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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ug 22. 2023

마라톤 훈련 5주 차 - 12마일 대회, 첫 F넘버

마라톤 훈련 5주 차
800m 인터벌
5마일 템포런
뉴욕시티 마라톤 트레이닝 시리즈 12마일 대회



8월 중반에 접어들면서 뉴욕은 엄청나게 시원해졌다. 낮에는 아직도 덥지만 달리기를 하는 새벽시간에는 서늘해서 싱글렛을 입으면 썰렁할 정도다. 올여름은 덜 덥고, 비가 많이 오는 느낌이다. 




화요일 : 800미터 인터벌

화요일마다 하는 그룹훈련, 이번주는 다시 800미터 인터벌을 했다. 전날 밤에 비가 많이 와서 바닥이 젖어있었고, 습도가 높아서 집합장소까지 웜업을 겸해 뛰어가기만 해도 이미 지칠 정도였다. 지난번에 인터벌을 6회 하겠다고 했다가 큰코다친 경험을 살려(?) 이번주에는 애초에 6번같은건 꿈도 꾸지 않고 4번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 


늘 그렇듯이 우리가 800미터 인터벌 훈련을 하는 프로스펙트 파크 센터드라이브 구간은 갈 때는 내리막, 올 때는 오르막이다. 바닥에는 800미터 구간을 락커로 표시해 놓았고 중간에 400미터와 200미터 위치에도 표식이 있다. 오르막을 올라올 때는 마지막 200미터 남았다는 표식이 어찌나 야속한지!!


이번주에는 내가 같이 뛰는 소그룹에 새 멤버가 왔는데 정말 엄청나게 빨랐다. 왜 더 빠른 앞그룹으로 안 가고 우리 그룹에서 뛰는지 의아할 정도로 빠른 멤버였는데, 앞에서 누가 엄청 빠르게 뛰고 있으면 또 어느 정도 뒤쫓아 가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인지라, 비록 인터벌은 4번밖에 안 했지만 아주 찐~하게 훈련 마무리.




그 후 수요일에는 공원을 한 바퀴 정도 가볍게 뛰라는 지시대로 개인훈련을 했다.



목요일 : 5마일 템포런

첫 2마일은 하프마라톤 페이스, 1마일은 10K 페이스, 다시 2마일은 하프마라톤 페이스로 뛰는 게 훈련 목표였다. 내 경우에 하프마라톤 현재까지의 기록이 평균 10분/마일 속도지만 그 후로 훈련을 통해 많이 빨라졌다고 느껴서 30초 당겨 9:30으로 2마일을 뛰었다. 그다음 1마일은 8:30 정도로 뛰고, 다시 2마일을 9:30으로 뛰려고 했는데 조금 더 당겨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9:00분/마일 속도로 뛰고 전체 5마일 마무리.


마라톤 훈련이 시작되기 전 다이어트를 한 것과, 훈련을 5주간 계속해온 것이 점차 효과가 나타나서 9분이라는 페이스에 두려움이 줄었다. 주말마다 하는 장거리 훈련도 꾸준히 10마일 이상씩 뛰어서 거리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면서 속도와 거리 모두 안정적으로 올려가는 중이다. 



그다음 금요일에는 또 공원을 한 바퀴 뛰는 훈련메뉴가 지정되어 있었지만, 다음날 대회가 있는 관계로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당분도 섭취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다.




TCS 뉴욕시티 마라톤 트레이닝 시리즈 12마일



나의 첫 F 넘버 빕

토요일은 이지페이스로 장거리를 뛰는 것이 일정이지만 이번주에는 대회를 하나 뛰었다. 

이 대회는 뉴욕시티 마라톤을 주관하는 NYRR이 하는 대회로, 뉴욕시티 마라톤을 준비 중인 러너들의 훈련일정에 맞게 8월 중순에 12마일, 9월 말에 18마일 대회가 "트레이닝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각자 다른 플랜으로 훈련을 하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훈련일정이 이 시기에 이 정도의 거리를 뛰기 때문에 길고 지루한 훈련 중에 대회 참가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이번 대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F넘버를 받았다. NYRR의 모든 대회는 가슴에 다는 번호표(빕) 앞에 알파벳이 붙는데 NYRR이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빠른 그룹부터 A부터 알파벳을 받는다. 대회에 참가하면 출발 대기선이 알파벳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고, 자기 번호와 같은 알파벳 구간에서 대기하다가 순서대로 출발한다. 대략 7분/마일 페이스부터 30초 단위로 나뉜다. 나는 지난 6월 퀸즈 10K에서 9분대였던 개인 기록을 8분 54초로 경신하면서 비록 턱걸이였지만 처음으로 F넘버를 받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에 레이스 넘버 픽업 개시 첫날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왔더니, 공식 번호표가 미처 인쇄소에서 넘어오지도 않은 날이라;;; NYRR의 범용 번호표를 받게 되었다. 번호표를 받고 '특이하게 이번 대회는 번호표에 대회 이름이 안 쓰여있네'했는데, 막상 대회날 새벽에 지하철을 타니 나만 빼고 다들 초록색 번호표였다(!!!) 혹시 내가 대회날짜를 잘못 알았나 싶어서 대회본부에 가서 물어봤을 정도였다.



