 정이 엄마가 갑자기 고개를 바딱 들고 그 여자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니 남자, 내 남자가 어디 있노? 남편 간수 잘했으면 왜 나한테 왔겠노? 나 혼자 사랑했나?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나도 피해자다. 내 청춘 다 조졌다. 우리 부모는 나를 보지도 않는다. 이판사판이다. 함부로 입 놀리지 마소. 앞으로는 정이아부지를 못 볼 줄 아시오. 내가 정이아부지 발을 묶어 둘 끼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정이 아버지는 두 여자가 다투는 걸 보더니 웃옷을 집어 들고 집밖으로 총총히 나가버렸다.
"정이 아부지한테 물어보세. 우리 둘 중에 한 사람만 택하라 하면 되겠네." 정이 엄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인생을 그만 살 사람처럼 악다구니를 썼다.
"이 첩년이 그래놓고도 할 말이 있나 보네."
"정이 아부지가 나를 더 사랑한다. 알기나 하셔. 정이아부지는 내 유일한 사랑이다. 난 정이 아부지 없으면 못 산다. 됐나? 우리 누가 이기나 해보자. 법으로 할래? 사랑으로 할래? 난 정이 아부지 밖에 없다. 어쩔래?"
나는 속으로 정이 엄마를 응원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큰 어머니가 문간으로 나섰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요? 동네 창피하게.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장사하는 집 앞에서 교양 없이 이러지 마시오. 이렇게 분탕 치려면 당장 방을 빼시오."
"어느 누가 첩년을 보고 눈 감겠능교?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하잖습니꺼. 나는 이 인간들 헤어지는 꼴 보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입니더." 입가에 허연 거품까지 물며 소리치던 여자는 슈퍼 안으로 들어와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그걸 병째 마셨다. 막걸리 한 병이 그 여자의 목으로 꿀컥꿀컥 순삭 넘어갔다.
"씨 도둑은 못한다더만, 닮기는 많이 닮았네." 여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후에 정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정이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홱 돌렸다.
여자는 밤이 늦도록 슈퍼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술주정을 했다.
"여보시오. 영업 방해되니 조용히 하든지 여기서 나가 주시오."
어머니가 여자를 밖으로 슬슬 내보냈다. 여자는 슈퍼 바깥에 있는 파라솔 테이블에서 본격적으로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그 밤은 하늘이 퍽이나 어두웠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정이엄마 맘이 말이 아닐 것 같았다. 정이네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그 평범한 일상이 정이 엄마에게는 로망이며 행복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정이네는 큰 어머니와 몇 마디 나눈 후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큰어머니는 그 방의 짐을 정리했다. 정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마대 포대자루에 깡그리 담겨 버려졌다. 정이는 손때 묻은 장난감이 생각이 나서 때때로 울며 떼를 썼겠지.
큰 어머니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종이를 슈퍼 유리창에 붙였다.
삭월세(朔月貰) 놓읍니다.*
1년에 20만 원
그 후, 정이네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문득
정이가 보고 싶었다.
* 80년대 당시 표기법: '사글세'/'놓습니다'
*대문 파스텔화(ⓒ정필)
#자식이_부모를_선택한다
#시앗
#울고_있는_나를_달래는_마음이었다
#간통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