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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Oct 25. 2024

두번째 마라톤이라는 이름의 벽

마라톤

“마라톤”은 풀코스를 말한다.


세계 인구 중 일생동안 한번 이상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이 1% 미만이라고 한다. 풀코스 골인지점에 들어가는 순간 달리기 상위 1%가 되는 것이다.



그럼 두번 완주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정확히 그런 통계가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뉴욕마라톤 기본정보를 보면 이렇다.



해마다 5만명이 뉴욕마라톤을 뛰는데 그 중 약 65%가 생애 첫 마라톤이라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35%만이 두번째 이상의 마라톤 경험인것이다.



다음해가 되면 다시 65%의 생애 첫 마라톤 러너들이 출발선에 선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계산하면 안되지만, 작년에 생애 첫 마라톤을 뛰었던 사람 중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마라톤이 뉴욕마라톤 하나는 아니므로, 다른 대회로 옮겨가 두번째 세번째 도전을 이어갈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는 생애 첫 마라토너가 절반을 넘는다.




단순히 내 주변만 봐도 첫번째 마라톤을 완주 한 후,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않는 러너들이 절반은 된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많은 경우는 연속 2년 풀마라톤 훈련을 소화해내기에 시간과 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라톤 당일날이야 뭐 몇시간 뛰면 되는거지만, 훈련을 16주 해야하는데다가, 거기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직장과의 일정조절도 해야하고, 11월인 뉴욕마라톤 일정상 여름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훈련에 매진해야하는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다른 경우로는 첫 마라톤때 크게 다친 경우가 있다. 더러는 수술을 하기도 하고, 재활치료를 받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달리기 리듬이 깨져버리면 좀처럼 다시 달리기가 어려워진다.

마라톤 한번 뛰어봤으니 이제 됐다는 마음도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아예 다른 종목으로 가거나 운동 자체에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다치지도 않았고, 딱히 여름 장기 휴가를 즐기는 편도 아닌데다 시간도 자유로운 프리랜서 직종인 사람들 중에서도 첫 완주 후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이게 가장 골이 깊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마라톤 블루



생애 첫 마라톤은 모든것이 좋았다. 훈련은 힘들었지만 한주 한주 훈련을 소화할때마다 내가 평생 달려본적이 없는 장거리를 달리고, 날이 갈수록 스피드도 올라갔다. 이럴땐 훈련이 고된줄도 모르고 밤에 잠자리에 들때면 내일 또 달릴 생각에 신나기까지 했다.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어디 듣도보도 못했던 인대가 아프기도 했지만 모든것은 대회날에 맞춰 기적적으로 다 나았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이 바로 이거였다.

뭐든 처음할때는 도박조차도 척척 맞아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생애 첫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출발선 앞에서 지금껏 해온 고생을 생각하며 눈물도 흘리고, 백만명이 넘는다는 구경꾼의 환호를 받으며 뉴욕 시내를 달리던 날.

처음이었기에 미숙했지만 처음이라 더 용감했던 생애 첫 마라톤은

초반에 너무 속도를 내지 말걸 그랬어

업힐 나오기 전에 에너지젤을 먹었어야했어

마지막에 겁먹지 말고 좀더 속도를 낼걸 그랬어

등등

많는 아쉬움을 남기고

“내년에 여기로 꼭 다시 돌아오자! 그땐 꼭 더 잘하자!”는 다짐만큼 빛나는 메달을 목에 건다.




첫 완주자에게만 온다는 마라톤블루는 그후 일주일정도 지나면 온다.

각종 마라톤 경기후 행사, 메달 각인, 완주자 공식굿즈 쇼핑에, 뉴욕시내 곳곳에서 메달을 보여주면 받을 수 있는 할인혜택등이 끝나고 몸도 슬슬 회복이 되면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뭐?



마라톤 한번 완주하고 나면 인생이 싹 바뀌고 완전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 있을줄 알았는데, 당연한거지만 세상은 그대로고 나도 그냥 그대로다. 여전히 집세는 내야하고, 물가는 오르고, 이나라나 저나라나 정치는 뭐같고, 때되면 배가 고프고, 친구 누구누구는 시집도 잘 갔는데 직장에서도 승승장구를 해...?

그 반면에 나는? 이름도 쩌렁하게 울리는 월드 메이저 마라톤 중에서도 최고 중에 최고라는 뉴욕시티 마라톤 완주자다 이것이야! 공허한 타이틀이 하나 붙었을 뿐, 마라톤 완주자라고 해서 갑자기 연봉이 막 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은행이 대출금리를 나한테만 파격적으로 내려준다거나 하는 대우도 없이 그냥 "그래서, 뭐요??" 상태일 뿐이다...



