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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ug 30. 2022

내가 할렘에 오다니! NYRR 할렘 5K

뉴욕 마라톤으로 가는길 <여섯번째 대회> 퍼시 서톤 5K

뉴욕시티 마라톤 참가권을 얻기 위해 9번의 대회참여와 1번의 자원봉사를 수행하는 9+1 챌린지. 여섯번째 대회로 참여한 Percy Sutton 5K 대회 참여후기입니다.



8월 12일부터 21일까지는 "할렘 위크"라고 해서 할렘에서 여러가지 행사가 열리는 기념주간이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살고싶어하는 동네, 소위 "힙"한 동네 중 하나로 꼽히지만 한 세대 전에 뉴욕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할렘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악명높은 슬럼이었다. 



내가 바로 그 한세대 전에 뉴욕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할렘이 조금씩 광명(?)을 찾기 시작하던 시기에 뉴욕에 왔다. 할렘이 뜬다, 이제는 할렘이 힙하다 그런 말은 조금씩 들려왔지만 여전히 할렘은 무서운 곳이었고 어쩌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어두운 시간에 할렘 근처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여전히 할렘은 험한곳이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집세도 저렴했기 때문에 내가 맨 처음 뉴욕에 와서 살았던 곳이 바로 할렘과 어퍼웨스트의 경계지점이었다. 그리고 거의 10년만에 바로 그 '할렘'에 달리기를 하러 왔다. 할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한세대 전 사람에겐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내가 할렘에 '일부러' 오는 날이 오다니.






NYRR의 대회는 사람의 이름을 딴 대회가 많은데 이번 Percy Sutton은 21대 맨하탄 프레지던트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의 구청장) 의 이름을 붙였다. 할렘 출신으로 할렘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였던 정치가였다. 퍼시서톤의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NYRR과 가장 관련이 깊은것이 바로 뉴욕시티 마라톤의 코스를 오늘날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점이 꼽힌다. 현재 뉴욕시티 마라톤 코스는 

스테튼 아일랜드에서 출발해 브루클린을 거쳐 퀸즈로 갔다가 브롱스를 살짝 지나 맨하탄으로 들어가는, 뉴욕시를 구성하는 5개의 구를 전부 통과하는 코스로 되어있다는 점이 자랑이다. 바로 이 코스를 만드는데 깊게 관여한것이 퍼시서톤이다. 그래서 NYRR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해마다 8월 할렘위크에 그의 이름을 붙인 5K 대회를 개최한다. 바로 그의 고향인 할렘에서 말이다.




8월이 되면서 대회복이 반팔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1월에 9+1을 시작해 긴팔티, 반팔티, 싱글렛을 거쳐 다시 반팔티...



그러고 보니 5K대회는 처음이다. 다른 개인적인 일들도 많았고, 이상하게 달릴 기분이 나지 않는 7,8월을 거치다보니 정말 준비없이 대회날을 맞이했다. 코스 맵도 하루 전에 확인했을 정도다. 그것도 별로 볼 생각도 없이 있다가 우연히 달리기 친구가 "할렘은 코스가 엄청나게 경사져서 힘들지" 라고 해서 부랴부랴 찾아본것이다. 



6월에 10K 대회를 일주일 간격으로 두번 뛰고 나니 건방져져서, 경사가 심해봐야 5K인데 그걸 못뛰겠나 싶은 마음으로 아침도 안먹고 할렘으로 향했다. 내가 일주일에 세번씩 뛰는 우리 동네 공원도 5k이고 중간에 언덕도 있으니 뭐 그런 마음으로 뛰면 되겠거니 하고 갔다.



NYRR 대회를 가면 늘 있는 장내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언제 들어도 설레는 출발 뿔피리 소리와 함께 앞에서부터 착착 출발,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첫번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할렘은 코스가 엄청나게 경사져서 힘들다"던 말이 무색하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출발 직후이기도 했고, 대회 버프도 받아서 오히려 속도가 평소보다 더 나올 정도였다. 할렘 별거 아니네 하며 반환점을 돌아 이제는 내리막이다. 내리막을 끝까지 달리면 벌써 전체 거리의 반이나 다 뛴 셈이니 5K 대회 꿀이네... 하는 찰나, 눈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절벽이었다.



길게 왕복하는 첫번째 언덕만 보고, 짧고 급격하게 올라가는 두번째 언덕을 생각하지 못한것이다. 그 언덕이 얼마나 가팔랐느냐면 핸드사이클 주자들은 아예 올라가지도 못하고 길가에 서있었을 정도였다. 겨울에 눈 오면 이건 사람이 올라가지도 못한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꾸역꾸역 뛰어서 오른다. 코스맵을 보고도 이걸 몰랐다니 한심하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10K 이하의 대회는 절대 걷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고자 숨을 꼴딱꼴딱 넘겨가며 언덕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 오르니 왼쪽으로 한번 코스가 꺾인다. 이제부턴 평지이거나 내리막이겠거니 하며 왼쪽으로 딱 돌았더니, 눈앞에 절벽이 한번 더 있다. 헉! 소리가 절로 난다. 그리고 나만 나는게 아니었다 ㅋㅋㅋ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원성 깊은 한숨소리.



다행히 그 구간은 짧았고 거기부터 평지를 지나 신명나는 내리막이 나타났다. 

10K 대회를 가면 한 7K 지점부터는 질려서 '내 다시는 10k를 뛰나봐라'를 염불처럼 외우며 마지막 3km를 채우는데, 5K가 짧긴 짧았다. 언덕을 내려오니 벌써 저 앞에 피니쉬라인이 보인다. 5K 좋은거구나. 앞으로 자주 뛰어야겠다 생각하며 골인. 



5K 대회를 처음 뛰었기 때문에 공식기록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오늘의 기록이 PB가 되었다.



코스는 경사가 심한것을 제외하고는 길도 넓고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대부분의 NYRR 대회가 공원, 그 중에서도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데 비해 "도로"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도 좋았다. 평소에 달릴 기회가 거의 없는 차도를 달려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절벽을 기어올라간 후 뉴욕시티 칼리지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는데 깔끔하고 아름다운 풍경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았던 동네도 절벽같은 옹벽 위에 있었지... 잠시 라떼의 늪에 빠지게 하는 할렘의 빡센 지형이었다.





더 잘 뛸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이제와서 든다.



제 아무리 거리가 짧아도, 평소의 꾸준한 연습과 지형극복 훈련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날씨탓 컨디션탓 일정탓을 하며 이래저래 아침운동을 빼먹었던 지난 여름을 반성하며 다시한번 신발끈을 조이게 한 대회였다. 



그리고 이제 세번의 대회가 남았다.



올해(2022)의 뉴욕시티 마라톤이 2달 남짓 남았다. 올해 참가자들은 진작에 집중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마라톤 트레이닝중인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풍긴다. 벌써부터 30km를 뛴다니, 하프마라톤이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던 나에겐 미지의 세계다.

내년엔 이맘때엔 나도 저런 트레이닝을 하고있을까?



평생을 몸치, 운동치로 살아온 내가 나이 사십이 다 되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인생에 딱 한번정도는 마라톤을 뛰어보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9+1. 이제 조금씩 그 출발선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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