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부르던 노래

# 라벤더(Lavender: 우아하고 신비로운 보라색)

by Cha향기

내 기억은 자잘하여 뚜렷하지 않다. 열네 살 이전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도 오빠가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오빠가 노래를 부르던 때는 내가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쯤이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잔 심부름이나 하며 지내라고 했다. 그 집 사람들이 나를 순전히 식모처럼 부렸다. 그러려고 나를 데려다 키웠다. 그런 생각이 드니, 부모님이나 큰 어머니, 그리고 미정 엄마인 올케언니에게 어리광을 피웠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것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났다. 그런 나 자신이 측은했다. 스스로 창피하기도 했다. 어디다 대고, 뭘 믿고, 그런 아양을 부렸을까? 내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애당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려고 태어난 영혼이었나?




오빠가 점점 나를 여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그런 것에 대한 촉이 유난히 빨랐다. 오빠는 우아하고 신비로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오빠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내게 의미 있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오빠가 부르던 ‘제비’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칠암동 옥상에서 그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노래 가락이 칠암동 사방으로 스며드는 걸 지켜볼 수 있다면, 그런 날을 남몰래 기다리며 살았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언제나 모습 꿈속에 있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친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제비’ 가사 일부)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이 구절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입속에 있는 껌을 씹듯이, 나는 그 구절을 흥얼댔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 주겠다는 오빠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오는 듯했다.


내가 '나나무스꾸리'를 좋아하게 된 연유도 오빠가 불렀던 '제비' 노래 때문이었다. 나는 나나무스꾸리 노래를 끼고 살았다. 나나무스꾸리가 부르는 멕시코 민요, 라골론드리나: 제비는 내 뮤직 플레이 리스트 1위 곡이다.





오빠는 종종 옥상에 올라갔다. 오빠가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 내게 눈을 한 번 찡긋한다. 그러면 나는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하던 일을 두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오빠의 노랫소리는 멋지게 울려 퍼졌다. 우아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비봉산까지 펼쳐지곤 했다. 오빠가 옥상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큰 어머니가 올라왔다.


"우리 훌륭 대장, 우리의 기둥, 기둥이는 멋지다."

큰어머니는 오빠의 1호 팬이었다. 오빠의 노랫소리가 나면 2층에 세 들어 사는 이들도 몇몇 옥상으로 올라오곤 했다.


"어머머, 나 못 살아. 세상에 이렇게 멋지게 노래하는 남자가 바로 여기, 내 앞에 있네."

국선 언니는 방 안에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옥상에 올라오곤 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오빠는 달랑 한 곡만 불렀다. 사람들이 없는 날은, '아, 목동아'도 불렀다. 길 건너 남강중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오빠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노랫소리가 거기까진 들릴락 말락 하지만, 어떤 여학생은 운동장에서 두 팔을 벌리고 폴짝폴짝 뛰며 리액션했다.



그 시절 나는, 오빠한테 부르던 노래를 습관처럼 흥얼거렸다. 큰 어머니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가시나가 무슨 노래는 불러쌓노?
부정 탈라꼬?
그러믄 복 나간데이.

어서, 후딱, 청소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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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던-얘기-가슴에-가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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