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일락(Lilac: 연한 보라색, 라벤더보다 더 밝음)
큰 어머니는 국선 언니 방 앞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며 구시렁대곤 했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창휘 오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창휘 오빠는 학교에 다녀오면 교복을 벗지 않고 모자를 쓴 채로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거기서 오빠는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 오빠의 애창곡은 <아, 목동아>였다. 오빠의 노래가 한사코 귓전을 간지럽혀 내가 하던 일은 뒷전이 되곤 했다. 오빠의 노래를 하도 듣다 보니 나도 그 노래를 익혔다. 나도 혼자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
'아, 목동아'를 부르다 보니 스스로 내 노래에 내가 빠져 들었다. 내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듣고 국선 언니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니가 노래를 엄청시리 잘하네. 니도 가수 해라. "
노래가 뭐 어려운 거라고? 몇 번 들으면 부를 수 있는 게 노래가 아니던가? 세상에 제일 쉬운 게 노래 부르는 것이란 생각도 했다. '아, 목동아'를 부르면 가슴이 후련해지며 묘하게 평안해졌다. '아, 목동아'는 나의 청심환이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면 걱정이 훅 줄어들곤 했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나는 오빠가 부르는 그 노래에서 오빠에게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내가 부르는 '아, 목동아'에서는, 나는 나요, 너는 오빠라고 여기며 불렀는데...
한 번은 오빠가 옥상에 올라가다가 국선 언니 방 앞에서 청소하고 있던 큰 어머니에게 말했다.
“큰 엄마, 정말 너무 한 것 아니에요? 청희가 소나 돼지도 아닌데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매일 이렇게 일만 시키면 됩니까? 하다못해 검정고시라도 보게 해야죠. 아니면 기술이라도 익혀 살길을 열어 주어야 ..."
그러다가 오빠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울기 시작했다. 오빠의 훌쩍이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다가 오빠는 호랑이 같이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오빠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 오빠를 처음 봤기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 오빠에게 미안했다. 나를 챙기려고 오빠가 분에 받쳐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옴마야, 살다가 내가 별꼴을 다 보겠네. 니 부모가 공부를 안 시키는 것이고,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지 않나? 멀쩡한 아를 방에 가다 두믄 뭐하노? 그래서 내가 심심풀이로 이런저런 이야기 하믄서 데리고 일했을 뿐인데 모든 죄를 나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가? 야, 니가 뭔데? 니, 혹시? 이 가시나를 맘에 두고 있는 거는 아니제? 길에 깔린 것이 여자고, 쌔고 쌘 것이 여자데이. 청희는 벌써 팔자가 더러버 묵은 가시나 아이가? 꿈에도 생각하믄 안 된데이. 청희는 니한테 여동생이데이.”
“나도 이제 알 건 다 압니다. 우리 집안에서 청희한테 너무들 합니다.”
그러자 큰 어머니는 갑자기 나를 꼴아봤다. 레이저건 같은 눈빛으로 나를 따갑게 쏘아봤다.
"니 혹시 창휘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제? 힘들다고 했나?"
그러자 곧바로 오빠가 큰 어머니 곁으로 다가섰다. 마치 큰어머니를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였다.
"큰 엄마, 또, 죄 없는 청희한테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네요. 그런 게 제 불만입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칠암동이 훤히 보이는 옥상에서 나는 조용히 '아, 목동아'를 불렀다. 내 노래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에 이내 묻혔다. 마치 펄펄 휘날리는 눈꽃송이가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듯했다. 그래도 내 속에 뭉쳐 있던 답답함이 풀어지고 걱정이 하늘하늘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듯했다. '아, 목동아'를 끝까지 불렀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올 때까지 내가 잘 자리라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자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오래도록~
#아,목동아
#애창곡
#칠암동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