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치(Peach: 따뜻하고 부드러운 오렌지빛)
두 마음이 싸우고 있다. 오빠라고 외치며 와락 달려가서 안겨 버릴까? 이대로 또다시 진주에서 떠나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친오빠일 리는 없다. 하다 못해 씨가 다르든지, 배가 다를 것 같다. 친오빠인 게 확실한 증거, 친자 확인하듯 형제 확인서 같은 걸 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아직은 오빠를 만나고 싶지 않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여전히 나는 진주라는 도시가 불편하다. 더군다나 칠암동이 나를 포근하게 맞아 주지 않는다.
오빠가 <저녁 6시, DJ> 카페로 가려고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을씨년스럽게도 나는 그 초록불 타이밍에 칠암동 슈퍼 쪽으로 건넜다. 오빠가 내 옷깃을 슬쩍 스치며 지나가는 건널목 위에서 더운 바람이 내 볼 쪽으로 불어왔다.
슈퍼 카운터에 청년이 앉아 있다. 슈퍼 문을 밀고 들어가니, 딸랑이 소리가 예전처럼 같은 데시벨로 들렸다. 카페 쪽을 힐끗 봤다. 오빠는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오빠는 내가 진주를 떠난 이후 늘 저렇게 아래만 내려다보며 살았을 것 같다. 아예 목이 그렇게 굳어버린 듯해 보인다. 눈을 들어 산을 보고, 하늘도 보면서 살지 못한 오빠가 참 안쓰럽다. 사랑의 베이스는 안쓰러움일 것이다. 오빠의 실루엣은 충분히 오빠의 동태를 살필 만했다. 국선 언니는, 모르긴 몰라도, 내가 진주에 왔다는 말을 오빠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국선 언니에게도 좋을 테니까. 여러 생각으로 안절부절못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 봤다.
카운터 옆에 행복수 화분이 있다. 잎이 반들거린다. 행복수 꼭대기에 연노랑 꽃 하나가 달랑 피어있다. 설마 내가 온 것을 환영하느라 핀 건 아닐 테고... 행복수에 꽃이 피다니. 오래 키워도 행복수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 행복수 꽃이 우담발화를 보는 듯했다. 오빠가 틈만 나면 그 잎을 닦았던 모양이다. 먼지 한 톨 앉을 새 없이 틈만 나면 행복수 이파리를 닦고 또 닦았나 보다. 예전에 행복수가 안채 마루 끄트머리에 있었다. 그게 여전히 살아 있을 리는 없다. 아마도 오빠가 그 이후에 행복수 화분을 새로 슈퍼에 들여놓은 모양이다.
내 백팩 안에 항상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오빠가 건네주었던 '미라보 다리'라는 시가 적힌 쪽지다. 꿈에서도 외울 수 있고, 눈감고도 외울 수 있는 시다. 쪽지를 행복수 잎사귀와 가지 사이에 살며시 꽂았다. 카운터에 있는 청년은 일부러 신경 쓰지 않은 척하는 눈치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냉장 진열대 문을 열고 커피 하나를 꺼냈다. 커피는 정신을 잡아주는데 더없는 것이다. 커피를 한 모금만 하면 덜 비틀거릴 수 있을 것 같다. 계산을 한 후에 정면 스툴 의자에 앉았다. 오빠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오빠가 카페에서 일어나면 나는 곧바로 슈퍼를 빠져나가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창을 유심히 내다봤다. 나는 도망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슈퍼 천정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매달려 있다. 그 스피커에서는 <제비>와 <아, 목동아>가 번갈아 가며 고즈넉하게 흘러나왔다. 흥얼거리며 그 노래를 따라 불러 봤다.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는가? 오빠가 부르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우리의 지난날이 회색빛으로 아른거린다. 가슴께가 아린다. 오빠가 카페에서 늦게 일어나면 나는 더 오래 슈퍼에 앉아 있을 작정이었다.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 맘이 진정되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저기요, 사장님은 언제쯤 올까요?”
“대중없어요. 어떤 때는 카페에서 잠들었다가 카페 문 닫을 때 돌아오기도 해요. 대체로 늦게 와요. 오늘도 좀 늦는다고 했어요.”
“아, 그렇군요.”
“직접 만나러 가시죠? 저기 카페에 앉아 계신 분이 사장님이에요. 보이잖아요. 전화해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
그러고 보니 온종일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삼각김밥 하나와 프랑크 소시지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생수 한 병도 챙겼다.
이 상황에서
진주를 떠나는 것이 맞는지
오빠를 제대로 만나야 하는 건지,
두 마음이
계속 시이소오처럼
저울질되고 있다.
▲ 대문 파스텔화(ⓒ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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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