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의 좌충우돌 갱년기 극복기
갱년기 감정기복,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일과 목표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길을 선택했던,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시간이 길었을 것이고, 혼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사람이라면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거쳐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갱년기가 찾아옵니다.
나는 2017년경부터 수면장애, 체중 증가, 감정 기복 등으로 고생하다가 2019년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도 갱년기가 찾아왔다' https://brunch.co.kr/@mrsgang/1 편에 자세히 실려있습니다.) 호르몬제 복용 후 증상이 호전되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는데, 증상이 나아지자 나도 모르게 호르몬제를 제대로 복용하지 않고 자주 거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야구장에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별것 아닌 일로 저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사춘기라 예민할 때이고 학업에 대한 부담이 많을 시기였으니, 평소 같았으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엄청난 화를 느꼈습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관중석에서 사람들은 치킨을 먹으며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큰아들의 짜증 섞인 한마디가 마치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처럼,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이 아이는 왜 나한테 신경질을 내는 거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 순간, 내 안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있던 음식들은 더 이상 맛있어 보이지 않았고, 응원가 소리는 소음으로 들렸습니다. 결국,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너 엄마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분이 풀리지 않아 들고 있던 백팩을 바닥에 패대기쳤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발로까지 밟아버렸습니다. 순간 야구장의 환호성이 멈춘 것만 같았고, 가족들의 얼굴은 충격으로 굳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큰아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타오르던 분노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가족들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 자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참담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며칠째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호르몬을 복용한 후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평소와 다르게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나의 마지막 호르몬 복용 시간이 언제였는지 먼저 확인하게 되었고, 대개는 호르몬 복용을 하루나 이틀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입니다. 아이가 바로 사과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 저를 깨우쳐 준 큰아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저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갱년기에 이러한 상황을 겪고 당황합니다. 이 시기에는 몸이 변하고, 마음도 흔들립니다. 예전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에도 서운함이 커지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상처받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지?”
“나만 이상한 걸까?”
스스로를 자꾸 탓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결코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당신은 여전히 소중한 존재이고, 단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단계로 접어든 것뿐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혹은 일과 주변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이 배고플까 걱정하고,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고, 직장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애쓰며 늘 "나"는 뒷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갱년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있던 ‘나’의 개념이 점점 좁아집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자랐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며, 더 이상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옅어지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체중 증가나 피부 변화, 주름, 모발 변화 등 외모의 변화를 마주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제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고, 나 자신이 외롭고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자연이 당신에게 말하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너를 돌볼 차례야."
"이제는 네가 너를 사랑해야 해."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일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것이 잘못된 게 아니듯,
이제부터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도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닙니다.
이전에는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옥시토신은 ‘사랑 호르몬’, ‘유대감 호르몬’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호르몬이 많아지면, 우리는 타인을 나처럼 여기게 됩니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배우자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고, 부모님이 힘들면 내가 더 힘든 것처럼 마음이 쓰였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일을 조금 더 하더라도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면 보람으로 여겼습니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들을 ‘나의 일부’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갱년기가 되면서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과 함께 옥시토신도 감소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아의 범위가 다시 ‘나’ 중심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가족과 친구, 동료까지도 내 감정의 일부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점점 ‘나’의 테두리가 좁아지면서, 같은 말과 행동에도 서운함이 커지고, 예전에는 참을 수 있었던 일에도 화가 나고, 때때로 외로움이 커지는 것입니다.
갱년기가 되면, 같은 상황에서도 감정이 예전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전에는 “괜찮아, 내가 참으면 되지”라고 넘겼던 일들이 이제는 쉽게 화가 나고, 서운해지고,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이 아닌, ‘나’가 중심이 되는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가족과 주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나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세요.
"나는 지금 화가 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이건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마세요.
"이 화는 잠시 머물다 갈 감정일 뿐이야."
"내가 이 감정에 빠져들면, 결국 상처받는 건 나야."
✔ 나 자신을 다독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혼잣말이라도 좋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름을 불러주세요.
"○○야, 괜찮아."
"지금 힘들지만, 이건 지나갈 거야."
마치 사랑하는 아이를 다독이듯,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갱년기 이후에도 옥시토신을 자연스럽게 분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 스킨십 늘리기
가족, 친구, 반려동물과의 포옹이나 손잡기는 옥시토신을 증가시킵니다.
✔ 새로운 유대감 형성하기
커뮤니티 활동, 취미 모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보세요.
소속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옥시토신이 활성화됩니다.
✔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 스스로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하기
스스로를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하는 연습을 하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왔고, 너무 오래 타인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해야 합니다.
✔ 혼자 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거나 명상 센터에서 배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갱년기로 인한 정서적 불안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명상이 효과적입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MSC(Mindful Self-Compassion) 명상과 하트스마일 명상이 있습니다. MSC 명상은 자기 연민을 키우며 감정을 인정하고 다독이는 연습을 통해 감정 기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트스마일 명상은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간단한 동작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면 갱년기의 감정 기복을 보다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건강한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전문가와 상담 후 반드시 필요하다면 약물의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돌볼 자격이 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많은 분들이 갱년기를 ‘삶의 내리막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갱년기는 ‘이제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 지금까지 충분히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이나 동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말해주세요.
“엄마도 이제 너희들로부터 독립해서,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해.”
“이건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갱년기는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