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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n 15. 2022

여자만 뛰는 대회가 있다고? NYRR Mini 10K

뉴욕 마라톤으로 가는길 <네번째 대회> 미니10K

뉴욕시티 마라톤 참가권을 얻기 위해 9번의 대회참여와 1번의 자원봉사를 수행하는 9+1 챌린지. 네번째 대회로 참여한 Mini 10K 대회 참여후기입니다.


NYRR의 모든 대회는 사연과 스토리가 있다. 그 중에서 이번달에 참여한 미니10K는 "여자만" 뛰는 대회라는 특별한 규정이 있다. 사실 규정이라기 보다는 대회의 슬로건일 뿐, 실제로는 남자 러너들도 많이 뛰었다. 

특히 올해는 50주년을 맞이해 더욱 의미깊었던 이 대회. 세계에서 최초로 "Women only"로 기획된 달리기 대회였단 점에서 의미깊다. 



성차별,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 등 "차별"을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미국인이지만 의외로 이 평등의 역사는 짧다. 노예해방이 1863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부임한것이 1981년이니 말이다. 

지금은 성별이나 나이, 인종을 아예 묻지도 않는 사회가 되었지만 놀랍게도 불과 6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여자가 마라톤을 뛸 수 없었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을 최초로 완주한 여성, 캐서린 스위처와 그녀를 저지하는 남성 참여자들


세계 6대 마라톤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참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여자가 풀 마라톤을 뛰면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고 마라톤은 남자들만의 스포츠로 여겨졌다. 여자들은 성별을 숨기고 남장을 하고 참가하곤 했다. 하지만 캐서린 스위처는 당당히 여성의 모습 그대로 대회에 참여했다. 도중에 남성 참여자들과 대회 관계자들의 저지를 받았지만 꿋꿋이 완주하여 처음으로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여성이 되었다. 

1967년. 불과 55년전 일이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였던 뉴욕은 5년 후인 1972년 [ Women only] 대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세계 최초 여성 장거리 달리기 대회 <크레이지 렉스 미니 10K> 포스터


크레이지 렉스라니...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처럼, 매우 빨리 달리는 다리 라는 뜻인가 했더니 존슨즈에서 나오는 다리 제모제 이름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것에는 광고가 따라오는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이기 때문에 (;;) 제모제 회사의 후원으로 뉴욕 로드러너스 (현재의 NYRR)은 여성 전용 대회를 기획하게 된다. 

여러모로 의외인것 투성이인 이 대회는 미니10K라는 이름도 의외의 의미가 있었는데, 마라톤을 축소해서 뛴다는 뜻도 아니고 10Km를 조금 짧게 해서 뛴다는 뜻도 아니고 무려 "미니스커트" 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물론 이 기념할만한 첫 대회에 캐서린 스위처도 참가했고, 50번째 대회를 기념하며.....



첫 대회때 입었던 대회복을 입고 온 (배번 2번) 캐서린 스위처와 당시 참가자들. 그리고 올림픽 패럴림픽 선수들.


첫 대회때 지급되었던 대회복을 입고 다시한번 출발선에 섰다. 스포츠 채널에서 실시간 중계방송을 할 정도로 의미깊은 대회로 자리매김한 이 대회에는 올림픽 선수들도 해마다 참가한다. 올해는 1회 대회 참가자 할머니들과 올림픽 선수들, 패럴림픽 선수들을 포함해 8천여명이 달렸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저 할머니들이 사진만 찍고 가는줄 알았는데 진짜로 뛰었다는것. 여전히 젊고 강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고로 1972년에 1회였는데 2022년에 51회가 아닌 50회 대회인 이유는 2020년에 팬데믹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이 대회는 센트럴파크에서 열리지만 첫 1마일 정도를 도로에서 뛴 후 공원으로 들어간다. 평평하고 곧은 도로를 뛰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는데, 공원으로 들어가자마자 크고 작은 언덕이 반복되는것이 센트럴파크의 특징... 다행히도(?) 깎아지른듯한 경사도와 길이로 악명높은 할렘힐이 현재 공사중이라 코스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회날 날씨는 크게 덥지도 않았고 적당히 흐려서 좋았다. 게다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센트럴파크답게 나무가 크고 우거져서 거의 대부분의 구간이 그늘이었다. 땡볕으로 나가서 뛰는 구간이 거의 없었던것 같다. 땀도 많이 흘리지 않은것 같아서 급수대를 몇번이나 그냥 지나쳤는데 코스 중간에서 갑자기 살수차로 물을 막 뿌려주는걸 보고 정신이 퍼뜩 들어서 다음 급수대에서 물을 한잔 받아 마시고 이온캔디도 먹었다. 매번 급수대에서 물을 받아서 한두모금씩 축이듯 마셔야하는데 한번에 한잔을 다 마셔버리니 약간 체하는(?) 느낌이 든달까... 제대로 물이 내려가지 않고 목 아래에 걸려있는것 같아서 잠시 걸으며 물을 소화시켰는데 역시나 피니쉬 하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게 늘 억울한 포인트다. 

'그때 물만 안 마셨어도!!!' 



초창기 대회는 Women only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슬로건일뿐 남자라고 해서 참가를 못하거나, 50년전 캐서린 스위처처럼 다른 참가자에게 저지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도 코스를 뛰면서 남자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자들은 대부분 여자였고, 남자들은 가족이나 친구, 자기들이 속한 런클럽을 응원하러 많이 나와있었다.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남자였다. 보통 10k 대회를 가면 응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번대회는 유난히 많았다. 각 런클럽에서도 여자 멤버들은 거의 다 출전시키고 남자멤버들이 응원을 하러 나오는것으로 나름의 참가를 하는 형식이었다. 

여자 마라톤의 의미를 새기기 위한 대회라고 해서 여자들만 참가하고 남자들은 '내 알 바 아니다' 하는게 아니라 "응원도 마라톤이다" 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다같이 즐긴 대회라서 더 의미깊지 않았나 싶다.






골인 하고 받은 메달과 꽃. Mini10K는 NYRR 대회 중 유일하게 꽃을 주는 대회다. 

메달은 보통 하프마라톤부터 나오는데, 대회가 특별한 만큼 10K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메달이 나온다. NYRR의 다른 대회들이 그러하듯 각 대회가 가지는 의미와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러너들이 많다. 이 대회는 배에 다는 번호표 외에 등에 다는 표도 있었는데 [나는 이 대회를 OO번 완주했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라는 문구가 있어서 자기의 완주 횟수를 적어서 달고 뛰는 주자들이 많았다. 내가 달리면서 본 사람 중에는 32번이라고 적힌 할머니가 있었는데 더없이 강하고 멋져보였다. 



그렇게 나는 이 대회를 1번 완주했다. 

내 인생에서 6번의 대회를 뛰었고,

4번째 NYRR 대회를 마쳤다.

 



9+1 챌린지 네번째 대회에 초록불이 켜지고, 2023 뉴욕시티 마라톤을 향해 또 한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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