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카이 블루(Sky Blue:맑고 차분한 하늘색)
면민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다. 상품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양은솥, 냄비 세트, 소쿠리, 국자, 바가지 등이었다. 율도리 대표는 바로 노순희였다.
“우리 동네 이미자는 노순희제. 노순희 노래 실력 따라잡을 사람은 세상에 없제.” 율도리 사람들은 노순희가 1등이라고 의심 반푼어치 없이 믿고 있었다. 한편, 옆 동네 당항리 대표는 박삼식이었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았던 사람이라 다리를 약간 절었다. 노순희가 ‘여자의 일생’을 먼저 불렀다. 그다음에 이어, 박씨는 ‘황포 돛대’를 불렀다. 남자가 부르는 '황포 돛대'는 더욱 구슬프고 애절했다. 노순희는 박씨의 노래를 들을 때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박씨가 첫 소절만 불렀는데도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옴마야, 남자가 저렇기 간들어지겠끄럼 노래를 불르모 우리 여자들은 죽는데이.” 열광하는 관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박씨는 흔들림 없이 간주 부분까지 노래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간주가 나올 동안에는 잠시 의자에 앉았다.
“갈매기야, 울지 마라, 이 마음도 서럽다. 아 ~ 어디로 가는 배냐?” 박씨는 2절까지 잘 끝냈다. 노순희는 저녁노을에 비친 박씨 얼굴이 쓸쓸해 보여 맘이 싱숭생숭했다. 응원 분위기로 봐서는 박씨가 1등 감이었다. 그런데 최종심사 결과, 노순희가 1등이었다. 그녀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높이 들어 보이며 세리머니를 했다. 그리고 열화와 같은 함성에 못 이기는 듯이 앙코르 송으로 '여자의 일생' 2절을 불렀다.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어 가며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밤섬 이미자가 최고네. 그라모 우리 가만히 있으마 안 되제. 잔치를 벌여야제?” 사람들은 그렇게 입을 모았다.
율도리 사람들은 이튿날 잔치를 벌였다. 거기서 노순희는 또 한 번 ‘여자의 일생’을 불렀다. 그날 밤에 박삼식이 노순희 집으로 찾아왔다.
“노래 참 잘 부르던데요.” 박씨는 말끔한 정장차림이었다.
“그쪽이 더 잘하던 데요.” 노순희는 수줍은 듯이 대답했다.
“보고 싶어서 왔심더.” 박씨가 들이대며 말했다. 그러자 순희 모친은 반색하며 박씨를 귀한 손님처럼 안방으로 들였다.
“고맙심더. 고맙심더. 이런 고마울 데가 다 있나? 안으로 들어 오이소.”
“사실은 청혼할라꼬 왔심더, 순희씨 얘기는 다 알고 있심더.” 박씨는 바리톤 음색으로 톤을 내리깔며 차분히 말했다.
“옴마야, 그래예?” 순희 모친은 박씨에게 굽신거리기까지 했다.
박씨가 혼인을 서두르고 순희 모친이 합세하여 그 둘은 벼락치기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고 한 것은 순희 모친이었다.
“뭔 좋은 일 났다고 동네방네 떠벌리겠노? 그냥 살을 섞고 사는 기 부부제.”
박씨는 당항리를 떠나 율도리 순희 집으로 들어왔다. 순희가 시댁 어른들 때문에 맘고생할까 봐 박씨가 그런 결단을 내렸다.
박씨는 무골호인이었다. 그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렸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쿵작이 잘 맞았다. 둘은 서로 화음을 넣기까지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들에게 금방 아이가 생겼다. 아들이었다.
“저거 아부지 닮아서 인물이 훤합니더.”
“뭘, 자기 닮아서 오목조목 예쁘장하게 생겼구만.”
부부는 그런 아기를 보며 깨가 쏟아지는 나날을 보냈다.
“이름은 창휘로 하입시다.”
“맘대로 하이소.”
“창선에서 깃발 휘날릴 인물 났다 아입니꺼.”
“맞지요? 꿈만 같습니더. 당신은 제 인생 은인입니더.” 순희가 말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지요. 나 같은 놈이 이뿐 마누라 거느리고 살게 됐으니 복이 터진 거지요."라고 박씨가 말했다.
창휘가 돌이 되기 전이었다. 마을 고깃배가 먼바다로 나간다고 했다. 한몫을 단단히 챙기자며 마을 청년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때 박씨도 그 배를 타기로 했다.
“당신은 몸이 성치 않으니 그냥 농사일이나 살살하이소. 설마 우리 세 식구 못 묵고 살겠습니꺼? 고깃배는 아무래도 뭐시기 해서 지가 마음이 안 좋심더.”
“그래도 창휘를 위해서 돈을 좀 모아야지. 우리 창휘 큰 인물로 키울라믄.”
박씨는 창휘에게 몇 번이나 부비부비 하다가 배에 올랐다. 창휘도 박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가 되면서 멀쩡하던 하늘이 컴컴해졌다. 해송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파도가 급하게 몰려왔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노순희는 느닷없이 성난 바다를 보며 그녀 가슴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듯함을 느꼈다. 그녀의 육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져도 고깃배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부둣가 쪽으로 몰려갔다. 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늦은 밤이 되자 의기양양해야 할 고깃배가 탈진한 모습으로 밤바다 위로 미끄러지듯 돌아왔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순희도 창휘를 포대기로 업고 배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창휘 아부지, 창휘 아부지.”
배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에서 내렸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큰일을 겪고 온 사람들처럼 넋이 나간 듯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기다리던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했다. 달려가서 안기기도 했다. 그런데 끝까지 박씨가 보이지 않았다.
“창휘 아부지는요?”
“죄송합니더. 그렇게 됐심니더.”
배가 바람에 기우뚱하여 사람들이 바다로 다 쏟아졌는데 모두 배 난간을 잡고 다시 올라탔다. 그러나 다리가 성치 않은 박씨는 고깃배 쪽까지 헤엄칠 힘이 없었다. 아무리 손을 허우적대고 몸부림쳐도 소용없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박씨를 눈앞에서 뻔히 보고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박씨만 배에 다시 올라타지 못했다.
'세상에, 불쌍하고 불쌍한 사람, 창휘를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애를 썼을 텐데, 거센 파도를 이길 힘이 그에게 없었네.' 그런 생각을 하는 순희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순희는 울음도 나오지 않아 창휘만 으스러지게 부둥켜 안았다.
박씨는, 노순희와 어린 창휘를 두고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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