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끝에는 늘 너가.
나의 천성은 서운할정도의 장난꾸러기에, 그렇게 자주 울어대는 울보같은 성격이야. 자주 알려주듯 나의 삶은 두꺼운 가면들속에서 하루가 지나가. 누군가에겐 밝고 다정하게 구는것도 나의 어느 지점이지만, 내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무표정하고 제대로 반응못하는 그런것도 있나봐. 그럴 땐 아 내가 편한다고 함부로 대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다시 마음과 얼굴을 고쳐 잡지만, 불안이 역력한 오늘날은 스프링처럼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아.
내가 그런순간이 되어버리면, 너는 귀신 같이 나한테 냉큼 다가와서, 다정해져. 그러면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나 스스로에겐 모자름과 나무람이 피어올라. 무언갈 해결해야하는 순간엔, 마음을 풀면, 일은 해결되지 않아서, 대책없이 기다려달라고 하고싶지만, 너도 너의 일정과 계획이 있는걸 내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 이내 침묵하게 돼. 그럭저럭 오늘 해야할일의 절반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오늘을 견뎌낸 마지막 시간엔, 역시나 주위엔 아무도 없지. 이런 얘기를 하면 할수록 너는 나를 걱정할테고, 무언갈 내놓으려고 할까봐 다시금 걱정되는 오늘이야.
나의 지금이 살아있음으로 인해, 나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끼는 지점에도, 누군가 나에게는 "이번달안에 모든 문제의 반을 해결해오세요", "A를 해결하면 B와 C는 어떻게할거에요?", "그 상황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힘들면 이야기 한다고 약속 했잖아요. 그게 너무 서운해요"
라고 말하는 누구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부 알지만, 이내 역겨울정도로 피곤하고 지겨운 오늘같은 날에도, 억지로라도 나에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어 조금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볼때마다. 이 지겨운 배려속의 반대편에 너가 있어. 삶의 주체가 가득 들어간 너가. 배려라는 단어가 진정한 의미를 찾은.
우리의 세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사람들은 왜 그래? 정말 그래? 원래 그래?" 라고 물어보지만, 우리안에서는 모든것들의 선택, 책임, 존중이 있어. 그래서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선 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책임지려고 하는지. 왜 우리의 이야기 앞에서는 어떤 문제는 가볍게, 어떤 문제는 침묵하는지도 안다고 생각해. 나도 너와 같으니까.
어떤 날은, 너무 고되고 지쳐서 우리의 하루를 마무리 하던 대화가 모자르다고 생각해. 너의 물음과 장난에 늘 대답하는 나였는데,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지도 못한 채 침묵하거나 잠에드는 나를 보면, 역시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못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예전엔 참, 마음이 힘들어 어떻게든 살아내야했던 나였다면, 요즘은 해결하기 위해 무수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나라, 참 옆에서는 그 두가지를 바라보고 견디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엔, 사업에 대해서 고민해. 생전 태어나 처음으로, 이제는 무엇인가가 되겠다. 이번 텀을 잘 넘기고 나면, 무언가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겐 찬란한 무언가가 있겠다라고 생각해. 물론, 실제가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힘듦에 사람들이 너에게 가서 마음을 풀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불안해져. 부정한 것들도 나의 몫인데, 너가 반쯤은 들고가는것 같아서. 그럴땐 참, 나도 사람들이 밉기도 해. 왜 엄한 사람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는지. 그럼에도 너의 마음엔 무엇이 있는지 알 것만 같아, 이내 침묵하게 돼. 나를 위해서 한거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그 찬란함의 시작과 중간에는 우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무섭고, 힘들고 아프고 도망칠때도 있겠지만, 그럴때마다 서로를 의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