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담 May 02. 2023

밀당의 고수

D-188 마라톤으로 밀당하는 드라마

때는 바야흐로 코시국의 절정이었던 2020년 6월. 직장도 다 재택근무 해라, 학교도 다 닫아라, 상점은 생필품과 식료품 파는곳 제외하곤 다 닫아라... 난리 부르스였던 뉴욕의 2020년 봄. 



좁디 좁은 뉴욕 집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유치원생까지 세명이 징역살이를 하려니 보통 갑갑한게 아니었다. 아주그냥 누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땐 바로 깡패가 되는거야! 일촉즉발. 



이제와서 얘기하면 또 거짓말같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땐 정말 심했다. 하다못해 동네 놀이터도 다 폐쇄하고, 그걸 또 굳이 자물쇠를 뜯고 들어가서 놀겠다는 애들이 있어서 뉴스에 나오고 그랬다. 헬스장도 당연히 다 닫았기 때문에 운동을 못해 분노가 쌓이고 쌓인 사람들이 공원으로 쏟아져나왔다. 그렇다고 공원까지 폐쇄하면 코로나 걸리기 전에 성인병으로 어떻게 될 게 뻔하니, 놀랍게도 그땐 공원을 일방통행으로 지정해서 모든 사람이 한방향을 보며 걷거나 뛰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고작 3년 지났다고 '아 진짜 그랬었나..?' 싶다. 



나야 원래 40년 가까이 운동 한번 안하고 살아온 온실속 화초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와서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지만) 야외활동을 싫어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 가내수공업이나 하는것을 즐기는 규방 처자라서 코시국이라고 해서 달라질것도 없었다. 

만!

에너지가 넘치는 유치원생과 말로만 듣던 하루 세끼 먹는 남편을 주 7일 보필하다보니, 건드리면 깡패가 되는것도 아니고 그냥 깡패 그 자체가 되어린 어느날. 

한국에 있는 친구가 나에게 달리기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피차마차 쌍마차였던
달리기 영업맨,
밀기


그언니는 원래부터 남에게 뭐 하라고 권유하고, 뭐 사라고 뽐뿌넣고 부추기는걸 참 잘 하는 언니다. 보통 영업의 기본은 "제가 써보니까 참 좋아요" 에서 시작하는 법. 이 언니도 무슨 앱을 이용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데 그게 아주 상쾌하고 기분이 좋고, 눈에 띄게 살도 빠지는것 같다며 내 귀에 솔깃한 소리를 마구 주입하는데... 



참 묘한것이다. 이 언니가 원래부터 운동 좀 하는 여자였다면 귀에 씨알도 안 먹혔을텐데, 언니나 나나 운동 안하고 사는건 피차마차 쌍마차였는데 이게 좋다고?? 달리기가??? 



나는 평소에 누가 상품명만 흘려도 당장 구매하고 보는 팔랑귀 호갱이지만, 운동에 있어서만큼은 완고한 소신파였다. 아니 실내에서 하는 운동도 아니고 야외에서 달리기를 어떻게 해. 햇빛 받으면서 걷기만 해도 힘든데... 




폭주하는 호갱님,
 당기기

하지만 사람이 너무 자꾸 거절하는것도 서로 무안한 법이라... 게다가 당시는 코로나 집콕으로 할일이 없으니 하루 종일 카톡만 붙잡고 살던 시절이라 하루에도 몇번씩 달리기 권유를 들어야했으니 그것도 지쳐서 '그럼 몇번 달리기 하는 척만 하다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해야겠다'는 전략으로 훼이크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동안 우리의 카톡은 달리기의 효과에 대한 예찬과, 또 절대 빠질 수 없는 달리기 용품 쇼핑에 대한 대화로 뜨거웠다. 그리고... 



예의상 몇번만 뛰고 그만두겠다던 그 호갱님은 정말 달리기 말곤 할일이 아무것도 없는 뉴욕에서 징역살이 중이었기 때문에 계속 달렸다. 코로나 이 느아쁜 계집애! 달릴거야! 코시국이 끝날때까지 달릴거야!! 하며 폭주하더니 하프마라톤을 두번이나 완주하는 덕후가 되었다. 


그 사이, 애시당초 이 사단(?)을 시작한 영업쟁이는...? 40일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다던 2020년 한국의 기록적 장마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달리기를 접었다. 





이 밀당
끝까지(피니쉬라인) 가보자


이언니 그러고보니 상습범이다. 

맨날 그래! 뭐 자기가 써보니까 되게 좋다고 해서 나도 사면 자기는 금방 질려서 어디 뒀는지도 모르게 잊어버리고, 나만 마르고 닳도록 쓰다가 남들도 사주고 폭주한다. 그렇게 달리기도 나만 하고, 뉴욕시티 마라톤까지 나가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비가와서, 이 뽑아서, 발목 아파서, 살쪄서 관절 다칠까봐 등등의 핑계로 흐지브지 하고 있는 그 시점에!



디즈니 마라톤이라는걸 발견했다. 

그리고 디즈니 마라톤의 하프를 완주하면 주는 도날드덕 메달이 뜬금없이 이 언니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언젠가 저 하프 마라톤을 뛰는게 목표라고 인스타그램까지 올렸다. 



그래서, 내가 표를 구했다.



디즈니라고 해서 조금은 우습게(?) 생각했더니, 도날드덕 (하프)과 미키마우스 (풀) 메달이 나오는 디즈니 마라톤은 1년에 한번 있는 큰 대회로 참가 신청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했다. 참가권을 따는 다른 방법은 전혀 없고 오로지 인터넷 선착순 접수 뿐이다. 소위, 피켓팅이다. 



사실 나도 정말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다. 서버 접속을 무려 1시간 반이나 기다려서 신청페이지에 접속했을때도 진짜 이게 될까 싶었다.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카드번호를 넣을때도 이게 정말 결제가 될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리고, 

무려 한화로 60만원이나 되는(2명분) 참가비가 결제되면서, 나와 달리기 밀당을 3년이나 해오던 안모씨는 2024년 디즈니 마라톤 위크 하프 마라톤 참가권을 따냈다. 



나도 얼떨떨하고 안 믿겼고, 

카톡으로 수시로 "접속은 되었냐" "진짜로 표 끊는거냐" "그래서 디즈니월드가 어디 있는거냐" "비행기표 사면 되냐" 며 깔깔거리던 안모씨도 정작 내가 표를 구했다고 하니 사실은 안 믿는 눈치였다. 아마 안 믿고싶었는지도...? ㅋㅋ



플로리다까지 나는 비행기로 3시간만 가면 되지만, 한국에서 와야되는 언니는 14시간은 걸릴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의 긴 밀당 끝에, 진짜로 하프마라톤 코스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날이 왔다.




영업당해서 나만 이러고 있네 농담섞인 불평을 늘어놓곤 하지만, 나에게 달리기라는 새 삶을 알려준 은인이다. 

도날드덕 메달 내가 따게 해줄께!

내가 업고서라도 끝까지 뛸께! 



우리의 3년짜리 밀당,

이제 골인 하자잉?? 

매거진의 이전글 거리, 이제부터 "마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