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담 Jan 30. 2023

첫 그룹런의 추억 - 거짓말하고 버스 탄 이야기

D-281

요즘 우리집은 주말이 다가오면 숨막히는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평생 운동을 안 하고 살아온 내가 달리기를 3년동안 하고있는걸 보며 남편도 느낀 바가 있었는지 축구를 하러 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때는 줄야근 줄철야를 하다가도 토요일 아침이 되면 조기축구회에 나가는 열혈 축구팬이었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 어쩌다보니 축구를 할 기회가 없었다. 남편은 정해진 멤버로 활동하는 조기축구회 형식이 아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때그때 사람이 모여 게임을 하는 픽업사커를 다니는데 스케줄에 구애받지 않는것이 편하기도 해서 좋다. 다만, 주말에는 나도 그룹런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고 서로 일정이 겹치지 않게 조정을 한다.



축구나 달리기나 토요일 아침이 황금시간대다. 다음날 출근 할 걱정이 없으니 체력을 마구마구 써도 걱정이 없는데다가 도로가 한산해서 특히 러너들에게는 로드로 나갈 절호의 찬스인것이다. 이번주에는 내가 토요일 아침에 그룹런에 나간다고 진작부터 큰소리를 쳐놨다. No drop run 이라고 특별한 행사도 한다고 하니 내가 빠질 수 없다고 남편에게 그날은 축구를 하러 가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막상 토요일 아침이 되어 일어나려고 하니 날씨도 우중충하고 추워서 달리기는 무슨 달리기야 이불 속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남편에게 큰소리 쳐놓은게 있으니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간다.



No drop run은 이번에 우리 런클럽에 처음으로 생긴 행사로, 한명도 낙오되지 않고 처음 출발한 인원 그대로 끝까지 완주하는것을 목표로 하는 행사다. 사실 대규모 인원이 와와 하며 달리다보면 아무리 비슷한 페이스별로 소그룹을 나눴다고 해도 쳐지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인데, 신호가 걸리거나 관광객이 많아 붐비는 구간을 통과할때는 정말 못 보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나 '말이 없는' 사람은 있다가 없어도 쉽게 눈치 채지 못해서 더 쉽게 낙오된다. 나처럼 말은 하고싶지만 영어가 딸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도... ㅜㅠ



집합시간에 약속장소에 나가니 정말 많은 인원이 모여있었다. 그룹런 자체에 대한 막연한 망설임을 갖고있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한두번 참여했다가 쓴맛을 보고 토요일 그룹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도 이번만큼은 no drop run 이니까! 하며 용기를 낸 것 같다.

내가 바로 그 트라우마 경험자로써, 이제는 3년차 멤버가 되어 나름 유니폼좀 갖춰입은 각좀 나오는 멤버가 되어 그룹런때 새 멤버가 오면 늘 꺼내는 추억의 레파토리를 오늘은 한번 여기에 적어볼까 한다.



그날은 내가 런클럽에 가입하고 회비까지 납부하고도 몇달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우리 인터넷에 강한 한국인들은 어딜가나 인터넷으로 하는건 잘 한다. 런클럽이라는게 있다고? 그럼 나도 하나 가입해야지! 검색도 척척, 가입도 척척, 인터넷으로 회비까지 납부하고 정회원 자격 획득. 페이스북이며 인스타그램이며 착착 팔로우하고, 인터넷 모범생의 민족답게 정보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서 잘 읽는다. 여기까진 잘 했다. 그런데 현실세계로 한발작을 내딛는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그룹런은 수요일 금요일은 저녁에, 토요일은 아침에 있다는걸 숙지하고 엑셀시트로 사인업 하는것까지도 다 알았는데 막상 그 날이 다가오면 모임 장소에 나갈 용기가 도무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모임 장소가 먼 것도 아니고 우리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가서 뭐라고 말을 하지? 내가 너무 뛰는게 느리면 어쩌지? 외국인이 나 하면 어쩌지?' 별별 걱정이 다 들어 용기가 안 난다. 한번은 모임시간 모임 장소에 갔다가 곁눈으로 보고 아닌척 옆으로 스쳐 지나간 적도 있었다. 이러다간 영영 첫발조차 내딛지 못할 것 같아서 정말 큰 마음을 먹고 토요일 모임장소에 나갔다.



