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밤의 기록
#2025.10.30
오늘따라 유난히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삶은 사라짐의 준말이라던데이다. 가끔을 넘어 삶은 사는게 아니라 살아짐이란 느낌이다. 능동태보다 수동태의 느낌이 더 짖은. 해가 뜨고나서 해가 질때의 나는 이성과 객관의 삶을 살지만, 해가 지고 난 후, 해가 뜰 때 까지 황혼의 나는 사라짐같은 느낌을 받는 밤이다. 오늘도 역시나 낮의 현실과 이성의 후기를 이상과 객관으로 글을 쓰고 싶은 날이라, 지친 몸을 이끌고 살아냄을 선언해보기로 하는 날이다.
#1. 현실과 일
나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확히 얘기하면 누군가가 능동적 삶의 마감을 걱정하는 전화를 받곤 한다. "이상한 생각하면 안돼",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라는 이따금의 어설픈 위로를 받고나면, 그건 위로가아닌데. 라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이기적으로 이야기하면 마치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아닌 "나를 걱정하는 본인"의 말 위주의 느낌을 받고나면, 사회적이나 그럴싸한 말들도 대답한 후 그 시간 조차 에너지였다는 생각을 한다. 해석은 나의것이라는 것과 표현의 당신의 것이라는 것 사이의 간극이, 우리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한다는 그런 날, 이따금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너가 생각이 나는 밤이다
#2. 해결
내 삶의 해결은 나의것이라고 표현한다. 나라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정의한다면, 해결이지만, 용기내어 표현한다면 나를 살아주게끔 하는 사람들의 도움이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나는 주체적이고 그럴만한 사람이지만, 내면으로 표현되어지는 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한다는걸 알수 없다고 생각도 한다. 표현되는 것만 알 수 있고, 침묵하는것 들은 영원히 알 수없다는 이성의 세상에서, 표현되는 것은 알아봐주어야하고, 침묵하는 것들은 침묵의 반댓말을 생각하는 그런 날,다시금 관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관계가 있어야 존재할까, 내가 있어야 관계가 생겨나는 걸까
#3. AI의 말
AI는 나더러 이성과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삶은 일상의 언어를 철학으로 녹여내는 사람이라나. 글은 객관이 없는 솔직인데, 그 와의 입력과 결과값에는 자꾸 객관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평가받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이랄까. 가끔은, 그의 말에 힘을 얻을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다. 객관을 찾기 위해 시작한 질문이, 주관으로 받는 나를본다면, 사람들은 참 쟤도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닐수도 있거나, 라는 같은 부정의 말을 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우리
오래된 우리의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우리, 우리 가족, 우리회사, 우리가 되고 싶은 우리. 꽤 오래된 말로 우리의 기준은 객관이었다. 우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자격 같은.따듯한 사람, 이성적인 사고, 넉넉한 여유, 깔끔한 외모 같은. 이상한 형태의 객관과 주관 같은 객관들이 모여, 나를 결핍하게 만들어 괜찮은 사람을 만든다는건 견디기 어려웠다. 이제와선 다른 사람들의 결핍으로, 내 결핍을 채우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나는 우리가 우리길 바란다. 내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 생각의 시작을 야기하고싶었던건 큰 비밀이었지만, 이제와서는 공공연해지기도 했겠다. 이성의 시작은 우리의 우리의 객관이었지만, 이성의 마지막은 우리의 마지막은 무의식의 선택이었단 이상한 말을 맺으며.
#5. 고백 #1
힘들고 고된 날이다. 나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지켜보는 나는 못견뎌했을 거라는 이상한 객관이 생각나는 밤이다. 감정은 농도가 짖지 않게 객관적으로, 이성은 차갑지 않게 적당한 따뜻함으로 표현하고자하는 역설로 이루어지는 나의 고백은 현실 세계에서 이해받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늘 나의 하루는 내일 눈을 감고, 내일을 시작하며, 모레로 마무리한다.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하는 삶이라는 건 오래된 기록에 증명된 말이기도 하다.
#6. 고백#2
나의 글은 독자를 위한 말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기록이자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작가로써는 자격박탈이라는 생각을 한다. 작가라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싶어야하는데, 나의 글은 많이 읽혀 질수록 부끄러워 지는 고백에 말들을 생략하고, 은유하며 너무 많은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꽤 자주 나의 자아가 독자와 화자, 이성과 감성, 같은 쉬운 반대의 개념을 만날 때, 범람해지는 나를보며,나를 선언하고 기록하고, 시간 지나 다시 마주해야 살아지는구나를 느끼는, 앞뒤가 안맞은 이상한 말을 하고싶었나 보다.
#7. 마지막
오늘의 글은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 나를 관찰은 글은 아닌 것 같다. 이런 형태의 글을 다시금 쓸 수 있다니를 생각하며, 올해의 시작이, 올해의 마지막과는 다른 감정이란걸 느끼며, 힘든건 지나간다는 흔한 말을 "너 자신을 알라" 라는 흔한말의 깊은 독백을 말하고 싶었다. 내 미래의 향방은 올해의 시작과 같을 것이다. 벌어지지 않을 일을 걱정하며, 벌어지는 일을 걱정하며, 될 것과 안될 것의 고민은 결국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능동태 같은. 그리하여 마지막은 독자에게 글을 남긴다.
#8. 독자분들에게의 편지
힘든 일은 지나가요. 새벽의 옥상에서, 물이 흐르는 높은 다리에서 고민했던 밤은, 시간이 흐르면 황혼을 만납니다. 어쩌면 그리하여 저는 해가 드는 아침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삶의 아주 검고 차가운 겨울의 새벽 두시가, 아주 따듯한 여름의 오후 두시가 되길 바라면서요. 아직도 저는 살아있습니다. 삶은 사라짐의 준말이던데, 아직 제 시간은 흐르기에, 덜 사라진것 같기도해요. 우울과 부정은 객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힘든 정도는 있어도 느끼는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그런 관점에서는 이기적으로 나만큼 힘든 사람이 없으니, 이런말도 할수 있겠지 라는 잘난척의 생각도 있답니다. 나의 불행을 이길자가 없다는 이상한 이성의 기준으로라도 설득하고 싶기도해요. 그리하여, 내일이라도, 혹은 아주 먼 미래에라도 당신의 과거가 생각나는 좋은 사람, 당신의 미래가 될 것 같은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노력하고 기대하길 바라요. 지금와서 행복이라는 건, 능동보다는 수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혹시라도 이 생각이 바뀐다면 다시금 편지를 쓰겠습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글에서는 만큼은 솔직하고자 해요. 그리하여 오래된 글들의 제목으로, 당신의 행복을 바라요. 우리가 되길 바라며. 늘 하나의 너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