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스 블루(Ice Blue: 차가운 느낌의 연한 파란색)
“미안하다. 엄마가 너거들 끝까지 못 챙기고.” 엄마가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린.”오빠가 엄마를 다독거렸다.
“너거 양부모가 약속을 안 지켰네. 분명히 공부도 시켜 준다 했고 고생 안 시킨다고 했는데... 청희 니가 그렇게 고생했다믄서? 내가 너거들에게 죽을죄를 졌구나.”
“됐어요. 이제.” 내가 엄마 말을 끊었다. 그때 오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많이 예뻐졌네. 여길 떠나길 잘했어. 결혼은 했지?”
난 그냥 고개만 저었다.
“어휴, 불쌍한 것, 한평생을 외롭게 혼자 살았구먼.” 엄마가 눈물 없이 울며 말했다. 우린 드라마에서처럼 부둥켜안고 울지 않았다. 엄마는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울어야 할 타이밍에 울지 않을뿐더러 웃어야 할 때도 웃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은 퍼석퍼석했다.
“내가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남은 눈물도 없데이.” 엄마는 그 한마디로 엄마의 일생을 대변했다. 엄마는 평생 울며 지냈나 보다. 더 이상 쥐어짜도 나올 눈물이 없다니.
“엄마가 얼마 전에 칠암동으로 아예 옮겨 오셨어. 옆 방이 엄마 방이야. 정이 엄마가 살았던 방 있잖아? 그 옆 방은 내 아지트야. 방음벽으로 시공했어. 노래 연습하려고.”
“노래?”
“응, 항상 노래 부르며 살았어.”
오빠 말을 듣는데 오빠가 불렀던 달달한 노래가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정말이지, 오빠처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조영남과 조용필을 한데 아울러서 빚어 놓은 듯한 목소리다. 오빠의 노래를 들으면 넋이 나갈 판이다. 오빠 노래만 들으면 흠뻑 빠지는 사람은 바로 국선 언니였다.
"창휘 최고다. 창휘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 오빠 노래를 들을 때마다 국선 언니는 엄지척을 해 보이곤 했었다. 그래서 국선 언니는 한평생을 창휘 오빠 바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인지, 오빠의 노랫소리를 좋아하는지, 때로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오빠는 아무 일 하지 않고 베짱이처럼 온종일 노래만 불러도 될 사람이다. 오빠도 자신의 노래에 위안을 받고 살았을 것이다.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자신이 빠져든다면 끝난 것이지. 노래는 오빠의 생명이며 뮤즈였나 보다. 오빠가 노래로 삶을 버텼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니 훅 오빠가 더 느껴졌다.
나는 얼른 일어나 그 방에서 나왔다. 오빠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나대는 내 심장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오빠 손을 잡아보고 싶고 오빠 품에 와락 안기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오빠 맘은 어떤 것일까? 오빠는 그냥 나를 동생으로만 여길까?
그냥 오빠랑 아무도 모르는 섬에 가서 단 둘이 살자고 할까? 그게 문제가 되려나? 서로 사랑하면 끝이지. 혼인 신고 같은 것은 안 하면 되겠지. 가족 간 결혼이 금지되는 이유는 유전적 질환 발병 가능성 때문이며, 이는 유전적 다양성 부족으로 열성 유전자가 발현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면 무자식으로 살면 상관없단 말이지. 다 늦은 나이지만 그렇게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원도 한도 없겠다.
엄마방 문을 열었다. 짐 보퉁이가 비루하게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그게 엄마가 한평생 살았던 짐 나부랭이라 겨우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충 해도 잘만 살던데 엄마는 왜 이리 지지리 궁상스럽게 살았을까? 금쪽같은 자식을 내던졌다면 자신이라도 잘 살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니 엄마에게 만정이 떨어졌다. 이 아이러니에서 벗어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야 할 사람이 엄마인데 그 엄마를 눈앞에 두고도 감격하지 못하는 모순된 감정을 마주하다니.
차라리 엄마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오빠를 영원히 사랑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엄마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엄마를 만나서 좋은 마음만큼 엄마가 싫었다. 사랑 반, 미움 반, 딱 반반이다. 그 양가감정이 무척 싫다. 그래도 엄마 방 미닫이 문을 열고 다시 자궁에 들어가기라도 하듯 그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앉아서 찬찬히 엄마의 짐 꾸러미를 째려봤다. 혼란스러운 맘으로 앉아 있는데 엄마와 오빠가 그 방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엄마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하며 사신 거예요?”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창휘야, 청희야 여기 앉아 봐라.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데이.”
오빠와 나는 엄마 양 옆에 앉았다. 한 귀퉁이에는 마시다가 남겨둔 막걸리병과 소주병이 있다.
“말을 하자면 이렇다. 나는 너거들 친엄마가 맞다. 지금은 탁창휘, 탁청희지만 원래는 너거 둘이는 성씨가 다르 데이.”
‘엥? 이건 또 무슨 황당무계한 말이지?’
내 존재 자체가 마구 흔들렸다. 한평생 보지 못하고 살았던 엄마를 만난 순간이 이런 말을 듣는 날일 줄이야. 내 인생이 끝까지 꼬이고 꼬인다. 친엄마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막상 엄마를 만났지만 왜 우릴 버렸느냐고 원망할 수도 없다. 응석을 부리거나 짜증도 낼 수 없다. 그렇게 하기엔 내 나이가 많이 들었고 엄마는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듯이 노쇠했다. 사춘기 아이도 아닌데 그런 원망이 또한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무튼, 이렇게 엄마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너거 둘이는 아버지가 다르데이. 사실 너거들 외에 큰 딸내미도 하나 더 있었어. 내 나이 스무 살도 안 되었을 때였데이. 아비 모르는 얼라를 낳고 보니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모르겠더라. 내 성씨를 따라 노 씨, 그 면소재지 이름을 따라 창선, 그렇게 노창선이라고 올려 부렸지. 간간이 잘 산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찾으라꼬 맘먹으면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찾으며 뭘 하겠노? 인연이 거기까지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기 편하지.”
성씨가 다른 아이 셋을 낳고 인생을 보낸 엄마였다니. 팔순의 엄마는 삶의 의욕이 1%도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진이빠질 대로 다 빠지고 목숨만 붙어 있는 듯했다. 엄마는 더 바라는 것도 없고 아무런 낙도 없어 보였다. 설령 그 딸이 당장 엄마 눈앞에 나타난다 해도 엄마는 멀뚱멀뚱 쳐다만 볼 것이다.
“여자의 한평생은 소설 몇 권은 쓸 수도 있는 거더라. 그럴 때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후련해지더라. 누구는 담배를 피우면 걱정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만, 나는 노래로 세월을 보냈데이.”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엄마가 노래를 흥얼거리자,
오빠가 화음을 잔잔히 넣으며
엄마를 껴안았다.
그래도 엄마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우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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