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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면?

- 돌아간 사람들, 남은 사람들 2

by Cha향기

연수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은 물론 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대학 강사, 학원 강사, 사업가 등등, 다양한 삶터에서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일정이 주어질지도 모른 채 부전공 연수는 시작됐다.

온종일 강의를 듣고 밤에는 과제 해결하느라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영문법, 음성학, 음운학, 영시 개론, 영미문학, 고대 영어 등등 영어 교육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때로는 원어민 수업과 교직 관련 특강도 들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시험이 있었다.

텅 빈 B4 용지를 받아 시험 보는 일이 고역이었다.

연수생들은 주말에 귀가하지 않고 시험공부나 과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먼 곳에 살았던 나는, 정작 주말마다 인천으로 돌아갔다.

교회 사모였으니 아무리 그래도 주일예배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주간 마지막 수업 끝나는 벨 소리와 함께 터미널로 달려가

인천행 막차를 타곤 했다.

인천에서도 일요일 저녁마다 순천행 막차에 겨우 몸을 싣곤 했다.

게다가 월요일마다 보는 시험 준비를 할 틈이 없어서 버스 안에서 공부했다.

고속버스 안 독서 전등을 켜고 책을 펼쳐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멀미가 도졌고 졸리기도 했다.

주말 동안에 자기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아서 공부하던 연수생 동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질릴 정도로 공부했다.

밥 먹는 시간 외에 대부분 공부로 보냈다.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사실, 나는 학구파가 아니다.

그러나 내 앞에 닥친 일은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고 해치우는 타입이다.

공부해야만 하는 일이 내게 펼쳐진 셈이었다.

그 해, 머리 싸매고 공부하며 7개월을 보냈다.


부전공 연수가 끝나는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함께 연수를 받았던 조 선생이 뒷짐을 지고 내게로 왔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꼭 임용되시기를 바랍니다."


'임용(任用)'이라는 말이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과연 교사로 임용될 수 있을까?

교사 임용은 그냥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게도 그런 날이 오려나?


조 선생은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이었다.

미발령 교사가 되어 지내다가 영어 부전공 연수를 함께 받은 분이다.

조 선생은 헤어지기 전에 내게 전해 주려고 접부채를 미리 마련했던 모양이다.

그 부채에 기막힌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부채에 그려진 그림과 글귀가 어우러지니 멋스러웠다.


'아하, 부채로 내게 응원의 바람을 보낸다는 의미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고생했던 기억은 훅 날아가고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 같았다.


'죽지상혼(竹紙相婚) 기자청풍(其子淸風)’


부채에 명언 글귀와 함께 적은 '임용(任用)'이란 큰 글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글자만 봐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열린 길에 내 땀을 보태니 교사 임용이로구나,라고 패러디해 봤다.


부채에 적힌 명언은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니
그 아들은 맑은 바람이구나.'라는 뜻이다.
[조 선생이 선물해 준 부채, 2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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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상혼

#기자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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