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사라졌다

# 라벤더(Lavender: 우아하고 신비로운 보라색)

by Cha향기

내가 옥상에서 '아, 목동아'를 불렀던 날, 오빠는 그예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평소처럼 덤덤했다.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놈이 쬐끔 컸다고 이제는 남자 다 됐네. 사나이 대장부가 그런 멋도 있어야지. 그까짓 계집애 챙긴다고 지가 집을 나가? 나가 봐야 세상이 어떤 지 알지. 지가 답답한지 내가 답답한지 한번 보자. 날개 없는 천사가 납셨네.”

어머니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바르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집 나간 오빠를 걱정하기는커녕 괘씸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매니큐어 솔이 바르르 떨렸다. 어머니가 아무 일 없는 척하며 큰소리쳤지만 미묘한 손떨림은 숨기지 못했다. 난 어머니의 아킬레스건을 보고 말았다. 어머니도 속으론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집 앞을 서성거렸다. 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옴마야, 이 일을 우짜노? 옴마야, 미정이 애비야, 이리 좀 나와 봐래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데이. 사달은 저 가시나 때문이데이. 나는 몬할 말한 것 아니데이. 미정이 애비야, 창휘 좀 찾아봐라,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르겠데이. 착실해서 공부 잘하고, 속 안 썩인다 캤더만 그놈이 별생각을 다 하고 있었네. 아이구, 무시라.”

큰 어머니는 온 집안을 왔다 갔다가 하며 미친 황소처럼 소리쳤다.


“행님, 가만 계시이소, 우리 도령이 돈 떨어지면 집으로 오겠지요. 어디로 가겠습니꺼? 사나이 대장부가 불뚝 성질도 있어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낼 것 아닙니꺼?”

어머니는 큰 어머니를 달랬다.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집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우리 방에서 같이 자자.”

쌀집 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쌀집 언니는 자그마했고 평소에 거의 말이 없었다. 쌀집은 온 식구가 방 하나에서 함께 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더러 자기네 방으로 가자고 하던 언니의 맘이 따뜻하게 내게 닿았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느니, 여자 작은 것과 집 좁은 것은 괜찮다느니 하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슈퍼 바로 옆 상가는 방이 하나 딸린 쌀집이었다. 큰 어머니는 그 쌀집 식구들 모두를 도매금으로 싫어했다.

“식구가 많아서 쫓아낼 수도 없고, 쥐뿔도 없으면 자슥 새끼나 작작 낳을 것이지. 이런 소리 듣기 싫으믄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내든지, 그나마 월세를 쌀로 대신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면서 쌀집 식구들을 미워했다. 각 사람 개인, 개인을 종합세트처럼 단체로 보며 일반화하는 큰 어머니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쌀집은 딸만 다섯이었다. 방 하나에 일곱 식구가 포개어 잠을 잤다. 그날 밤 쌀집 언니를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가니 쌀집 아주머니는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청희야, 너나 나나 우짜믄 이렇게 복이 없노? 누구는 돈이 많아서 세를 놓으며 살고, 그래서 유세나 떨고, 나는 이게 무슨 신세고? 지지리도 박복한 녀러 팔자! 사내가 변변찮으니 맨날 이 신세를 몬 면하는 기라. 저 가시나를 얼른 결혼시켜 치워야 하는데 돈도 없고, 인물도 없고, 누가 선뜻 저 가시나를 데려가겠노?”


쌀집 언니는 뾰족구두를 신고 몇 번인가 맞선을 보러 나갔다. 그러나 결혼하자는 남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집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오빠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빠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사라졌다.

▲ 대문 파스텔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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