트레이닝 시리즈 12마일 대회는 센트럴파크 풀 루프를 두 바퀴 돈다

이 대회는 센트럴파크 풀 루프를 두 바퀴 뛰는 코스로 진행된다. 예상 가능하지만 9월 말에 열릴 18마일 대회는 세 바퀴 뛴다.

나는 이렇게 같은 구간을 여러 번 도는 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시간 전에 지나갔던 곳을 다시 지나가면서 소위 "뺑뺑이"도는 느낌을 받는 게 좀 별로다.... 하지만 이날은 같은 곳을 두 번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코스 따위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직 뛰는 것에만 집중해서 뛰었다. 



센트럴파크는 코스맵 고저차 차트에도 보이듯이 언덕이 심하다. 원래 바위산이었던 곳을 폭파시켜 공원으로 조성한 구역인데 1차 대전 때 사용한 폭탄의 총량보다 많이 썼다는 기록이 있고, 지금도 곳곳에 암석이 그대로 있을 정도로 돌덩이인 곳이다. 내가 늘 뛰는 프로스펙스 파크도 언덕이 심하긴 한데, 프로스펙트 파크는 전체가 하나의 언덕, 센트럴파크는 크고 작은 언덕이 반복된다는 차이가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무시무시한(?) 사실은 조경이 화려하게 잘 되어있는 탓에 오르막이 오르막처럼 보이지 않는 구간이 많다는 점이다. 평지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벌써 지쳤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덮쳐오는데, 안 그렇게 보여도 사실은 오르막이었던 것이다. 그런 구간이 한둘이 아니다. 



한 바퀴를 뛰고 나서 10K 표식을 통과할 때 보니 놀랍게도 6월에 퀸즈에서 갱신한 10K 개인 기록보다 빠른 시간에 통과했다. 2개월 동안 꾸준히 훈련해 온 결과가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전날에는 NYRR이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강의가 있었다. 올해 뉴욕마라톤을 준비하는 러너들에게 훈련 팁과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좋은 강연이었다. 패널로는 NYRR 오피셜 코치, 멘탈리티 전문가, NYRR 공식 페이서가 나와서 앞으로의 훈련 방법과 대회 당일을 위한 준비 등을 알려주었다. 거기서 어느 참가자가 질문을 했는데 "과연 나에게 맞는 페이스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페이서가 답변을 했는데, 그야 당연히 모든 러너는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 다르고 각자 다른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른 페이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대답인가 싶었지만, 뒤이어 나온 말이 명언이었다. "20마일을 뛴다고 가정하면 10마일을 뛴 후에 자기 몸에게 물어보라. 한번 더 할 수 있는가? 당신의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대답을 바르게 캐치하는 것이 아마도 마라톤 훈련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6마일(한 바퀴)을 뛴 후 나도 내 몸에게 물어봤다. 이만큼 한번 더 할 수 있는가?


숨이찬가, 어딘가 관절이 아픈가, 발에 상처가 났는가... 

그리고 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보니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 바퀴 때는 아주 약간 속도를 더 높였다. 나는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지구력이 약한 타입이라서 장거리를 뛰면 언제나 뒤로 갈수록 아주 착실하게 느려지는데, 이번엔 확실히 내 몸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속도를 조금 높여서 두 번째 바퀴를 시작했다. 



약 50분 전에 지나갔던 자리를 다시 뛴다. 약 50분 전에, 끝이 없을 것 같다고 느껴졌던 언덕을 오르며 이제는 안다. 저 앞에서 오르막은 끝나고 내리막이 나온다는 사실을. 

사실 세상에 영원히 이어지는 오르막은 없는 법이니 업힐을 힘겹게 올라간 만큼 수월하게 뛸 수 있는 내리막이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언덕을 오를 때 몸이 힘들면 나약해지고 만다. 지금 당장 힘드니까 속도를 늦추는 게 나을까. 이대로 가다간 완주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게 아닐까. 수많은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그때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몸에게 묻는다. "멈춰야 할 만큼 힘든가?" 그리고 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멈출 정도 까진 아니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 구간이 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그러했다.





12마일을 개인 최고기록으로 뛰고 평균페이스는 퀸즈 10K 대회 때 이러다 죽지 싶을 정도로 뛰었던 페이스와 똑같았다. 불과 두 달 전에 10km를 겨우 뛰던 속도로 지금 나는 19km를 뛸 수 있게 되었다. 올해 4월까지만 해도 10마일이 넘는 거리는 평균페이스가 10분/마일이 넘었다. 꾸준히 쌓아온 땀과 시간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사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뛸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발견하는 시간. 



마라톤은 42.195km가 아니라, 출발지점까지 가는 그 모든 훈련의 여정을 다 포함하는 말이라는 것. 

정말 깊이 깨닫고 느끼는 시간들이다. 



평생에 딱 한 번은 뛰어보자는 각오로 시작한 뉴욕시티 마라톤이지만, 아마도 나는 마라톤을 또 뛰게 될 것이다. 많은 러너들이 인생에 걸쳐 여러 번의 마라톤을 뛴다. 하지만 생애 첫 마라톤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처음 달리는 거리, 처음 해보는 훈련, 모든 것이 쉽다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되고 때로는 눈물이 날 만큼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애틋하다.


 

첫사랑과도 같은 나의 첫 마라톤 기록...



평생 운동치 몸치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 첫 마라톤 도전기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마라톤을 뛰자]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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