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담 Jun 03. 2023

브루클린 먹쟁이의 풍류 (멋쟁이 아님 주의)

D-156 도넛도 먹고 버블티도 먹는 먹쟁이 러너들

올 11월 생애 첫 마라톤을 앞두고,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험한 코스 중 하나라는 뉴욕시티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아직 본격적인 트레이닝은 시작조차 안했지만 이때야말로 "그것"을 해둘때다! 라는 마인드로 체중감량을 시작한지 2개월. 



목표한대로 1주일에 450그램씩 빠져 2달여만에 5kg 감량에 성공한..... 바로 그 시점에 온단 말입니다. 체중 정체기가.



그냥 정체만 오면 좋은데 맹렬한 체중복귀 현상도 함께 와서 단 음식이 당기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버블티 생각이 요 근래 간절했다. 버블티 중에서도 흑당 버블티가 땡긴다... 염불처럼 중얼거리고 다니던 어느날,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 양 "타이거 슈가 버블티! 지금 당장 마셔야한다!!!" 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코리아타운에 갈 일이 있는 날이라 거기서 먹고오면 되겠다며 부푼 마음으로 갔는데!!!

웬걸. 거기는 오픈시간이 너무 늦어서 잠긴 문고리를 붙들고 2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내 아무리 먹신을 영접한 상태지만 2시간 반은 너무했다 싶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으나 그놈의 타이거슈가를 여전히 중얼거리고 다니니 달리기 친구들이 나서주었다. 




가자! 타이거슈가로!



우리가 무슨 십대 소녀들도 아니고, 버블티 먹자고 버블티집 앞에 집합하긴 좀 부끄럽고, 명분이 있어야하니 달려서 가기로 했다. 딱히 약속을 잡고 만나지 않더라도 '그냥 시간 되는 사람 아무나 와~' 하면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는 신기한 브루클린. 아무래도 동네가 작고 (생각보다 브루클린 정말 작다) 이동거리에 대한 개념이 조금 남다른 러너들이라 3~4Km정도는 걷거나 뛰어서 금방 모인다. 


모여서 또 타이거슈가 매장까지 한 5Km정도를 뛰었으니 크림이 듬뿍 얹어진 흑당 버블티가 제로칼로리다. 




내셔널 도넛 데이



요즘 나는 일주일에 4번 달리기, 1번 스피닝, 1번 수영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것은 스피닝이다. 달리기는 내 페이스를 내가 조절하며 달리니 무리 할 일이 별로 없고, 수영은 사실 수영이라고 말하기도 무안한 킥판 잡고 물장구치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리드하는 스피닝은 세계적 모범생인 동양인의 피를 숨기지 못하고 웨이트를 올리라면 올려, RPM을 120까지 밟으라고 하면 밟아, 쉬지말고 3분 돌리라면 돌려... 고작 45분짜리 클래스인데도 끝나고 나면 계단을 못 내려올 정도로 고강도로 단련하고 있다. 



요즘은 다이어트중이라 먹는게 부실해서 그런지 더 힘든 클래스를 마치고 스트라바를 보고있노라니 내셔널 도넛 데이라나 뭐라나.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는 미국의 여러가지 기념일 중 하나라고 다들 도넛을 먹고있다. 그러고 보니 버블티 이후 잠잠해졌나 싶은 먹신이 또 날뛴다. 오늘은 도넛을 먹어야해!!! 

이런날은 또 브루클린 먹쟁이 러너들을 소집해본다. 디자이너나 작가같은 프리랜서 직종이 많은 지역 특성도 있고,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로 전환된 사무직들도 많아서 또 금방 사람이 모인다. 


늘상 자고 일어난 머리에 다 늘어진 티셔츠만 입고 땀 범벅으로 만나던 사람들이라 차려입고 나갈 필요도 없다. 오늘은 아침에 각자 달리기도 했고, 게다가 한낮 기온이 많이 올라서 굳이 모여서 달리지 않고 각자 지하철을 타고 모였다. 도넛은 벌써 먹었는데 집이 근처라서 얼굴이나 보러 왔다는 친구도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도넛샵은 매장 내에 자리는 없고 가게 앞에 간이 벤치가 있었다. 마침 그늘이 진 그 벤치에 앉아 아이스커피 속 얼음이 찰랑이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누군가는 뛰어서 왔고 (이 더운 날에!) 누군가는 지하철이 늦어서 늦게 왔고, 누군가는 빨리 가야된다고 황급히 자리를 뜨고... 



이게 브루클린의 풍류인가, 달리는 자들의 풍류인가, 먹쟁이들의 풍류인가 아니면 셋 다인가. 

런닝을 시작해서,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림도 내팽개치고 외간남자 뒤를 졸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