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없는 삶
#2022-12-10
#1. 다름
가끔 내가 가라앉아 어두운 심해에 들어가는날마다 글을 쓰곤 한다. 그렇게 쓰다보면 초고 이후에 다시 글을 수정한다던지, 누군가에게 더 잘 읽혀지기위해 수정하는 일은 드물곤 하다. 이것은 마치 퇴고할 수 없는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따금 오래전의 생각들을 돌이키며 지금을 보면 남들과 다른 삶을 처연하게 느낄때가 있다. 강제로 속하는 그룹이나 모임에서 가끔. 고등학교 이후부터 유수한 대학교와 이름만 들어도 알 수있는 기업들에 다니는 박사들의 모임이라던지, 방문차들린 서울 사람들의 삶을 볼때마다 그런것들을 느낀다. 삼삼오오나 유유상종이라고 했던 말들조차도 이제는 주위 친구나 지인들을 봐도 나와 다른 삶을 있다. 이는 삶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겠다.
#2. 과정
나의 30대의 중반의 삶은 창업과 회사라는 가치 아래 다른 삶을 살아내어지겠다. 나의 이십대에도 타인이 누려왔던걸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삼십대에도 같은 결이라니. 이내 내가 선택한 길이니 외롭다는 말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그래도 이제는 20대에 누려야할것들을 30대에 누리고, 아마 40대에는 30대에 누릴수 있는것들이겠지. 스스로 위로하는건 이것이 "느리다" 가 아니라 현재는 미래에 , 40대 이후에나 경험이나 고민해야하는것들을 당겨쓰는것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 일상의 외로움
밥좀 먹고가라는 어머니의, "아들아 너의 회사 직원들은 아마 다 부자가 되었을꺼야" 라는 말이 좋은 말이기도 하면서 이내 외롭다는 생각이 들고, 박사 학위에 등록하고자 했을 때 "병역특례하셨어요? 요즘 거의 보기 힘들어서요" 라고 하는 면접관 교수님의 말같은것들에 외로움을 느낀다.
#4. 청춘의 서사
한참 미래를 걱정한 20대에 중간에서, "우리는 지금 대학교 이름이 걸쳐진 옷하나에 당당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겠지만, 곧 이내 우리는 회사라는 명목하에 우리가 일년에 버는 숫자가 몇개인지에 자존심을 세우겠지. 그리곤 결국 우리는 결혼과 자식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을 고민하면서 어른이 되어갈꺼야."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와서는 지인들의 모임에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애기들과 아빠엄마들 사이에, 공감할 수 있는 대화거리란 늘 에너지를 소비하는 쪽이라 나가기 힘들어한다는건 비밀이겠다. 아주먼 미래에, 경험과 결론이 비슷해지는 우리가 될때가 오면, 그때는 웃으며 말할 수 있겠지. 먼저 혹은 나중에 겪는건 중요치않다고. 살다보니 삶은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결혼을 따듯한 사람이랑 하라고.
#5. 오늘날의 중력
지금은 하고싶은일과 해야하는일을 다해야한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이제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같은 주말에 덩그러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결국 누군가의 온기를 찾아 떠나는 외로운 동물일 뿐이겠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없고, 후회라는 단어는 삶을 어두운 곳으로 당기는 중력이 있기에, 그동안 최선이었고 발전했다고 생각하자. 오늘 같은 밤이, 괜스레 혼자 남겨진 밤이 있다고 생각하는 날.
#6. 서사의 결론
내가 누군가 삶에 출연하는 조연이라면, 나는 그 책의 도입부가 아닌 결말에 있었으면. 그래서 나와 당신들이 결론이 정합하기를. 그것은 욕심이겠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과정이길 원치않기에 당신이 나의 결론이며 그러기에 과정일것라고 생각해 결말짓는 나의 비겁함에는 용기를 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