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1 디즈니 월드 마라톤 대회 접수
내가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덕질'하기 전에는, 나는 마라톤은 올림픽 때만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피날레 행사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어쩌면 당연히(?) 마라톤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해마다 열리고, 그냥 매주 주말 세계 어딘가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다.
(뉴욕, 시카고, 보스턴, 런던, 베를린, 도쿄)는 물론이거니와, 누구누구를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각종 마라톤, 지역 홍보를 겸해 풍경이 좋은 계절에 열리는 지역 마라톤, 거기에 나이키나 뉴발란스 같은 스포츠 메이커들이 여는 마라톤 등등... 엄청나게 많은 대회가 있다. 거기에 참가 장벽이 비교적 낮은 하프마라톤까지 더하면, 평생 뛰어도 다 못 뛸 정도다.
그리고 중요한 것,
"마라톤"이라는 단어는 하프(21.095km) 풀(42.195km) 에만 쓸 수 있는 단어로, 10km나 5km 대회는 "마라톤"이라고 붙이지 않는데 요즘은 "5k 마라톤" "10k 마라톤"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크고 작은 5k, 10k "마라톤"들까지 합치면 정말 다리가 10개쯤 있어도 다 못 뛸 정도로 많다.
뉴욕주 북쪽에 위치한 코닝이라는 지역은 유리 산업 외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유리 특산지이다. 산이 험한 뉴욕주의 특성상 가을 단풍이 절경인데 그 시기에 맞춰 코닝에서 마라톤/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의 독특한 점은 메달이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 다른 어느 대회에서도 볼 수 없는 유리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러너들이 모이는 대회다.
식도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 중에서도 특히 음식문화가 발달한 오사카에는 "먹다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그 지역성을 잘 살려서 코스에서 제공되는 간식이 굉장히 화려하게 나오는 것이 오사카 마라톤의 특징이다.
뉴욕마라톤이 물, 게토레이, 젤만 주는 것에 비하면 각종 과자, 케이크, 양갱, 초콜릿 등이 다양하게 나오는 오사카 마라톤은 달리면서 먹는 10 디쉬 코스요리급이다.
그냥 죽도록 달리기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요모조모 귀여운 구석이 있는 마라톤의 세계...라는 생각에 완전히 불을 붙이는 대회가 있었으니 바로!
세계에 퍼져 있는 각종 디즈니 "랜드"의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에서는 크고 작은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1월 첫째 주 마라톤위크. 5k, 10k, 10마일, 하프, 풀코스가 전부 다 열린다. 아무래도 기후가 더운 플로리다의 특성상 그나마 가장 서늘한 1월에 성대한 대회가 열리는 것 같다.
이 대회의 특별한 점은 디즈니 캐릭터가 콱 박힌, 오직 디즈니만이 발행 가능한 메달을 받는 것도 특별하지만 코스가 디즈니월드라는 점이 가장 특별하다. 디즈니월드 개장시간 전에 들어가 관람객이 없는 파크 안을 캐스트들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는 특별한 대회가 되겠다. 덕분에 출발시각이 새벽 5시라는 후들후들한 설정이지만 1월이어도 꽤 더운 플로리다의 날씨를 생각하면 해뜨기 전에 완주하는 것만이 상책이다. 실제로 이 대회를 뛰어본 사람의 이야기로는 새벽 5시여도 일단 뛰기 시작하면 정말 덥고 힘들다고.
마라토너의 특권은 뭐니 뭐니 해도 "평소에 못 다니는 길을 뛰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평소엔 자동차로만 지날 수 있는 길을 막고, 달려서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는 쾌감. 공원이나 트랙에서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마라톤"만의 특권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세상이 다 내 것인 것만 같다.
그 기분을 디즈니월드에서 느껴볼 수 있다니! 아무도 없는 디즈니 월드를 새벽 5시에 뛴다니!! 미키마우스와 도날드덕이 나와서 나를 응원해 준다니!!
어머 이건 꼭 뛰어야 해!!!
그래서,
접수했다.
질러버렸다.
2024년 1월.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디즈니월드 하프 마라톤을 뛰러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