생각보다 별로 특별할것이 없었다. 이름은 뭐고 나이는 어떻게 되고 지금까지 대회 기록은 어떻고 등등...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야하는 한국식 모임보다 오히려 쉬웠다. 둥그렇게 모여 서서 이름, 오늘의 목표 거리, 그리고 자기 페이스만 말하면 끝. 처음오셨어요? 하는 그런것도 없이 크게 주목받지도 않고 순식간에 자기소개를 마치고 페이스별로 소그룹을 나눠 착착 출발했다. 당시에 나는 딱히 페이스랄것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제일 마지막 그룹에 끼어서 출발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따라가기 버거운 수준이 아니라서 그럭저럭 간단한 대화도 주고받으며 (비록 동문서답도 여러번 했지만) 도로로 나갔다.



그때 한 열명 정도가 같은 그룹이었는데 그 마저도 너무 많아서 두세명씩 자연스럽게 나눠졌다. 그땐 많이 긴장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대화 내용이 늘 똑같아서 이제는 저절로 읊는 수준이다. 달리면서 하는 대화 주제는 주로 언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나, 준비중인 대회가 있나, 달리기 말고 다른 취미가 있나... 그런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은 다들 시간과 거리를 넉넉하게 잡고 나오기 때문에 오늘 어느정도 거리를 달릴것인지를 서로 묻곤 한다. 얼레벌레 따라가다 다들 오늘 10 정도 뛴다고 하길래, 또 남들이 다 10이라고 할때 혼자 5라고 말 못하는 동양인 답게 나도 10이라고 일단 대답은 해놓고 머릿속에서 계산을 열심히 굴려봤다. 나는 평소에 5km짜리 공원을 한바퀴씩 뛰지만 10km 대회도 완주해본 경험이 있고, 그 대회 연습으로 공원을 두바퀴씩 뛰어본적도 있으니 뭐 오래간만이긴 해도 못할거까진 없겠지 하고 열심히 따라갔다. 뉴욕에 10년, 그 중에서 브루클린에서 5년을 살았는데 그날 처음으로 브루클린 브릿지도 건넜다. 몸은 미국에 살고 있어도 사실 주부로 살다보면 영어를 쓸 일도 들을 일도 별로 없는데, 장시간동안 짧은 영어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되는것도 신기하고 무엇보다도 코로나때 달리기를 시작해 그때까지 혼자서만 달리던 내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달린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뿌듯했다.



은근히 흥분된 상태로 뛰다보니 힘든줄을 몰랐는데 그때 시계에서 비프음이 울렸다. 아주 기본적인 엔트리급 모델이긴 해도 나름 러너라면 이런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장만한 GPS 시계다. 거리는 7km, 페이스는 6:30 오. 나쁘지 않은데? 평소 5Km만 뛰고도 힘들었던 내가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7km 나 뛴 것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 들어가야되는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왜 5km 지점에서 되돌아가지 않고 계속 뛰는거지? 출발점이 우리집 앞이었으니 5km 지점에서 되돌아가야 그 위치로 다시 가는거 아닌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모두가 와와 하며 앞을 보고 달릴 때 "이제 반대로 뜁시다!" 라고 말 못하는게 또 우리네 한국인의 특징인지라... 뭐 얘네들만 아는 지름길 같은게 있는가보다 하고 넘겼다. 계속해서 따라가다보니 이젠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모를땐 몰라도 거리를 알고나면 갑자기 그에 걸맞는 피로가 느껴지는 법이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8km 정도 되었을때 드디어 멈춰서서 물을 한모금씩 마시더니 방향을 튼다! 그래도 그렇지 8Km나 달려온 거리를 어떻게 2km로 단축해서 되돌아가는거지? 무슨 축지법이라도 쓰는거야? 라고 묻고 빵 터트려주고싶은데 축지법을 영어로 뭐라고 하지...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볼수도 없고 답답하네. 이제 점점 발에 쇳덩이를 단것처럼 무겁고 발가락에 물집도 잡힌것 같고 뛰다가 신호등이 걸리면 반갑고 고맙고 막 그런다. 그런데 하필 또 토요일 아침이라 길에 차가 별로 없으니 신호가 걸려도 웬만하면 무단횡단으로 계속 뛴다 ㅠㅠ 이쯤 되면 오히려 "낙오" 되고싶다. 제발 나를 잊어버리고 얘네들이 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관광지 구간을 이미 지나간 후라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내가 좀 쳐지는거 같으면 저 앞에서 멈춰서서 이름까지 불러가며 화이팅을 외친다. 시계는 이미 12km도 넘었다. 뭐야 10이라며 ㅠㅠ


