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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Jun 30. 2023

사람은 이렇게 달릴 수 없어

뉴욕시티 마라톤까지 D-130 / 베이릿지 쇼어로드

러너라면 여행을 가서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법. 그래서인지 "무슨무슨 도시에서 꼭 달려봐야 할 코스"라는 것도 꽤나 여럿 눈에 띈다. 당연히 뉴욕도 그런 리스트가 있는데, 오늘은 그중 하나로 꼽히는 베이릿지 쇼어로드를 달려보았다.



베이릿지 쇼어로드는 이름처럼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길이고 브루클린의 최남단인 베이릿지에 위치한다. 베이릿지는 원래부터가 베드타운인 브루클린 중에서도 특히 더 베드타운으로 유명한 곳이라 딱히 갈 일이 없다. 브루클린에 7년째 살고 있는 나조차도 몇 번 안 가봤을 정도이니 말이다.




베이릿지 쇼어로드 (오울스헤드 파크부터 베라자노 브리지까지 약 3km 구간)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바로 베라자노 내로우 브릿지. 뉴욕시티 마라톤의 출발지점이다. 다리를 기준으로 왼쪽은 브루클린, 오른쪽은 스태튼 아일랜드로 뉴욕시티 마라톤은 스태튼 아일랜드 측에서 출발선을 끊고 바로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42.195km의 여정을 시작한다.



동네 자체가 베드타운이라 그런지, 굉장히 한적하다. 자전거나 보행자가 거의 없어서 방해받지 않고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발 한발...

베라자노 브리지를 향해 달린다.

뉴욕시티 마라톤의 출발점을 향해 달린다.

이 얼마나 의미 깊은 코스란 말인가. 뉴욕시티 마라톤의 출발선을 바라보며 달리는 아침. 발소리도 찰지게 바닥을 착착 치고 나가면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생선조각을 먹으려고 모여있던 비둘기들이 일시에 푸드덕하고 날아오른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뉴욕시티 마라톤 홍보모델이다. 내가 뉴욕시티 마라톤 챔피언이다.



감동도 잠시.

너무너무 힘들다.

이미 꽤 먼 거리를 달린 후라서 그런가? 쉬며 쉬며 달려봐도 너무너무 힘들다.

여긴 육지의 끝이라 경사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너무너무 힘들다.

고작 3km를 달리는데 심정적으로 너무나 힘들다.




'저기까지만 가자' '다리 밑까지만 가자' 꾸역꾸역 달려 다리까지 도착한 후 오늘의 달리기를 마무리한다.




너무 먼 곳의 한 점만을 바라보고는, 달릴 수 없다.




사람은 이렇게는 달릴 수 없어



그렇게나 힘들었던 이유는 막상 베라자노 브릿지까지 도착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베이릿지 쇼어로드는 주변에 나무도 없고 건물도 없고, 사람들도 없다. 3km 구간동안 오직 이 브릿지 하나만 바라보며 가도 가도 똑같은 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지치는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잠잠한 바닷물. 목표지점인 베라자노 브릿지는 너무나도 멀어서 전력으로 1분을 뛰어도 조금도 가까워지는 것 같지가 않다.



마라톤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연료로 태우는 불꽃이라던가. '언젠가 닿는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골인지점을 향해 달리는 42.195km의 여정이다. 고작 3Km지만 내가 달리는 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길은 정말이지 심정적으로 고단한 길이었다.



사람은 너무 먼 목표지점을 향해서, 오직 그것 하나만 보고는 달릴 수 없다. 어려서부터 경쟁, 시험, 목표, 성공이라는 주제에 부대끼며 자라온 한국인들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것에 익숙하다. 지금껏 우리가 살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수능시험을 위해 수년간 학교생활을 하고, 셀 수 없는 밤을 지새 공부하고, 대학입시, 취업, 승진... 그 모든 아주 먼 곳에 있는 목표물을 향해 오직 그것만 바라보며 달리는 것에 성공해 왔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생각한 것이다.



내가 앞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은 작고 사소한 풍경에서 나온다. 방금 스쳐 지나간 벤치, 하마터면 밟을뻔했던 생선 조각, 바닷가에 설치된 안전펜스의 촘촘한 창살...

너무 사소해서 보이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런 것들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었음을,

베라자노 브릿지 아래에 도착해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베라자노 브릿지는 보행자 진입이 안 되는 다리라서 실제 출발지점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특별한, 뉴욕시티 마라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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