뉴욕시내 전역에 펄럭이던 TCS NEW YORK CITY MARATHON 깃발도 다 철거될 즈음이 되면

16주동안 때론 목에서 피맛이 나도록 달리고 훈련했던게 무엇을 위해서였나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내게 남은건 파랗게 멍든 발톱과 뉴욕마라톤이라고 써진 티셔츠, 그리고 메달. 그 외엔 달라진게 없다. 메달이라고 뭐 굉장히 다른것도 아니다. 그냥 여타 대회에서 받는 메달이랑 똑같다.

공허했다.

열심히 준비했던 무언가가 끝나기는 했는데,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해온 모든 노력들은 합격증이라던가, 승진이라던가, 상금이라던가 무슨 보상을 남기고 갔는데 이건 그런것 조차 없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이력서에라도 쓸 수 있을란가 모르겠다. 마라톤 완주자라고...



공허했고, 우울했다.



이 수렁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시는 달리기를 못하게 된다는걸 알았기에 나는 쉬지않고 하프마라톤을 뛰었고, 비시즌도 시즌처럼 마일리지를 떨어트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일년 내내. 




두번째 라는 이름의 벽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연초부터 불운이 겹쳤다.

천식이 심해졌고, 교통사고를 당했고, 갱년기가 일찍 오는 집안내력상 체질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달리기 구력이 한해 분량 더 쌓인만큼 달리기로 인한 부상은 거의 없었지만 올해는 내과적으로 무너져내린 한해였다. 16주 훈련을 하는 사이 천식발작이 두번 있었고,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한달 이상은 하는 내 특징상 거의 절반의 훈련기간을 온전치 못한 기관지로 뛰었다.



페이스는 속절없이 내려갔고, 출전하는 대회마다 기록을 갱신했던 작년과는 천지차이로 매번 최악의 기록을 새로 써 나갔다.



대회를 3주 앞두고 밤에 한시간마다 깨어 호흡기 치료기를 써야할정도로 천식 상태가 나빠졌고, 일주일동안 1km도 뛰지 않았다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정도면 마라톤을 뛸 때가 아니다. 기권하자! 와,

아니다! 훈련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어도 1년의 경험치가 늘어난만큼 충분히 완주 가능하다! 가

하루에도 수백번 엎치락 뒤치락 하는 머릿 속.

잠이 올 리 없다.



수면이 부족한 만큼 회복은 더뎌지고,

생각처럼 올라오지 않는 컨디션에 조바심은 더해가고,

그래서 더더욱 잠을 못자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포기하고 내년에 더 잘 준비해서 뛸까?

어차피 올해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도 못했고, 작년보다 나쁜 기록이 나오면 왠지 그대로 해마다 점점 더 나빠지는 우하향이 시작될것만 같아 불안하다.

내년엔 식단도 같이 잘 해서, 9월부터 천식 관리도 해서...



하루에도 수십번 [기권] 생각이 들고,

완주를 못하는 악몽을 꾸고,

모르는 길도 아닌 이미 겪어본 고난의 42.195km를 다시 처음부터 달린다고 생각하니 그냥 좀... 귀찮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 고생을 해서 완주를 해도 결국 나에게 남는것은 티셔츠와 메달 한개. 그리고 "그래서. 뭐요?" 상태 뿐이라는걸 이미 알고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라는 이름의 벽을 깨는
단 하나의 방법



그래서 나는 왜 뉴욕시티 마라톤 5만명의 주자 중 65%가 쌔삥 마라토너인것인지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첫번째"보다 몇배는 더 힘든것이 "두번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번째를 넘지 못하면 당연히 세번째, 네번째는 오지 않는다.



알고있는 코스, 이미 맛본 고통, 1년만큼 몸이 늙었다는 불안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지난번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차곡차곡 쌓인 두번째라는 이름의 벽을 깨트리지 못하면 아마도 여기서 영원히 달리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수많은 달리기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할 수 있다. 할 것이다를 반복한다.



마라톤 올해만 있는거 아니고, 뉴욕마라톤 말고도 대회는 수도없이 많은데

꼭 올해 대회를 뛰어야만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것이 나의 두번째라는 이름의 벽이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은 깨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이 벽 앞에 갇히게 될 것이기에.

그래서 달린다고.



그렇게 답하고싶다.



두번째 마라톤이라는 벽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생애 첫 마라톤은 오히려 쉬운편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진짜 고통은 두번째에 오는거였다.

이 벽을 깨는 방법은, 오직 하나.

뛰는것.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나는 할 수 있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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