그 순간 갑자기 아차! 싶은게 아니겠는가. 이 인간들은 km가 아닌 마일 단위를 쓴다는거. 10이 km가 아니라 마일이면....


16km!!




그때!

같이 달리던 열 명 중에 한명이 뭐라뭐라 하더니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빠진다. 무슨일이야??? 하고 옆에 있던 일본인한테 물어보니 "몰라, 이 근처 사는거 아니야?" 한다. 아!! 그런 방법이!!! 나는 당연히 처음에 출발한 지점까지 되돌아 가야만 하는줄 알고 눈앞이 깜깜했는데, 이 근처 살면 그냥 빠지면 되는거구나! 완전히 생각도 못했다. 왜냐면 나는 처음 출발한 그 지점에 사니까 ㅠㅠㅠㅠㅠ

그래서 나도 어색하게나마 "나도 여기 근처에 살아서 빠질께" 라고 원래 어색한 영어로 말을 하고 쇽 빠졌다. 거짓말인거 티 날까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쿨내가 진동하게 바이바이를 외쳐주었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조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두 발을 땅에 대고 멈춰섰더니 세상 편한거~~~ 12km 하고 몇백미터 더 뛴 그날의 기록이, 그날까지의 최장거리 기록이 되었다. 하지만 집까지는 아직 멀어서 도저히 이 다리로 걸어갈순 없고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는데, 오메 편한거~~~~



그렇게 나는 첫 그룹런에서 신나게 뛰다가 집에 버스타고 온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토요일 아침 그룹런은 왠지 꺼려졌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센 힘이 구력이라고 꾸준히 달리기를 계속 하다보니 체력도 늘고 거리도 늘었다. 이젠 10이 km가 아니라 마일이라고 해도 어느정도는 따라갈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자신감 + 힘들면 그냥 나 여기 근처 산다고 뻥치고 지하철 타면 된다는 깡도 생겼다.

그날 처음으로 달리기를 같이 했던 열 명 중 몇명과는 지금도 함께 달린다. 웃프게도 우리들은 그동안 하프마라톤 완주자가 되고, 풀 마라톤 완주자도 여럿 나왔지만 페이스가 빨라지지 않았다. 이미 애도 낳고 4050이 된 우리 여자들은 페이스가 느려지지 않으면 선방이라고도 한다.

어느날 내가 집 앞에서 지나가다 달리기 멤버를 우연히 만났다. 이동네에 웬일이야? 하길래 나 여기 살아 했더니 너 저~~기 윗동네 산다고 하지 않았어? 하며 놀란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내가 더 놀랍다.

그리고 나는 이 뻥치고 버스 탄 썰을 요즘도 종종 새 멤버들에게 푼다.



No-drop run은 그때의 나처럼 토요일 아침 그룹런에 학을 떼고 다시 못 나오게 된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페이스가 느린 멤버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힘들면 힘든대로 같이 걷고, 거리를 줄여 반환점을 앞당기더라도 원래의 자리로 같이 돌아오는것을 목표로.



의외로 정말 당연한데도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달리기의 비법이 있다. 힘들면 걸으면 된다는 것, 남들이 뛴다고 무조건 따라 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잘 뛰는 사람만 러너인건 아니라는 것, 내 등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가 넘어질때 그 사람이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 그것이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가짐이라는 것.



정말 좋은 행사였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폐선로 너머로 맨하탄이 보이는 브루클린의 찐 인더스트리얼 구역. 평소에 전혀 갈 일이 없는 동네도 달리기를 하다보면 가게되는게 또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D-300 스스로에게 넓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