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 (Mauve: 회색빛이 도는 연보라색)
내가 슈퍼 계산대에서 일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욱 싸늘하게 내게 대했다. 공공연히, 내가 어머니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도록 하는 심뽀가 엿보였다.
“쟈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울상인지 모르겠네.
청희야, 채널 좀 다른 데로 돌려 봐라.
청희야, 담배 드려라.
청희야, 물건 정리해라.
청희야, 가게 청소 해라.”
어머니는 숨 쉴 틈 없이 내게 일을 시켰다. 내가 멀티 성능을 지닌 로봇인 양 입력버튼을 다다닥 눌렀다. 그러다가 재빨리 일을 해내지 못하면,
“도대체, 야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굼뜬지?”라며 나에게 눈총을 쏘아댔다.
정말이지, 나는 어머니 눈총 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사람이 칼이나 총에 맞아서 죽기도 하지만 미운 감정을 담은 눈총을 계속 맞다가 보면 서서히 죽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차라리 눈총 맞고 죽느니 스스로 죽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열네 살, 그때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죽는 법을 몰랐다. 아마 내 곁에 오빠가 없었다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 하나가 이 넓은 우주에서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울 사람이 없었다. 나란 사람은 어쩌다 이 땅에 툭 떨어졌을까? 한낱 도토리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내가 이 세상에 떨궈진 듯하다. 혹이 이르기를,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하지만 내 생명은 지푸라기만도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쓸모없는 인생인가? 그럴 적마다 오빠가 멀리서 보내주던 따사로운 눈빛은 연고 같았다. 쓰라림이 누그러지고 숨도 쉴 수 있었다. 오빠는 내 삶의 창이었고 약이었다.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 해도 오빠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 식구들 눈총으로 문드러진 내 가슴에 오빠로 인하여 조금씩 딱지가 앉곤 했다.
어머니가 풀메이컵으로 화장을 끝내고 슈퍼에 나와 근무할 타이밍이 되면 나는 본격적으로 온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이미 세를 내준 방 언저리까지 다 청소를 해야만 했다. 큰어머니는 대문 안에 있는 모든 곳을 샅샅이 핥듯이 청소하길 원했다. 내가 청소를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나의 사명은 청소하는 것인 양, 큰어머니는 청소라면 가리지 않고 내게 시켰다.
그중에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은 바로 사촌 올케언니, 미정 엄마 방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일단 역겨웠다. 안채에 있는 방들 중에서 가장 큰 방에 멋있는 침대를 둔 방이었다. 미정 엄마는 평소에 발끝까지 닿는 기다란 원피스를 입었다. 미정아빠가 집 안에 있을 동안, 그녀는 주로 그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면,
“청희야, 방 좀 치워줄래? 난 바빠서.”라고 했다. 내가 쏜살같이 달려가 보면, 어떤 때는 사촌 오빠, 미정 아빠가 웃통을 벗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나를 향하여 실실 웃어댔다. 침대 밑에는 타월이나 신문지가 구겨져 있었다. 팬티가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방바닥에는 콧물 같은 것이 곳곳에 흘러있었다. 방안에는 밤꽃 향기가 스멀스멀 났다. 어떤 때는 미정 아빠가 손을 뻗어 나의 허벅지를 더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잽싸게 그 방을 뛰쳐나왔다.
때로 출애굽 하듯
액소더스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즈음에, 이미, 그곳을 탈출했어야 옳았다.
#눈총
#밤꽃향기
#엑소더스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